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하여야 하는 여러 가지 일
자취를 하면서 집안일을 해 왔다. 결혼을 해서도 그저 양이 조금 많아졌을 뿐 집안일의 횟수와 빈도가 높아지는 일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집안일의 양도 횟수도 빈도도 1만큼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5만큼 곱해지는 것이었다.
초보엄마로 육아에만 집중해도 허덕대는데 늘어난 집안일도 함께 병행해야 했다. 회사에서처럼 업무분장을 명확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집안일의 양이나 횟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하거나, 한꺼번에 많은 양을 처리하든가,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한 식구가 더 늘어남으로 인해 빨래, 설거지, 쓰레기 양은 자연적으로 늘었다. 양을 잡을 수 없다면, 횟수를 줄여야 했다. 사용한 그릇이 생기는 대로 설거지를 하지 않고 쌓이길 기다렸다가 같이 했다. 빨래를 이틀에 한 번씩 했다면 주기를 정하지 않고 빨랫감이 모이면 한꺼번에 세탁기를 돌렸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을 큰 걸로 바꿔서 자주 교체하지 않아도 되게 했다.
CEO는 얼마나 위임을 잘하느냐가 중요한 자질이라는데 집안일도 비슷했다. 모든 일을 직접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면 쉽게 지쳐서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위임이 필요했다.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집안일은 모두 기계에게 의존하기로 했다. 아기 세탁물은 아기세탁기가 대신하도록 하고, 빨래를 직접 널기보다는 의류건조기로 말렸다. 직접 청소기를 돌리기보다는 로봇청소기가 돌아다니게 했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하고, 세탁소에 맡기러 가기보다는 스타일러가 어느 정도 그 일을 대신하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계로 한다 하더라도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세탁물을 분류해서 세탁기에 넣어야 하고, 세탁이 완료된 옷들을 분류해서 건조기에 넣어야 한다. 로봇청소기는 방바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황에서 실행시켜야 했다. 설거지거리도 애벌을 한 후 식기세척기에 넣어야 했다.
도무지 개선방향이 생각이 안 날 때는 가사서비스를 이용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전체적인 청소를 도움 받았다.
집안일을 효율적으로 해보고자 혼자 고군분투를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에게 불만이 쌓여갔다. 난 아이를 보육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을 뿐 가사를 전담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 내가 신혼 때부터 습관을 잘못 들인 게 아닐까? 안 되겠다 싶어서 얘기 좀 하자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집안일에도 업무분장이 필요한 것 같아.
누가 어떤 일을 맡을지 정해보자.
선택권을 줄게."
남편은 약간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꼭 이렇게 해야 해?
먼저 보는 사람이 하면 되잖아."
'난 보이는데, 넌 안 보이잖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칼같이 집안일을 나누려고 하는 게 부부로서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기보다는 정 없는 냉랭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도와'달라는 말은 하기는 싫었다.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할 때의 일이다. 아이가 호불호가 강하고 예민도가 높아서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데 어린이집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여쭤봤다.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잘 이해하고 그대로 하려고 노력하며,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지낸다고 하셨다. 덧붙여서 정리도 잘하고 선생님의 일을 잘 도와준다고 했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어린이집에서는 본인의 가방을 제 자리에 넣고, 자신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은 정리도 제법 잘한다는 것이다. 함께 생활하는 공간인 어린이집에서는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해 주시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연습과 훈련을 거치기 때문이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 마티 로스만 교수팀은 집안일이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84명의 어린이의 성장과정을 25년간 추적 조사했다. 아이들의 평균 연령은 3~4세였다.
그 결과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도운 어린이들이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아질 뿐 아니라 학문적, 직업적으로도 성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 파이낸셜뉴스 홍예지 기자
아무리 가족이라도 같은 공간에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엄마가 집안일 모두를 헌신해서 도맡아 하는 것은 엄마를 위해서도 아빠나 아이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정도로 성장하면 그 이후에는 아이도 자기만의 작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점차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집안일을 어떻게든 간단하게 만들어 보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이 문장을 만났다.
집이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거지, 당신이 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 주려면 너무 쓸고 닦지 마십시오.
-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박혜란 저
위로가 되었다. 좀 내려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위한다는 핑계로 오늘도 우리 집은 적당히 난장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