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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판 독서 모임 Jan 01. 2024

우리가 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밖에

성장판 독서모임 회원 임병선 님 인터뷰

1. 병선 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자기소개를 하려고 생각하다 보니 '과연 나를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제가 하는 일이 저를 표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다 보니 더 애매한 것 같은데요. 그런 점에서 자신의 일에 자신이 담겨있는 사람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어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휘가 비루하든 풍부하든 상관없이 저뿐 아니라 그 누구도 특정 몇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 시가 떠오르네요.


아닌 것 / 에린 핸슨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와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에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

당신이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당신은 당신의 웃음 속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당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걸 알 때

당신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

당신이 안식처라고 부르는 곳이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들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그래도 소개를 해보자면 대전에 살고 있고, 외국계 기업에서 총무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성인이 되는 친구 같은 딸이 있고요.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고 하셨는데 너무 긴 글이 되어버렸네요.      


2. 병선 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그걸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도 되지만 역으로 내 삶에서 그게 잘 안되고 있기 때문에 추구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말씀드려 보자면 ‘독립’, ‘연대’, ‘낭만’이 될 것 같아요.     

 

독립은 제 육아의 최종 목표이기도 한데요. 독립에는 정신적 독립, 육체적 독립, 경제적 독립 이렇게 세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정신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은 하나가 안되면 나머지가 안되기 쉬워요. 정신적 독립이 안 된 사람이 육체적·경제적 독립이 되기 어렵고, 경제적 독립이 안 된 사람이 육체적·정신적 독립이 되기 어렵죠. 육체적 독립은 조금 다른 것 같긴 해요. 가족과 함께 살더라도 정신적·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건강한 독립을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많이 한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선택하고 책임지면서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상황에 떠밀려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더라도 제 삶을 잘 들여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었거든요. 단지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기 두려워 다른 선택을 한 것뿐이죠. 그래서 저는 항상 상황이 어떻든 내가 내린 결정은 내 선택이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더라고요. 본인이 선택한 것을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독립이라는 키워드와도 맞닿아 있고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태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연대는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핵개인의 시대라는 건 역설적이게도 타인이 없이는 불가능하죠. 누군가의 수고가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잖아요. 또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정상인과 장애인이 아니라 잠재적 장애인과 장애인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서 많이 공감을 했는데요. 


지금 당장 젊고, 힘이 있고, 건강하다고 언제까지고 그게 유지될 거라는 생각은 환상이죠. 나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또 아무런 사고가 없더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금 내가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그 경계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오겠죠. 어쩌면 이기적일 수 있는 이런 생각으로라도 우리는 그 경계를 허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를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나는 건 품고 있는 생각만큼 행동이 따르지 못해서겠죠.     


낭만은 '독립', '연대'라는 좀 딱딱하게 들리는 단어들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데요.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재미나게 봤어요. 거기서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이런 대사를 했던 캐릭터가 참 좋았거든요. 쓸모로만 평가받는 세상은 일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없으면 좋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을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래도 정말 나머지 중 일부는 쓸모없는 것들이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신주 선생님은 “이걸 해서 쌀이 나와 돈이 나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 거랑 아무 상관이 없는데 그냥 하는 것 하나쯤은 꼭 가지고 가야 하는 것 같아요. 정말 힘들어서 낭만 따위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 그게 몸에 배어있어야 나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존경하는 최재천 교수님은 책을 빡세게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책까지 빡세게 읽어야 하나라고 생각해요. 존경하는 건 존경하는 거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저와 생각이 다르시더라고요. 아! 물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읽는 책이라면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3. 성장판 독서모임과의 인연도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함께하셨는지, 그동안 어떤 모임에 참여하셨는지요?     


2021년 초인가? 감사방 이소영 방장님의 소개로 성장판 독서모임을 알게 됐어요. 독서인구가 없다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모였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어요. 발제독서, 매력독서(경제, 원서, 마음공부, 벽돌책), 월간 성장판 등 다양한 모임에 참여했었는데요. 각각의 매력이 있는 모임들이었어요. 같은 책을 깊이 읽고 생각을 나누고 기억에 남는 독서를 하고 싶다면 꼭 발제독서에 참여해 보세요. 매력독서는 매일 읽는 힘을 기르기에도 좋고 북도디 님들의 수고로 책 한 권을 굉장히 풍성하게 맛볼 수 있어서 좋아요.     


4. 병선 님께 책과 독서가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합니다.  

   

경계를 넓혀주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을 쓴 저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공부를 하고 조사를 했을 텐데 만원, 이만 원의 가격으로 그런 결과물을 만나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가성비 아닌가요? 도서관엔 또 얼마나 많은 책들이 있어요. 세금으로 만들어진 곳이니 잘 활용을 해야죠. 나 혼자라면 좁은 세상 안에 갇혀있을 수 있는데 책과 독서모임을 통해서 경계를 넓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경계가 넓어지면 좀 더 많은 것을 품어 안을 수 있지 않을까요?     


5. 병선 님의 인생 책 best 5를 소개해 주세요. 


『예언자』 칼릴 지브란, 무지개다리너머(2019)

인생의 많은 질문에 답이 되어주는 저의 인생 책이에요.


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 팩, 열음사(2007) 

예전에 다니던 직장 대표님께 빌려드렸는데 못 돌려받은 책이네요. 제가 아쉬워하니 지인이 예전 버전 책으로 줘서 가지고 있어요. 다시 읽어보려고요.


무경계 켄 윌버, 정신세계사(2012)

심리학이나 영성 관련 책을 읽으면서 익혔던 것들을 교과서처럼 한 목에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놀라운 책이었어요. 


야누시 코르차크의 아이들 야누시 코르차크, 양철북(2020)

임신한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책이에요. 짧은 글들로 어디를 펴서 읽어도 좋은 육아의 근본을 알려 주는 책이에요.


처럼 김응교, 문학동네(2016)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에 대한 책인데요.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이에요. 책이 두꺼운 편인데요. 윤동주 시인도 시인이지만 저자의 글솜씨에 반했던 책이에요.            

        

6. 병선 님 계시는 대전에서도 독서뿐 아니라 여러 모임에 참여하고 계실 것 같아요. 독서 외에 어떤 취미활동을 하시나요?     


대전지역에서 오프라인으로 하고 있는 모임은 친목 모임밖에 없어요. 이따금 딸이랑 또는 마음 맞는 지인들이랑 독립서점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공유서재를 찾기도 하는데요. 대전이 제주도 다음으로 면적당 독립서점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독립서점은 주인을 닮아 다채로워서 좋아요. <삼요소>, <우분투북스>, <다다르다>, <마음독립서점> 등의 독립서점들이 있고, 대전의 터줏대감 지역서점 <계룡문고>는 아이 어릴 때부터 많이 다녔던 서점이에요. 


또 소개하고 싶은 아름다운 공유서재로는 <제이의 서재>가 있는데요. 커피 한 잔 값의 공간 대여료만 내면 한두 시간 아름다운 공간에서 비치된 책들을 읽어볼 수 있어요. 신간도 많더라고요. 커피 또는 차도 주시고요. 건물주인가? 책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수익은 어디서 내는 거지? 이런 궁금증이 이는 곳인데 성인 독서모임도 있고 아이들 그림책 독서모임도 있더라고요.      


다른 모임은 전국구라서, 아! 타국에서도 참여하는 분들이 있으니 전세계구라고 해야 하나. 요즘엔 온라인 모임을 쉽게 할 수 있어서 감사하죠. 다른 나라에 있어도 매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잖아요.   

  

2017년부터 ‘시 한잔 철학한 점’이라는 시모임을 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명씩 돌아가며 달시추(그 달의 시 추천인)를 맡아요. 그러면 달시추는 시인 한 명을 정하고 한 달 동안 한주에 한 편씩 그 시인의 시를 올리고 회원들은 그 시를 그 주의 주말까지 낭독하고 감상을 남겨요. 아까 낭만에 대해 얘기했는데요. 저한테는 시가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 시모임 회원들을 위해 선물용 책자를 만들었는데 그 책의 표지 이미지를 고를 때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에 한 소녀가 빨간 풍선을 붙잡고 있는 이미지를 골랐거든요. 저에게 시란 그런 존재 같아요. 아이에게 풍선 같은 존재. 날아가면 울어버리는. 그래서 그 세찬 바람에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7. 2023년이 저물었어요. 연초에 세운 계획이나 목표 중 이루어낸 것이 있다면 나누어주실 수 있을까요?^^ 

    

전 그렇게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라서요. 근데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싶은 책만 읽자.’ 이걸 맘에 품었어요. 제가 책을 좋아하니까 서평단 활동을 했는데요. 그걸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이 했었나 봐요. 어느 날 책 읽는 걸 숙제처럼 여기고 있는 저를 발견한 거예요. 일 년에 몇 권 이렇게 목표를 정해놓기도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또 숫자에 연연하게 되더라고요. 좋아하는 책 읽기가 숙제처럼 되어버리다니...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 후에는 독서모임도 읽고 싶어서 사놓고 아직 못 읽었는데, 성장판에서 그 책으로 함께 읽을 사람을 모집하면 해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좋더라고요. 이런 것도 계획이라고 한다면 저의 평생 계획일 것 같아요. 좋아하는 독서를 지키는 저만의 방편으로요.     


8. 한 해를 마무리하는 병선 님만의 연말 리추얼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한참 못 만난 친구들이랑 만날 날을 잡아요. 왠지 한 해가 가기 전에는 만나야 할 것 같아서요. 사람들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들이 ‘공부를 더 했어야 하는데...’ ‘일을 더 했어야 하는데...’ ‘어떤 성취를 더 이뤘어야 하는데...’ 이런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해요. 


9. 새해를 맞이하는 성장판 독서모임 식구들과 함께 읽고 싶은 시 한 편 소개해 주세요.


내일은 없다 / 윤동주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도

잠을 자고 돌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내일은 없나니

......


이 시는 윤동주 님이 열일곱 살이던 1934년 12월 24일에 남긴 기록상 그가 남긴 첫 시예요. 우리가 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으니 순간순간에 정성을 다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시를 골라보았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는 저의 사심도 한 스푼 얹어서요. 윤동주 님의 첫 시를 새해를 맞는 성장판 독서모임 식구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 기쁘네요. 

제가 좋아하는 또 한분... 박노해 님의 글도 함께 나눕니다. 성장판 독서모임 식구들께는 유독 쉼표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다고 쉼표만 가득한 것 또한 음악이 될 수 없으니 매 순간 정성을 다하되 중간중간 푸른 쉼표도 모쪼록 잊지 마시길~

10. 병선 님을 좀 더 알 수 있는 소셜미디어, 사이트 등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happy_seed_2021

요즘엔 블로그에 글을 잘 안 쓰긴 하는데 https://blog.naver.com/m6223325


# 성장판 독서모임은 누구나 참여하여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성장판 독서모임 오픈채팅방 https://open.kakao.com/o/gKbYp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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