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광이 뭐죠? 먹는 건가요?
아이들을 안좋아하는 사람
나는 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애들을 보면 너무 귀엽다며 좋아하던데 난 그렇지 않았다. 애들이라고 생각하면 시끄럽고 정신없고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왜 그럴까? 어리광 부려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라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어리광 부리는 아이들이 불편하고 보기가 싫은 것이다. 첫째 아들인 남편은 집에서 더욱 무뚝뚝했지만 나 역시 그랬다.
사람들은 외동딸이라고 하면 엄청 사랑받고 철이 없고 뭔가 버릇없고 싸가지 없을 것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모양이다. 나는 그 반대였다. 항상 외동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외동 안 같다'라고 말했다. 외동에 대한 편견이 나는 항상 불편해서 외동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숨겼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고민을 말해도 공감도 제대로 된 조언도 받지 못한 적이 많아서 나는 아주 독립적이었다. 나는 항상 이야기도 안 하고 어떤 문제든 혼자 해결했다. 친구들이 종종 서운해할 정도로 말이다.
집에서는 떼써본 적도 없고 물건 사달라고 졸라본 적도 없었다. 어리광이라는 건 나와는 아주아주 먼 이야기였다. 집에서 엄마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내 역할이었고 몸이 약하고 덤벙대는 엄마를 챙기는 것도 내 역할이었다. 병원도 안 가고 불규칙적으로 사는 아빠를 챙기는 것도 내 역할이라고 할머니는 아빠 좀 챙기라고 병원에 데려가라고 나를 닦달했다. 원래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인데 엄마 때문에 그렇게 변했다나. 엄마가 없으면 아빠의 식사를 챙기는 것도 미성년자인 내 몫이었다.
하나뿐인 자식이자 할머니에게 하나뿐인 손주였던 나는 아주 큰 책임감이 어깨 위에 떠 안겨졌다. 내가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당연히 잘해야 하는 아이였다.
내가 챙겨야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리광을 부려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내가 애교가 없다고 그러는데 다른 아이들이 애교를 피우는 이유는 사랑이던 관심이던 용돈이던 갖고 싶은 물건이던 얻을 게 있기 때문에 애교를 부리는 것 아닐까 싶다.
내 소원은 제발 나를 가만 좀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으니 애교를 부리거나 어리광을 부릴 리가 없었다. 집의 가난까지 알고 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남편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난을 알았고 형이니 뭐든 참고 양보하고 챙기라는 게 당연한 환경에서 어리광이라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우리 아들 공부 잘한다고 너무너무 좋아하시고 여기저기 자랑하는 부모님 앞에서 나 사실 너무 힘들다고 어리광 부리기가 어디 쉬웠을까.
우리의 아이는 우리와는 다르게 아이답게 클 것이다. 부모님을 챙길 필요도 없고 큰 부담도 주지 않을 것이다. '나 너무 힘들어' 하고 폭 안겨 어리광 부리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