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비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by 해파리

나는 비둘기를 좋아하는 부자를 본 일이 없다.

그들은 도시가 돌아가는 구조를 알고 있고, 구조는 항상 깨끗함과 질서를 우선하기에,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비둘기는 그 질서에서 미끄러진 대표적인 존재다.
내게는 마치 상징처럼 남아 있기도 한데, '유해조수'로 지정된 이후부터는 '공식적으로' 비둘기의 존재는 유해하고 더러운 것이라는 행정적 낙인이 찍혔다.


비둘기의 개체수 조절에 대한 찬반을 쓰려는 글은 아니다. 그건 나보다 훨씬 유능한 분들이 해야 할 일이고, 나는 그런 주제 파악 정도는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픈 것은 '소외'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둘기에 먹이를 주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아픈 몸을 가진 사람이거나 나이가 지긋한 사람,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얼굴 등. 대체로 그들은 남들이 사무실에 있을 시간에 말도 없이, 또는 혼잣말을 하며 손에 쥔 부스러기를 비둘기에게 건넨다.

나 역시 세상의 트랙에서 미끄러진 사람이기에, 그 시간대에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입이었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존재를 향해 손을 내미는 마음에게. 그건 외로움이며, 다른 존재에 대한 자비의 마음이다. 그런 자비라도 베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슬픈 이타심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러했다.



그때의 나는 불안했던 것 같다. 형태가 불분명해지고, 의미를 증명해야만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압도되었다. 그래서 이유 없이 왈칵 눈물이 나곤 했지만, 창피함이나 당황보다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감정에 다시금 압도됨이 확인되었던, 절망에 보다 가까웠던 걸로 기억한다.



도시는 효율을 사랑하고 이유 없는 존재를 귀찮아한다. 그래서 어떤 생명은 너무 쉽게 낙인찍히고 관리 대상이 된다. 내가 목격하기로는 사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코로나 때, 가장 가난한 사람들부터 소외 그 이상의 고립이 시작되었던 것을, 동자동 쪽방촌에 살았던 나는 보았다.



그때 나의 이웃들이, 노숙인들이, 정신질환을 가진 방랑자들이 각종 의료, 급식 지원이 끊겼음에도 비둘기에게 먹이를 던져주던 모습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건, 내가 그들을 닮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나를 닮아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존재의 불안과 생명의 위협에 압도된 얼굴을 마스크 안에 감춘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이렇게 세상이 끝날지도 몰라ㅡ. 생각하며 기뻐하는지 슬퍼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마스크 없이 그대로 노출된 이웃들을 보며 참으로 슬프고 슬퍼 밤마다 눈물 흘렸음에도 그들을 지나칠 때면 마스크의 콧등 부분을 눌러 있는 힘껏 얼굴을 감췄으니 말이다.

모든 것이 끝난 지금, 나는 한때 나의 이웃이었던 사람들에게, 비둘기의 먹이를 주던 그들에게 진 빚을 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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