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일어났다. 강의실로 가지 못했다.
안이 쑥 비워진 느낌이다. 그 공간을 에너지로 채우느라 하루 종일 잠에 취한듯 하다. 어젯밤 양껏 수치심을 토해낸 탓일까. 아니면 겨울이 오고 있어 마지막으로 발악해본 것일까. 최소한의 예의로 제출할 정신과 진료확인서를 받았더니 이 시간이다. 아직 약은 남았는데.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라도 불성실함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서글프지만, 이건 내 병이고, 이렇게나마 뒷수습을 하는 것이 생의 절반 이상을 투병하며 터득한 내 방식이다.
수업이 끝날 시간에 강의실에 도착했다. 수업 다 끝났는데, 왜 지금 왔지? 하는 눈초리는 기분 탓일까.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른다. 알림이 잔뜩 쌓여있다. 책상 위에는 어제 먹다 남은 과자가 고이 접혀 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제 시간에 이 곳으로 올 것을 기대하며 남겨 놓았던 기억이 난다. 창피하다.
역시 넌....이라는 생각이 가득하지만, 어제 남겨 놓은 '셀프러브클럽'을 떠올리며 고개를 젓는다. 이 시간에라도 너는 왔다. 그리고 노트북을 켰다.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려 약이 남아있음에도 불구, 진료확인서를 떼러 병원에 가지 않았니? 친구가 나와 같은 상황에 있다면 해 줄 말을 나에게 건네본다. 그렇지만 여전히 창피하다.
강의실로 오는 동안 본 다른 사람들은 한눈에 봐도 퇴근길의 발걸음이었다. 늦게 시작한 하루라고 가치가 없겠니? 그렇지 않다. 아직도 비몽사몽이지만 하나씩 뒷수습을 해보아야지. 오늘은 죄송봇이 될 예정이다. 쌓인 알림을 여는게 두렵지만, 예전처럼 숨지는 않아볼거야.
오랜 시간 자기혐오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경험으로 안다. 비난과 압박은 결코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타인에게 함부로 조언을 가장한 비난과 압박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로 향하는 비난에는 너무나 익숙해서, 쉽게 멈출수가 없다. 그래서 나에게는 타인이 필요하다. 타인에 비추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를 향한 질책을 멈추고, 나를 때리려던 손을 내려본다.
자, 이제 뒷수습을 하자꾸나. 쌓인 알림을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