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로윤 Nov 22. 2023

MBTI P의 출산준비

필요하면 그때 사면 되지

임신 24주 이후에는 임당검사라는 것을 하게 된다. '임신성 당뇨병'인지 검사하는 것이다. 임산부라서 걸리는 당뇨라니. 임신은 몰랐던 것들과 마주하는 신기한 경험인 동시에 출산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깨닫는 과정이었다. 의료기술이 발달되어 있지 않던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태아가 사망하고, 얼마나 많은 임산부들이 사망했을까. 사망하지 않더라도 이유도 모른 채 건강이 악화되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임신성 당뇨는 대부분이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 생긴다고 해서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입덧이 끝나면서 달달한 게 너무 당겨서 아침마다 달달한 음료를 마시고, 중간중간 간식도 먹었다. 하지만 임당검사 1차 결과 수치가 너무 높다는 것.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당뇨병으로 판정되면 매일 식전 식후 혈당검사를 해야 하고, 식단도 관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태아에게도 안 좋고, 출산 후에 산모의 건강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임당은 1차에서 혈당이 높았던 임부를 대상으로 2차 검사로 제대로 판정하게 되는데, 2차 검사 전 철저히 식단 관리를 했다. 혈당에 토마토가 좋다고 해서 방울토마토를 약처럼 먹었다. 2차 검사는 혈당약을 먹은 후 4번에 걸쳐서 한 시간마다 혈당을 측정하게 되는데 한 시간마다 혈당 떨어지라고 산책까지 했다. 다행히도 임신성 당뇨병 판정은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워낙 겁이 많은 성격이라 혹여나 또 단 것들을 입에 달고 살면 당뇨가 될까 봐 무서워서 출산까지 일절 초콜릿이나 달달한 음료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체중도 정상증가범위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서 나는 P와 J 중에 P다. 뭐든 눈앞에 닥쳐야지 하는 스타일이다.


회사에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동료 여직원이 있었다. 그 여직원은 정리의 여왕에 항상 계획적인 스타일이었다. 완벽한 J임에 틀림없었다. 임신준비조차도 그녀는 이른 시기부터 모두 준비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안 샀다고 하니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내 입장에서는 그때 필요할지 아닐지도 모를 것들을 사두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때 가서 필요하면 사면되지 않나?' 싶었다. 필요할 것 같으면 출산 한 달 전쯤에 사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기방도 미리 다 꾸며놓고, 출산전후의 계획이 이미 짜여있었다. 나는 그때 닥치면 다 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내 삶의 방식이고, 생각보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사람은 다 닥치면 해결하게 되어있다.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가서 상황보고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인터넷만 봐도 '출산준비 리스트' 같은 것들이 엄청 떠도는데 그 많은 것들이 정말 다 필요하다고 인터넷 속 선배 엄마들은 주장했다. 내가 볼 땐 정말 다 필요할까? 하는 의문투성이였다. 정보의 홍수라서 좋은 점도 많지만, 이런 점에서는 좋지 않은 것도 많다고 느껴졌다. 그 모든 것들을 남들은 미리 하는데 나도 미리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거나 저것들을 남들은 다 사는데 나도 사야 할 것 같다는 강박이 사람들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것들에 내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된 정보도 정말 많았는데 임산부는 발마사지를 하면 안 된다던지, 매운 것도 먹으면 안 된다던지, 임신초기엔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눕눕 해야 한다(계속 누워만 있어야 한다)던지 하는 것들이었다.


발마사지의 경우 특정혈자리가 자궁수축을 유발해 유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임신하면, 자궁이 커지면서 골반이 눌려 다리가 저리고 붓게 되는데 이때 남편들이 마사지를 해줘야 한다고 다들 말한다. 남편은 이 사실을 알자마자 마트에 가서 발마사지기를 사주었다. '본인이 해주는 것보다 더 시원하고 잘한다'라고 말이다. 크지 않은 돈으로 본인도 편하고 나도 편했으니 윈윈 하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남편에게 마사지를 부탁할 필요도 없고, 남편이 힘들게 마사지를 할 필요도 없고, 혹시나 힘들다고 안 해주는 날에는 서운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자궁수축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자궁수축이 오면 배가 당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중단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의사도 상관없다고 했다. 원래도 다리가 잘 붓는 체질인데 회사에서 하루종일 실험실을 왔다 갔다 하고 의자에 앉아있다 오면 다리가 퉁퉁 부어있었다. 잠들기 전 발마사지기로 발과 종아리 마사지를 하면 너무 좋았다. 이 좋은 것을 잘못된 정보로 하지 못하는 임산부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매운 음식 마니아인 나는 매운 음식도 자주 먹었지만 아무 문제없었다. 배탈이 잘 나는 체질이라면, 몸이 힘드니까 자제하라고 하고 싶긴 하다. 나는 원래 매운 음식 먹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중에 모유수유할 때도 매운 음식을 먹으면 애도 맵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들도 있는데 모유는 혈액 내 영양분으로 만들어지므로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다. 매운 음식 먹었다고 모유를 계속 짜서 버리는 헛수고를 하는 사람도 정말 많아 안타까웠다.


임신초기에 눕눕 하라는 말은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영양이 부족한 시대도 아니고 누워만 있으면 근육이 빠지면서 체력저하는 물론 살이 잘 찌는 체질로 변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임신기간 살이 과도하게 찌게 되고, 출산 후 출산 전 체중으로 돌아오는 데 실패하게 된다. 의사도 임신 전에 운동을 했었다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운동은 오히려 좋다고 했다.


최근 소아과 폐지 논란과 함께 나온 말들이 소아과에서 요즘 엄마들이 인터넷을 더 맹신하고 의사말은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때로는 전문가가 모든 정답은 아닐 수도 있고, 실제 경험자의 말이 맞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의 잘못된 정보들을 맹신하는 모습들이 보일 때마다 부작용도 많구나 싶었다. 인터넷 속 정보는 필요정보만 유용하게 사용하고 전문가와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나는 딱히 출산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지 않았다. 가끔 출산이나 육아 같은 콘텐츠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나는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든 임신 후반기에 들어가기 전까지 퇴근 후 남는 시간에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기 낳으면 게임 못하니까! 나에게 있어서는 그게 훨씬 효율적인 일이었다. 내 태교는 게임이었다. 클래식 음악 대신 BTS음악을 즐겨 들었다. 엄마가 즐거우면 그게 태교 아닐까? 태아도 BTS음악을 들을 때면 마치 신이라도 난 듯이 발차기를 해댔다.

꿈틀꿈틀 춤추는 태아시절의 아들. 태동은 오로지 엄마만 느낄 수 있는 경이로운 경험이다.


아직 육아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전투태세면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아기손수건을 100개 200개를 사서는 5번씩 빨아서 5번을 일일이 널고 그걸 필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공장에 먼지가 많으니까 쓰기 전에 세탁하는 건 맞지만 5번 세탁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아이를 무균상태에서 키우고 싶은 사람들일까? 무균실의 생쥐와 돼지처럼 말이다.


주변에 출산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내가 이상한 MZ세대 엄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인터넷 속 엄마들 사이에서 필수라는 육아아이템도 거의 구매하지 않았고, 필수라는 손수건 세탁도 하지 않았다. 대세에 속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출산 전 준비했던 것은 베이비페어 한 번 방문. 출산맘박스 신청. 받은 기저귀 샘플, 로션 샘플, 젖병샘플로 신생아시기 사용하기로 함. 아기침대, 역류방지쿠션 중고로 구매. 먼저 출산한 친구에게서 옷 물려받음. 아기옷 한 개도 안 삼. 당시에 받은 재난지원금(지역화폐)으로 아기용품점에서 아기욕조, 아기비데, 방수패드, 손수건 구매. UV젖병소독기 선물 받음. 이케아에서 트롤리, 아이옷걸이 구매. 이게 끝이었던 것 같다. 돌아보니 내 돈 주고 산건 중고로 구매한 중고가 2만 원짜리 아기침대와 8천 원짜리 역류방지쿠션 밖에 없었다.


인터넷으로 오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도착하는 시대에, 심지어는 저녁에 구매해도 다음날 새벽에 도착하는 시대에, 차 타고 아기용품점 가서 사 오면 되는 시대에 굳이 당장 필요할지 아닐지 모르는 물건을 미리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출산 전, 출산 전의 순간순간을 최대한 즐기기를 추천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는 전혀 다른 인생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출산 마지막 이벤트와 출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전 04화 저출산 국가라기엔 더없이 멀었구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