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코드 글쓰기

연대의 희망을 담은 이기적인 작업

by 해파리

스레드를 시작한 이후로 나의 하루의 일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글쓰기'이다.


처음엔 그저 블로그 글을 옮겨 적기 위해 시작했던 스레드였는데, 점점 하고 싶은 것들이 늘어가고 있어 백수임에도 시간을 쪼개고 쪼개 살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 오랫동안 무욕, 무의지 상태로 시간 속을 둥둥 떠다니던 나였기에 이런 변화는 당황스럽지만 반갑기도 하다.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은 크게 세 가지이다.

: 나의 감정을 풀어내는 글, F코드 진단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동화, 사회에서는 외면받기 쉬운 타인의 감정을 AI로 시각화하는 작업.


왜 이런 작업에 끌리는 걸까? 나는 우울증을 진단받은 지는 17년, 이제는 우울과 함께 산 것이 삶의 절반 이상이 되었다. ADHD는 6년이 조금 더 되었고, 작년에는 희귀 수면질환(이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기를)이 추가되었다. 버스 안에서 위의 물음에 꼬리를 물고 답을 찾아가 보았다. 나는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가길 좋아하기에, 어떤 물음들은 내내 담아두었다가 꺼내는 시간을 부러 만든다.


극도의 우울과 무력한 감정 상태에서는 이론도 논리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건, 설명이 아닌 돌봄, 정답이 아닌 함께 있어줌, 이해시키는 글이 아니라 잠시 숨을 트이게 해 주는 글이었다. 읽히지 않는 글이 세상에 넘쳐났었기에 나를 꺼내준 한 문장, 한 이미지, 한 은유가 그토록 절실했었다. 계몽의 언어가 아닌 생존의 언어 말이다.


한글을 배울 때부터 활자 중독이라는 소리를 달고 다녔던 사람이, 글을 읽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곧 죽음과도 같았다. 그게 글뿐이었겠는가.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초록불과 빨간불'을 인식하지 못해 차에 치일 뻔했던 순간을. 단순히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넘어 나는 세상의 기본적인 규칙도 해석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그런 절망이었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백 퍼센트는 아니어도 기본적인 인지 능력은 돌아온 지금이다.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은 당시의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시에 그때의 나처럼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닿고 싶은 외침이다. ‘이해’보다 존재를 수용하는, ‘설득’보다 함께 앉아주는 이야기. ‘치료’보다 버티게 하는 상상이고 싶다.


스스로도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하지만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화장실 갈 기력도 없어 내내 누워만 지내면서도, 20시간 넘게 잠으로 하루를 보내면서도 정신이 조금이라도 차려지면 책이든 인터넷이든 할 것 없이 이야기들을 찾았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형식도, 완성도도 상관이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보고 또 보았다. 하지만 내 우울의 시간을 채우기엔 그 콘텐츠들은 너무 적었다.

그렇기에, 미완의 결함투성이의 글과 그림일지라도, 세상에 내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아직도 함께 버티며 알 수 없는 미래를 온몸으로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나의 친구들에게 연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비록 나의 정신승리일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쓰고 만들 힘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다.


오늘 스레드에서 예술가는 이기적인 존재다,라는 글을 보았는데, 같은 의미로 나의 작업은 이기적인 작업이다. 그렇지만, 연대의 희망을 담은 이기적인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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