20살 때부터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누가 나를 돌봐주지도 않고, 내가 누구를 돌보지도 않는 생활. 만족하며 지냈다. 28살에 결혼을 했고 신혼을 즐기면서도 서로를 돌본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연애할 때는 저녁 무렵 헤어져서 각자 자취하는 원룸에서 지냈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저녁에 헤어질 필요 없이 투룸 집에 함께 들어가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신혼집은 역세권이었고, 주변상권이 발달한 곳이라 편했다. 집에서 입고 있는 옷차림 그대로 슬리퍼를 신고 대형마트에 갈 수도 있다. 큰 공원에 산책하러 나갈 수도 있고, 주변에 식당이 많아서 무엇을 먹을지 메뉴만 정하면 됐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주저 없이 상영시간만 확인하고 왕복 2차선 도로의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됐다.
임신성 고혈압이 있긴 했지만 만삭이 될 때까지 꾸준히 회사에 출근했다. 출산예정일 일주일 전에 출산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몸은 무거웠지만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아이를 낳기 위해 운동을 해야 했다. 공원을 몇 바퀴 걷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출산을 준비했다.
신생아를 돌보는 '육아' 보다는 '출산'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출산 이후의 삶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전혀 예상하거나 상상하지 못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 맞기 전까지는
- 마이크 타이슨
20시간 진통을 거쳐 촉진제나 무통주사 없이 쌩으로 아이를 낳았다. 건강하게 아이를 낳으면 그것으로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그저 워밍업이었다. 본격적인 시작은 아이를 낳고 나서란 사실을 닥쳐보고서야 깨달았다. 뱃속에 있을 때가 좋으니까 즐기라고 했던 주변 사람들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초보엄마의 모든 일정은 아이에게 맞춰져서 돌아간다.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보다는 아이가 울음으로 알람 기능을 대신해준다. 일어나자마자 기저귀를 갈고 수유간격을 확인해서 수유한다. 아이를 몸에 밀착시킨 후 한 손으로는 아이를 감싸 안고 한 손으로는 아이의 등을 쓸어내려서 트림을 시킨다.
다시 기저귀를 확인하고 눕힌다. 눕히면 안아달라고 낑낑댄다. 다시 안았다가 손목이 시큰거려 예쁜 원목침대에 눕혀본다. 눕힌 채 얼굴을 들이밀고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다른 건 필요 없고 다시 안아달라고 낑낑댄다. 지체될수록 목소리는 앙칼지게 변해간다. 기저귀를 확인하고 다시 안는다.
안았는데도 울음소리가 날카로워지고 높아지면 졸리다고 재워달라는 표현이다. 자장가를 부르며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거리며 손은 아이의 등을 토닥토닥거린다. 쉬이 잠들지는 않는다. 겨우 겨우 재웠지만 제일 어려운 다음 단계가 남아있다. 깨우지 않고 눕히기!
두어 번의 실패 끝에 성공하면 잠시 기쁨을 만끽한다. 부디 1시간이라도 깊이 자주길 기도한다. 잘 때 손톱을 깎아야 해서 조심스레 작은 손톱가위를 가지고 다가간다. 아이를 깨우지 않고 손톱을 자르는 날은 오늘의 모든 한 일을 마친 양 체증이 확 내려간다. 방 문을 조심스레 닫고 집안일을 시작한다. 천기저귀 애벌빨래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방바닥을 청소포로 소리 없이 닦아 낸다.
아이는 내가 계획했던 일들을 마치기 훨씬 전에 일어난다. 그리고는 무한반복이다.
개념은 분명 간단하다. 아이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된다. 즉, 엄마는 아이를 잘 먹이고, 잘 싸도록 하고, 잘 재우면 된다. 개념만 간단할 뿐 현실은 아이가 충분히 잘 먹지 않고, 충분히 잘 자지 않는다.
출산 이전에 누릴 수 있는 모든 일상이 정지되고 하루종일 '나'는 없다.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갈 수도 없다. 길 하나만 건너면 있는 영화관도, 남이 차려주는 식당에도, 도란도란 친구들과 얘기할 수 있는 카페에도 갈 수 없다. 마트를 가는 것도 큰 맘을 먹어야 한다. 작고 소소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그제야 깨닫는다. 앉아서 여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내가 원할 때 잠을 청하고 충분히 자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알게 된다.
모든 게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이 되고, 약간의 시간이 나더라도 아이용품을 검색하고 구매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나의 모든 시간은 아이를 위해 쓴다.
엄마인 나에게도 물어야 했다.
잘 먹고 있는지?
잘 자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