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핑계가 되어줘요

살고 싶지 않은 날에

by 해파리


살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사는 게 특별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날도 있다.


이유 같은 건 잘 떠오르지 않더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라" 고들 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는 내키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꾸만 핑계를 만들게 된다.

운동을 가고 싶지 않은 날에도 "너 덕분에 헬스장 간다."라고 뱉으면 조금은 가벼워진다. 외출이 힘들 때에는 "이제 나가볼게. 너 아니었으면 못 나갔을 거야."라는 말을 하고 나면 내가 뱉어낸 그 말이 기묘하게 몸을 움직이게 한다.


누군가를 핑계 삼아 살아가는 삶을 우습게 보는 시대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어떠랴. 살아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어쩌면 삶은 대단한 목적이나 장엄한 사명이 아니라 평범한 핑계들의 나열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핑계들이 오늘의 나를 여기까지 겨우겨우 데려왔다.


다르게 본다면, 오로지 살아내기 위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이용한 셈이기도 하다.

그들은 몰랐겠지만 그들 덕분에 나는 다시 한번 외출했고, 이불을 걷어냈으며, 느끼지 못하는 음식의 맛에도 웃었다.

거울도 보지 않던 사람이 함께 찍는 사진으로 청년기의 한 장면을 남기기도 하고, 올해 생일에는 축하해 준 몇 사람들과 소박한 기념을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들 덕분에 남들 비슷하게나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에게만큼은 친절하고 상냥하게 살아보고자 한다.

생을 건 빚을 진 사람처럼, 나는 앞으로도 그들에게 기대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기대어 사는 삶에 대한 기대가 깊은 밤을 견디게 하니까.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기 어렵다면 그냥 이렇게 적어두겠다.


고맙다고.


나의 의미로 살아주고 있는 사람들에게.



'덕분에'를 좋아하는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덕분에'를 얼마나 나누었나 찾아보다가, 세길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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