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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수 Aug 15. 2023

나의 신입시절 이야기

지금 내가 팀원에게 공유하고 싶었던 내 신입시절 이야기

  나는 신입사원 때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팀에서 신입사원은 나 혼자였다. 자리에 앉으면 양 옆으로 경험많은 시니어 개발자가 있었다. 나는 입사 첫날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나는 인사를 나누며 그들의 이름을 익혔다. 나는 누군가의 경력을 확인하고 싶을때 구인사이트인 링크드인을 활용하곤 했다. 그들의 이름을 링크드인에서 검색했다. 링크드인 프로필을 보고 나는 그들이 10년 남짓되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주변에 주니어가 나 하나밖에 없는 환경. 나는 지금이 그들의 경험을 바로 옆에서 배울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사수는 내 오른쪽 자리에 있었다. 사수는 나를 집중적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이유도 그가 여기에 다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업무를 배우고 싶었다. 그 사람이 내 오른편에 앉아서 일했다. 이건 나에겐 둘도 없는 배움의 기회였다.




 어느날 나는 모르는게 생겼다. 구글에 모르는 내용을 검색했는데, 자세히 나오지 않았다. 나는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옆에 있는 사수는 내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가 내 얼굴 표정을 보더니 하던 일을 잠시 멈췄다. 나는 구글창에 검색한 내용을 말해주었다.

 사수는 초등학생에게 말하듯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는 내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초 개념부터 설명해주었다. 그는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열정적으로 나를 가르쳤다. 그의 두 손이 내 눈 앞에서 현란하게 움직였다. 두 손은 도형이 되기도 했고, 화살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그는 손이 부족하다고 느꼈던지 아예 그림을 그릴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나도 그를 따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내 자리 옆에는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복도가 있었다. 마침 그때 다른 부서 팀원이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그 직원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그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나와 인사를 나눈 직원은 다시 가던 길을 갔다. 나는 그가 가면서 비워진 복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복도 맞은편에는 회의실이 두 개 있었다. 두 회의실 중 하나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회의실 문은 투명했다. 회의실 문을 통해 회의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회의실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회의실 속 사람들 뒤로 화이트 보드가 보였다. 화이트보드에는 빨간색과 검정색으로 글씨가 쓰여 있었다. 글씨는 화이트 보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회의실 속 어떤 남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라 비어있던 절반의 화이트 보드에 글씨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회의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불이 켜져있는 회의실 옆을 바라보았다. 밝은 회의실 옆에는 어두운 회의실이 있었다. 회의실 불이 꺼져 있었다. 그래도 투명한 유리문 덕에 나는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 뒤에도 글씨를 쓸 수 있는 보드가 붙어 있었다. 불이 꺼져있어서 그런지 보드도 어두웠다. 나는 글씨가 쓰여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냥 들어가서 지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두운 회의실을 가리키며 다시 사수를 쳐다보았다. 그는 나의 손가락을 따라 회의실을 보았다. 나는 그에게 회의실로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을 챙겼다. 나도 그를 따라 노트북을 집어들었다.

  복도를 지나 회의실 앞에 도착하니 회의실 속 불이 켜졌다. 어두웠던 보드가 원래의 하얀색으로 보였다. 보드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보드 크기가 2미터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아서 그런지 엄청 커보였다.

  그는 비어있는 보드에 빠르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밑그림을 검정색으로 그렸다.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빨간색으로 그렸다. 그림 사이에는 화살표를 여러개 그렸다. 그는 내가 이해할 수 있게 화살표마다 설명을 적어주었다. 그는 순식간에 보드 절반을 채웠다. 그는 그림을 보면서 처음부터 내용을 다시 설명해주었다.


  

 이전에 들었지만 그림을 보면서 들으니 더 이해가 잘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설명을 들으면서 노트북을 켰다. 노트북에 설치된 메모장을 열었다. 나는 눈으로 그림을 보면서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는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모두 받아적기는 힘들었다. 그러기에 나는 실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그냥 받아적었다. 대신 나는 설명을 이해하는데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화이트 보드만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그림을 보면서 설명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손을 들었다. 내가 손을 들면 그는 설명을 멈추었다. 나는 궁금한 내용을 질문했다. 그는 질문을 듣자마자 답을 말해주었다. 질문하고 답변하는 시간이 끝나면, 그는 다시 멈췄던 설명을 이어나갔다. 나는 궁금할때마다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는 그럴때마다  지친 기색없이 대답해주었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니 어느덧 퇴근할 시간이 다가왔다. 회의실에 들어온지 무려 3시간이나 지나있었다!



 

 그는 해야할 일이 많았다. 9시간의 업무시간동안 해결하기에도 양이 많았다. 그런 그가 업무시간의 1/3을 나에게 할애했다. 내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건 그의 할 일에 속하지 않았다. 즉, 그는 3시간동안 해야할 일을 안한거나 마찬가지였다. 나 때문에 그는 추가로 3시간동안 일을 더 해야했다. 그럼에도 그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할 일을 못할까봐 걱정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에게 미안했다. 나는 괜히 물어본 건 아닌가 싶었다. 문서를 찾아보고 이해해야 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회의실을 나오면서 그에게 말했다.


"제가 시간 너무 많이 뺏어서 죄송합니다. 할 일도 많으실텐데…"


그가 답했다.


“괜찮아요. 궁금하면 또 물어봐요. 권수님을 키우는게 팀에 더 도움되는 일이에요. 빨리 키워서 빨리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게 중요해요. 급한 일이 있으면 어차피 팀원들이 해결해주니까 걱정 안해도 됩니다.”


 나는 그의 마지막 말이 가장 좋았다. 팀원들이 해결해 준다는 그 말. 나중에 알고보니, 모든 시니어 개발자가 같은 마음으로 나를 가르쳤다. 그들 모두 서로를 믿고 나에게 시간을 투자해주었다. 나는 그런 팀에 기여하고 싶었다. 누군가 자리를 비워도 티가 안나도록 내가 채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미안함을 무릅쓰고 모르는 건 팀원들에게 물어보았다. 차라리 빨리 물어보고 빨리 배웠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도 질문했고, 밥 먹으러 가면서도 질문했다. 질문의 종류도 가리지 않았다. 나는 업무와 관련된 내용 뿐만 아니라, 그들의 경험담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나는 그들이 대기업 시절에 겪었던 에피소드를 수시로 듣고 상상했다. 내가 직접 겪을 수 없다면, 들으면서 배우겠다고 생각했다. 기술이든 사회생활이든 가리지 않았다. 성장할 수 있다면 가리지 않고 배웠다. 나는 빨리 성장하는게 팀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최근에 이직하면서 다시 사수와 일하게 되었다. 이직한 회사에서도 그는 나의 사수였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배우는 입장이 아니었다. 나는 10명이 넘는 팀을 이끌어야 했다. 사수는 나에게 팀을 맡겼다. 그는 나에게 팀을 가꿔나갈 기회를 주었다.

 팀원 중 7명은 다른 팀에서 일을 하다가 세 달 전에 팀을 옮겼다. 그들은 개발을 할 줄 알았지만, 팀 업무는 할 줄 몰랐다. 나는 처음부터 그들을 가르쳐야 했다. 팀원들은 열정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들은 공휴일에도 자진해서 일하곤 했다. 티내지는 않지만 그들은 서로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며 공부하곤 했다.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도 취득했다. 나는 가끔 그들에게 요즘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곤 했다.  그들은 이전에 다른 팀에 있을 때 답답함을 느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서 지금은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그 팀에서 일해보지 않아서 답답함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대부분이 배울 수 있는게 많아서 좋다고 답했다. 그래서 만족한다고 했다.

  과거에 사수가 나에게 했듯이, 나도 그들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다. 나는 그들이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기술적인 이야기든 회사 생활 경험이든 상관 없었다. 그들이 무엇이든 솔직하게 물어보고, 하나라도 더 배우기를 원했다. 자유롭게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그들이 그 환경에서 배운다면 지금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부지런히 노력했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 답이 "예"가 나올때까지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지금 그들과 같은 환경에서 신입사원 시절을 지냈다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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