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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윤 Aug 09. 2023

우리집 사업병 환자

우리 아빠

근래에 보았던 한 웹툰에 불치병이라는 '사업병'이라는 게 나왔다. 형이 사업병에 걸려서 집안에 계속 돈을 요구했고, 집은 계속해서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우리 아빠 이야기가 아니던가.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붓듯 돈이 빠져나가는 항아리. 본인 어머니가 남의 집에 가서 파출부 일을 하고 벌어온 돈도 가져가 없애버렸던. 아내가 약한 몸으로 육아와 집안일을 전부 도맡으면서 일을 해서 벌어온 돈도 가져갔던. 하나뿐인 딸의 학비도 막 사회초년생이 되어 번 돈까지도 가져간 지독한 항아리였다.




사업병 환자는 주말도 없이 저녁도 없이 일했다. 꼭 사업으로 성공하리라. 음이온수가 좋다고 해서 가정용 음이온수 기계사업도 했었다. 옷가게도 하고 IT 쪽이 좋다니 IT사업도 했다. 비록 잘 안 됐지만, 있던 옷가게를 헐값에 날려버렸지만 그래도 사업을 꼭 해야 했다. 딸은 이사 가자고 성화고 아내는 자꾸 투덜대니 성공해서 큰집으로 이사도 가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떵떵거릴 것이다.


사업병 환자는 밤이 늦어서야 들어와 꼭 라면을 먹었다. 밥 차려 달라고 해도 아내는 자기도 일하고 왔다며 힘들다고 하고 잘못 키웠는지 버릇없는 딸은 짜증만 내고 안 차려 주니 어쩔 수 없었다. 다 먹고 난 냄비는 친절하게 싱크대에 넣어 놓았다. 과자를 먹으며 티비를 새벽까지 보다 티비를 켜놓고 잤다. 좁은 집에 티비는 안방에 있었고 아내는 자고 있었지만 사업병 환자는 그래야 잠이 왔다. 새벽까지 티비보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거래처 약속도 못 갔지만 그래도 사업병 환자는 그래야만 했다.


집안일은 여자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업병 환자는 집안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자꾸 재활용을 버리라느니 설거지를 하라느니 하는데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고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밖에서 사업하느라 고단하고 피곤한데 집에서는 누워서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액션영화나 오락영화를 봤다. 돈이 넘치나 놀러 다니며 지들끼리 히히덕거리는 꼬락서니가 꼴 보기 싫으니 예능은 싫었다.


사업병 환자는 딸에게 음료 따라오라 휴지 가져와라 상 차려라 안마해라고 시켰다. 그게 권리라고 생각했다. 일하고 온 아빠한테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맘에 안 드는 것은 마음껏 지적했다. 자식이라는 게 머리 좀 쓸만한 것 빼고 도무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딸이면 애교라도 있어야지. 아들 하나 더 낳았으면 저것도 아쉬운 줄 알 텐데...


사업병 환자는 사장은 있어 보여야 대우가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대아파트에 살았지만 고급승용차를 몰았다. 차만타고 다니니 버스도 지하철도 뭐가 많이 바뀌었나 차를 수리 맡기니 버스 타기도 어렵고 짜증 났다.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는 것은 당연한 효도였다. 사업에 대해 조금만 말을 달거나 걱정의 잔소리를 들으면 어머니에게 짜증을 확 내고 한숨 푹푹 내쉬며 나가버렸지만 그래도 자주 가는 게 효도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이 가난한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용돈도 잘 요구하지 않았고 갖고 싶은 걸 말하는데도 엄청난 고민 끝에 말했다. 하지만 떠올려보면 아버지는 돈을 아껴 쓴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낀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짠돌이가 되었다. 통장에 일정금액이상 남아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할인을 1%라도 더 받지 않고 사면 기분이 안 좋았다.  500원을 덜 쓰려고 시간을 낭비한다. 공짜가 너무 좋다. 사은품이니 덤이니 하는 걸 꼭 받으려고 한다. 모임을 할 때 티 내지 않지만 속으로는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 덜 보려고 애를 쓴다.


가난이 싫었던 아이는 그런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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