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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수 Sep 24. 2023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후기

[스포주의] 크리스틴과 라울, 그리고 유령의 사랑 이야기

파리 오페라 극장에는 가면을 쓴 유령이 살았다. 유령은 극장 관계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극장 소유주는 유령에게 돈을 지불하기도 했고, 유령이 원하는 대본대로 극을 진행하기도 했다. 크리스틴은 극장에서 노래하는 소프라노 여가수였다. 크리스틴은 코러스였으나 유령에게 노래수업을 받으며 실력을 키웠고, 우연한 기회에 그 실력을 인정받아 여주인공이 되었다. 


라울은 파리 오페라 극장의 후원자로 크리스틴의 공연을 보고 크리스틴과 사랑에 빠졌다. 크리스틴은 유령의 늪에서 벗어나 라울과의 아름다운 사랑을 갈구하지만, 유령은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유령은 라울의 목숨을 빌미로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강요했다. 크리스틴은 라울을 살리기 위해 유령에게 키스를 했다. 유령은 그 키스가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깨닫고 라울을 풀어줬다. 라울과 크리스틴은 극장을 떠났고, 유령은 가면만을 남기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출처: 인터파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가스통 르루가 쓴 원작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로맨스 중심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무대 연출이 뛰어났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장면을 실제로 보여주는가 하면, 불을 내뿜기도 했다. "클래식이란 이런 것이다"를 제대로 보여준 무대연출이 아닌가 싶었다. 


반면, 스토리 구성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소설에서는 에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유령은 소설 상으로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실제로 뮤지컬에서 보면 자신이 악보를 직접 만들어서 공연하도록 하는 장면이 나왔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유령이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고 기괴한 외모로 인해 고통받았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다. 만약 줄거리를 모르고 갔다면, 유령이 왜 가면을 쓰고 있는지 잘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뮤지컬 전체 내용은 유령보다 크리스틴과 라울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그 과정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던 것 같았다. 그들은 극장에서 우연한 기회에 마주쳤는데, 어느 순간 보니 이미 서로를 사랑한 사이가 되었다. 중간에 밥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떤 특정한 계기가 있어서 가까워져야 자연스러운데, 어느 순간 보니까 둘이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틴의 키스를 받은 유령이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깨닫는 과정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실제로 그 감정을 느껴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억지로 빼앗으려고 발악했다가 이내 잘못된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심적, 정신적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 남고 싶어 하는 잘못된 생각을 깨닫는 게 짧은 뮤지컬에 녹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기가 절정으로 치닫다가 키스를 받자마자 몇 초 되지 않아 바로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 다소 급진적(?)이라고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노래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것이 아쉬웠다.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부르는 장면에서 지나치게 겹쳐서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 사람씩 부를 때, 혹은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를 때는 괜찮았다. 그러나 3~4명, 혹은 그 이상 배우들이 노래를 같이 부르면 가사가 전달되지 않았다. 그저 입모양을 보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말에 리듬을 넣어서 오페라 느낌을 연출했지만, 그마저도 겹치게 되면 전달력이 떨어졌다. 

오페라의 유령 대형 피규어



스토리 전체 플롯이 고전이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보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차지하기 위해, 그 사람이 사랑하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플롯이다. 이는 유명 드라마에서도 자주 쓰이는 구성이다. 예컨대, 드라마 쾌걸 춘향에서 변학도가 성춘향을 차지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을 조작해 이몽룡을 위기에 빠뜨렸다. 


대부분의 삼각관계를 다룬 로맨스 드라마를 보면, 전반적으로 악역(?)은 네거티브 전략을 취한다. 즉, 남자 주인공을 음해하고, 위협하는 것을 무기로 여자 주인공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잘못된 방식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깨닫고 홀로 쓸쓸하게 남거나, 아니면 다른 진정한 사랑을 찾는 악역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결말이 뻔한 사랑 이야기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쪽의 헌신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으로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름 내포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그러고 보면 결혼은 정말 운명이 정해준 건가 싶다!)


실제로 마스크는 반쪽만 쓰지만, 전체 마스크를 배경으로 한 점이 특이했다!



이번 작품에서 크리스틴 역을 맡은 송은혜 배우는 예전에 "너의 목소리가 보여"라는 예능 프로에 출연해서 오페라의 유명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그때 영상에서 봤을 때도 엄청 잘하신다고 느꼈는데, 실제로 들으니 더 잘하셔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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