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편식 앞에서 잔소리하던 엄마가 놓치는 것
"골고루 먹어야 눈도 반짝 코도 반짝 더 고와지지. "
식탁 앞에서 내가 첫째 아이에게 가장 자주 내뱉던 말이었다. 아이가 특정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졌고, 결국엔 힘이 잔뜩 빠지고 화가 계속 쌓일 데로 쌓이다 다른 데서 터지고야 만다.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리라는 내 믿음은 너무도 견고해서, 그 말을 따라 주지 않는 아이가 얼마나 미웠는지
나조차 가늠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의 방식을 아이에게 강요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 애써 꾹꾹 참고 있지. 왜 내가 정성껏 차린 음식을 아이는 먹어보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까? 어릴 때 나는 어땠지?’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아이의 입맛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 자체에 짜증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채소를 제법 좋아한다. 여름이면 꼭 오이를 사다 냉장고에 채워두고, 새콤한 초무침이나 시원한 오이소박이를 만든다. 그런데 첫째 아이는 오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처음엔 억지로라도 먹여보려 했다. 몇 번 시도 끝에 아이는 더 단단히 입을 닫았고, 나는 더욱 큰 목소리로
“골고루는 안 먹어도, 시도는 해봐야지!"소리지르 듯 외쳤다.
생각해 보면, 나도 싫은 음식이 있다. 어릴 땐 생선 비린내도, 물컹한 식감이 나는 음식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그런 감각의 예민함이 허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엄마”였고, “골고루 먹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기준에 갇혀 있었으니까.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느끼는 감각, 아이의 표정, 아이의 몸짓.
모두가 같지 않다는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편식을 고치려 시도하며,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 멈추는 것’이었다.
잔소리를 멈추고, 비교를 멈추고, 아이를 바꾸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얼굴이 밝아지는지, 어떤 질감을 유난히 싫어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새 음식을 앞에 두고 얼마나 망설이는지를 하나씩 눈에 담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이가 ‘고집 센 아이’가 아니라, ‘신중한 아이’라는 사실이 보였다.
조심스럽고, 낯선 것을 경계하는 감각이 뛰어난 아이. 그걸 몰랐던 건, 내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믿는다. 아이의 편식을 고치는 시작은 ‘골고루 먹이기’가 아니라 ‘관찰하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아이를 관찰하는 순간, 내 육아도 함께 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