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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운 Jul 18. 2022

암웨이(Amway)는 어떤 곳일까?

브런치에서 '치약은 타이밍'이라는 글을 보고 암웨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잊고 있었지만 꽤나 인상적인 경험이었고, 공유할만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서 글로 옮긴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틀린 부분도 있겠지만 과장이나 왜곡없이 정확하게 상황을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2015년의 오사카 겨울

일본에서 있던 일이다. 당시에 나는 일본에 살던 여자친구와 같이 살고 싶어서 오사카로 넘어간 상태였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영어만 잘 하고 일본어를 못 하는 한국인이 한국에서의 경력을 살려서 마케터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자리가 가장 많고, 그만큼 외국계 기업도 많은 도쿄에서라면 상황이 좀 더 수월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계획과 달리 여자친구네 집에서 얹혀 살며 국제 백수가 되었다.


요코

국제 백수 생활은 정신적으로 꽤나 압박받고, 외로운 일이었다. 여자친구는 하루종일 일하러 나가있었으니까. 그 즈음에 여자친구의 친구라는 요코라는 아가씨가 우리를 초대한 일이 있다. 요코라는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이름의 한자가 용 용자에 아들 자자를 써써 龍子 였기 때문이다. 사람 이름이 용의 자식이라니... 멋있네?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암웨이

단순한 식사 초대라고 생각했다. 여자친구가 아닌 다른 일본인의 집에 방문하는것도, 일본식 가정식을 먹는것도 처음이라서 꽤나 기대했다. 그런데 문제는 요코에게는 그 만남이 단순한 식사 초대가 아니라 세일즈 프레젠테이션이었다는 점이었다. 암웨이에서 일한다는 그녀의 집은 거의 모든 것들이 암웨이에서 판매하는 제품이었다. 마치 쇼룸처럼.

여자친구와 나는 즐거운 식사 중에 끝없이 암웨이 제품의 우수성에 대해서 들어야 했다. 구매를 은근하게 유도하는 멘트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처음에는 인덕션의 장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그녀는 나도 여자친구도 어떤 상품에도 관심을 갖지 않자 계속해서 방을 오가며 서로 다른 암웨이 제품을 소개해줬다.

버튼을 한번 누르는 것으로 간단하게 나베 요리를 만들어 주는 인덕션도 암웨이에서 만든 것, 밑간이 되어서 닭고기와 함께 냄비에 붓는 것으로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는 국물도 암웨이에서 만든 것, 주방 세제도 암웨이, 치약도 암웨이...


트루먼 쇼

이런 장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트루먼쇼'였다. 트루먼과 그의 아내가 말다툼을 하다가 그의 아내는 주변의 상품을 광고하게 된다. 상황에 전혀 맞지 않게 뭔가를 판매려고 시도하는 트루먼의 아내와 요코의 행동이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가스라이팅

당시에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유행하지 않았다. 사실 세뇌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만 그건 요코에게 너무 가혹한 표현일런지도 모른다. 그녀는 모든 판매가 실패로 돌아가자 나에게 암웨이에서 함께 일할것을 권했다.

대화를 하다가 내가 오사카에서 직업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손바닥 두개 정도 크기의 작은 소책자를 가져왔는데 마치 아이돌의 CD에 동봉되어 있을 법한 사진집이었다. 그 사진집은 40대 정도 되보이는 한 중년의 일본 남성이 말도 안 되게 호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외제차를 타는 일본 남성. 호화로운 술집에서 비싸보이는 술을 마시는 일본 남성. 저택으로 보이는 곳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하는 일본 남성.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어리둥절 하던 중에 그녀는 설명을 덧붙였다.

사진속의 남성은 일본 암웨이에서 최고의 성과를 올린 최고의 판매사원이라고 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이렇게 멋진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완전히 세뇌당했다고 생각했다.


좀비

내가 알기로 암웨이는 네트워크 마케팅 기업이다. 그동안 뭔가 신사업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인맥을 통해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온 것이다. 이 자체를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분명히 소비자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없었던 때에는 네트워크 마케팅이 꽤나 유효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인터넷이 있다. 어디에서나 터치 한번으로 최적의 상품을 찾을 수 있는 때에 암웨이의 존재 이유가 뭘까? 나에게는 마땅히 도태되어야 할 사업모델이 수많은 사람들을 가스라이팅 해서 살아남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편견이 가득한 견해이기 때문에 암웨이에 대한 공정한 평가는 아니다.


어머니가 어디선가 지인의 설득에 넘어가 암웨이 치약을 고가에 구매할 때에 나는 요코가 생각난다. 어떤 형태로건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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