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바꾼 건 레시피가 아니라 추억이었다
여름이 오면 나는 꼭 오이를 집어 든다.
살짝 소금에 절여 시원하게 무치거나, 볶기도 하고 국수 위에 올려 먹는 그 아삭함이 좋다.
그런데 첫째 아이는 오이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윽! 싫어!”입을 꾹 닫아버린다.
집에서 먹는 사람이 없으니, 나도 결국 오이를 잘 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올여름, 이상하게 오이가 자꾸 눈에 밟힌다.
한 날은 외식을 하는 데 국수에 고명으로 올라온 오이를 둘째 아이가 전부 골라먹는다.
마트에서 싱싱한 오이를 보자, “안 먹으면 팩이라도 해주자”는 마음이 들었다.
시원한 오이소박이가 더 간절해지는 계절,
마트에서 기분 좋게 다다기오이를 집어 들었는데, 집에 젓갈이 똑 떨어졌다.'아차차~'
오이나물이나 해야겠다 싶어 오이를 다듬으며 한 입 베어 물었다.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껍질과 줄기 끝에서 제법 쓴맛이 올라왔다.
'에휴~ 팩이나 해주자!' 감자칼로 길쭉하게 잘라 아이들에게 갔다.
“고객님~ 오랜만에 방문하셨네요!”
나는 에스테틱 직원처럼 과장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오이 조각을 아이들 얼굴에 올려주었다. 아이들은 서로 깔깔 웃으며 가만히 있었다.
그때, 둘째 아이가 옆에서 깔깔대며 얼굴에 올린 오이 조각을 하나 집어 씹었다.
' 아삭! 아삭! 맛있다.'며 연신 콧노래를 부른다. 누워서 먹지 말라고 해도 입으로 들어가는 게 신나는 모양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엄마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만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이 있는 듯하다.
엄마의 빽! 소리에 첫째가 깔깔 넘어가더니 “나도 한 번 먹어봐도 돼?”묻는다.
나는 무심한 듯 살짝 한 조각을 건넸다.
아이가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도 별거 아니게 맛있네. 오이가 이렇게 맛있는 건지 몰랐어!”
‘맛’은 혀끝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날 이후 첫째에게 오이는 더 이상 ‘먹기 싫은 채소’가 아니었다.
오이의 아삭함과 시원함이, 웃음과 장난이 섞인 여름밤의 한 장면이 되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맛이란 단순히 미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 음식을 둘러싼 경험과 추억이 만드는 감각이라는 것이다.
억지로 먹이려 했을 땐 끝까지 닫혀 있던 아이의 마음이, 즐거운 놀이 속에서 스르륵 열렸다.
한 가지 더 배운 점이 있다면 그날 이후, 나는 새로운 음식을 아이가 거부할 때 ‘왜 싫어할까?’만 생각하지 않는다.‘어떻게 하면 경험을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 내 아이에게 어떻게 적용할지를 먼저 고민한다.
그게 팩 놀이가 될 수도 있고, 아이와 읽었던 그림책 이야기, 기관 하원 후 놀이터에서 있던 일을 끌어와 한마디 던지는 것 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입으로 들어가기 전,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고 아이의 마음이 먼저 열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여름, 오이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소중한 웃음과 아이의 마음을 여는 묘책이 담긴 선물이다.
그리고 첫째 아이는 이제 오이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전직 영양사엄마가 알려드립니다.
오이의 쓴맛은 여름날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식물의 스트레스 반응으로 생긴 방어화합물이 농축된 결과입니다. 줄기 쪽 끝과 껍질 아래 중심으로 생기기 때문에, 그 부분만 제거해도 쓴맛이 많이 줄어듭니다. 또한 소금이나 식초에 절여 쓴맛을 줄여줄 수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