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P의 면모를 보여준 어이없는 하루
아침 8시 30분.
알람이 시끄럽게 울렸다.
노래가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어김없이 눈을 떠버렸다.
오늘은 11시 30분까지 강남에 가야 했다. 중요한 약속이 예정되어 있었다. 3시간 일찍 일어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집에서 강남까지는 차로 35분 걸린다. 시간이 남아서 중간에 이마트에 가서 신세계 상품권을 바꾸기로 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이마트 주차장으로 갔다. 여유롭게 주차를 하고 당당하게 이마트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이마트를 들어가지 못했다. 오늘은 이마트 정기휴업일이었다. 정기휴무일은 알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일 거라고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익숙함에 속아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약속장소로 향했다.
장마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건지 비가 멈출 생각을 안 했다. 도로는 빨간불을 켠 차로 가득했다. 명품 외제차들은 마치 장식처럼 서 있었다. 앞차와의 밀당을 반복한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간은 11시 35분.
이미 늦었다.
동승자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식당 가는 길은 가시밭길같이 느껴졌다. 운명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당에 도착하니 40분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최선을 다하며 5분 만에 주차장에서 식당까지 왔다. 예약한 자리를 가니 예비 장인, 장모님이 앉아서 우릴 맞이해 주셨다.
어떤 음식을 주문했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는 점심식사가 끝났다. 소화도 시킬 겸, 더현대 서울로 향했다. 현대백화점에 디즈니 스토어가 들어온다는 첩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디즈니에 푹 빠져있는 여자친구를 위한 이벤트였다. 요 근래 고생을 많이 한 탓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여자친구였다. 출혈이 커도 오늘만큼은 원하는 걸 사주고 싶었다.
이상하게 오늘은 무난하게 주차를 했다.
원래 주변을 10바퀴 돌아야 하는데, 한 번밖에 돌지 않았다.
기분 좋게 5층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대형 미키마우스가 모자를 쓰고 우릴 반기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대형 미키마우스는 커녕 디즈니 캐릭터는 아예 볼 수가 없었다. 다급하게 홈페이지를 열었다. 이벤트 페이지에는 더현대 서울이 정확하게 쓰여있었다.
장소는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 아래였다.
오픈 일자를 보니 8월 24일이었다.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오전과 오후에 사이좋게 한 번씩 허탕을 쳤다. 부끄러웠다. 정신을 어디다가 두고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인내심 있는 여자친구를 자책하는 나를 달래주었다. 앞으로 더 잘 확인하겠다는 의미 없는 다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걸 다짐하는 것조차 내심 창피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가득한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간다.
오늘은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역시 일진이 안 좋을 때는 자는 게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