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나의 첫 조카의 이야기를 들을 내일
잠이 오지 않는 걸 보니 뒤숭숭한가 보다.
내겐 조카가 있다.
피가 섞인 관계는 아니지만 내게는 첫 조카이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가 혼자서 키우고 있는 딸아이.
"이모의 첫 조카가 되어줘서 고마워."라고 했더니, 자기가 왜 조카냐고 물었던 아이는 금세 나를 이모라 부르며 매일같이 본인이 재미있게 본 영상의 링크를 공유해 주기도 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먼저 낚아채 "5분만!" 이모랑 먼저 통화하고 싶다 조잘대기도 하는 사랑스러운 녀석이다.
그 아이의 엄마인 내 친구와 구별하려 '녀석'이라고 칭하긴 했지만 실은 내겐 친구 같은 조카이고.
여태껏 그 녀석이 보내주는 문자들은 방귀 뀌는 고양이 같은 우스꽝스럽거나 귀여운 동물들이 나오는 영상들이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이 날 때 보거나 때론 몰아보기도 했는데, 문자 확인이 늦을 때면 왜 안 보냐며 울음 이모티콘을 보내기도 해 그래도 나를 편하게 여겨주는구나, 고마웠고 마냥 좋았다.
얼마 전에는 음성녹음을 보냈기에 바깥이라 잘 들리지 않아 최대한으로 키우면서도, 반갑고 궁금한 마음에 귀 기울여 들었다. 그 주에 아빠를 만날 거라는 간결한 음성이었다.
아이는 아빠를 그리워한다. 안되는 걸 알면서도 (아마도 일부러) 내가 같이 있는 자리에서 제 엄마에게 아빠랑 같이 살면 안 되냐고 한 번씩 묻는다.
언젠가 손을 잡고 번쩍 점프하는 것을 하고 싶다기에, 나와 친구가 한 손씩 잡아서 해주겠다고 했더니 "그건 엄마, 아빠랑 해야 해." 라며 그것만은 끝내 거절하던 아이. 그 마음을 존중하고 싶기에 "그래 알겠어. 대신 원하는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 얘기해 줘. 이모 경험으론, 안 해본 걸 해봤을 때 생각지 못한 좋음이 생길 때도 있더라고." 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무튼 음성메시지 이후로도 내가 바빠 확인이 늦어도 꾸준히 재밌고 귀여운 영상들을 보내주던 아이에게 어제 문자가 왔다.
소통데이의 하루 끝 마무리로 그 아이와의 문자를 설레는 마음과 함께 열었는데, 영상의 제목은 "25년 만에 찾은 엄마"였다.
철렁, 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눌렀다. 자신을 버린 엄마를 찾아간 아들이 엄마를 찾아간 영상. 엄마는 처음에는 아들의 존재를 부정하다가 끝내는 미안하다고, 자신의 딸이 옆에 있는데 가족들이 몰랐으면 한다고, 그러나 정말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고, 엄마를 찾아간 아들은 엄마를 용서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찾아온 거라 말하는 짧은 쇼츠였다.
조카는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아마 내일 보면 답을 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영상을 보냈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섣부르게 걱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 마음이 매이는 것 역시 사실이다. 나의 기우였으면 정말 좋겠는데...
아이는 지금쯤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나는 조카를 만난 이후로, 나이가 든 내 모습을 좀 더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친구와 나, 그리고 어른이 된 이 아이가 함께 웃는 모습. 길을 잘 찾는 조카가 운전미숙에 길치인 우리를 데리고 다니면 그에 감탄하며 엄지 척을 날리는 나와 내 친구.
내일 어떤 대답이 돌아와도 귀 기울여 들어야지. 어른이랍시고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다 아는 척, 텅 빈 권위를 주장하는 건 내일도, 그다음 날도 하지 말아야지. 나는 이 아이 덕분에 비로소 어른이 된 내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지.
소중한 나의 첫 조카에게 해줄 수 있는 것.
담담한 척 썼지만 나도 대나무숲 이용권이 있기에.
어휴 이너무짜슥아 너 속상할까 봐 이모가 잠이 안 온다 발만 동동 구른다!ㅠㅠㅠㅠ 여기에라도 외쳐본다.
내일 조카한텐 담담한 멋진 이모 해야지.
이 글은 이 녀석 운전면허 딸 때쯤이면 보여주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