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누구나 한 번쯤 롤모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롤모델을 이야기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은 늘 새로움에 취약해서 롤모델이 자주 바뀌었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분야별로 롤모델이 달라졌다. 투자는 이 사람을, 기술은 저 사람을 롤모델로 삼는다.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 생성한 롤모델이라 그런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말로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내 안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모양이다.
롤모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가 나를 닮고 싶어 한다면 대단히 뿌듯한 일이다.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누군가의 삶에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담도 상당히 크다. 팔로워가 떠나지 않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사랑받는 이유 99가지보다 미움받을 이유 1가지가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나를 떠날 이유 하나를 만들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해본 적은 없지만...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굳이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누군가가 나의 일부분만 따라 하려고 해도 충분하다. 어쨌든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준 셈이니까.
최근에 한 임원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분의 스케줄은 나보다 3배 이상 많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회의 일정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그분은 틈틈이 책을 읽고 번역도 하신다. 글을 쓰기도 하시고,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며 피드백도 주신다. 시간이 남아도는 나도 못하고 있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그 임원분도, 나도. 어디가 불편한 곳도 없다. 특별하게 못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요즘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 어떻게 시간관리를 하시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그 비결만 습득해도 지금의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 임원분을 롤모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렇다고 이야기하면 그분도 거짓말임을 눈치챌 것이다. 나는 그가 100명이 넘는 조직의 리더로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존경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 위치에서 느끼는 무게감을 견뎌내야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 나 스스로 그 무게감을 견딜 수 있는지 반문해보고 한다.
과연 나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