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이어 Nov 15. 2023

저출산 국가라기엔 더없이 멀었구나

출근하는 임산부의 삶

임산부가 된 이후 만나는 이들마다 축하를 해줘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임신이 축하받을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축하해 주는 기분은 조금 특별했다. 요즘엔 저출산 문제도 심각하니까 더더욱 축하받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실제로 "애국자"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내 생각보다 임산부를 위한 정책은 많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임산부를 위한 사람들의 배려는 그다지 찾아볼 수 없었다. 임신에 대한 인식도 '축하할 일' 딱 그 정도라는 느낌을 받았다. 원래라면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출산율 0명대의 출산율 꼴찌국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 많은 배려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란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임산부가 되면 임신초기 12주까지 2시간의 단축근무를 할 수 있다. 36주 이후 임신 말기에도 단축근무를 할 수 있다. 이는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사항으로 임신부라면 누구나 임금삭감 없이 단축근무를 할 수 있다. 회사에도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므로 눈치 보지 않고 신청하면 된다. 하지만 실제 근무현장은 그렇지 않았다. 첫 신청자라 회사 내에 관련절차가 없다며 승인까지 며칠 기다려서야 비로소 단축근무를 할 수 있었다. 임신확인서를 발급받은 것이 6주였으므로 실제 단축근무를 한 기간은 한 달 조금 넘는 기간이었다. 그나마도 긴급건으로 비상회의가 소집되고, 업무량이 매일 일정한 것이 아니므로 단축시간을 지키지 못한 적이 많았다. 대기업의 경우에는 인사과에서 관리할지 모르겠으나 일당백을 해야 하는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그나마 대부분이 지켜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다녀야 했다.


단축근무를 하는 동안, 몇몇의 젊은 남직원들은 나를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직원은 "일찍 가서 좋겠네요. 나도 일찍 좀 가고 싶네" 라며 돌려서 비꼬기도 했다. 유산확률이 높은 임신초기에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그들에겐 그저 '본인은 일하는데 쟨 일찍 퇴근해서 짜증 나는 일'일 뿐이었다.


12주가 지난 후에는 정상근무를 해야 했는데 나는 24주 이후부터가 고비였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허리통증이 심했고, 골반통증과 함께 오후면 손과 발, 다리가 퉁퉁 부었다. 임신중반기가 넘어가면 몸은 출산준비를 시작한다. 아기가 잘 나올 수 있도록 릴렉신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뼈를 벌어지게 하는 호르몬이다. 나는 심한 손목통증과 손가락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같은 활동을 해도 피로도가 2배라 저녁에 집에 가면 졸음이 쏟아져 기절하듯 잠들었다. 하지만 월급 받으며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의 개인적인 고통은 내가 커리어유지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힘들긴 했지만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신체적 고통보다 힘들었던 것은 임신초기 조직개편으로 팀장이 바뀌어 겪게 된 일들이었다. 바뀐 팀장은 본인도 아내와 아이가 있으면서 임산부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시로 회의를 소집해 업무시간을 잡아먹었고,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이전 팀장이 내게 보장했던 "화학물질을 다루는 실험에서 제외"시켜 주겠다던 약속을 슬며시 밀어냈다. 위험약품을 다루는 실험은 벗어났지만, 그래도 위험약품이 항상 사용되는 실험실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했다.

그는 내게 서류 작업을 오후 느지막이 요구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보낼 것을 요구했고, 금요일에 요구해서 월요일 아침에 줄 것을 요구했다. 시간이 안될 것 같으면 회사 노트북을 집에 들고 가서 그날 저녁까지 보내놓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내가 '관두지 않고 다니겠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했던 전팀장과 달리 그는 내게 '계속 다닐 것인지. 정말 복직할 것인지. 왜 계속 다니려고 하는지'를 수시로 물었다. '대체 왜 계속다니는거야?'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임산부라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다 지켜본다고 제대로 일하라"며 눈치와 압박을 가했다. (벤처기업이라 원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는 회사였고, 업무량이 많지 않은 날은 하루종일 수다 떨고 여유롭게 있다가 가는 직원도 많았다.)


눈치와 압박에도 견딜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 커리어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손대왔던 업무를 책임감 있게 잘 마무리하고 휴직 하고 싶기도 했다. 길어지는 회의에 야근도 해야 했고, 노트북을 집까지 들고 와 업무시간 외 업무를 하기도 했다.

결국 내가 임신 전부터 해오던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었다. 제품이 실제로 출시되었고, 판매실적도 나왔다. 그럼에도 출산휴가를 간다는 이유로 업무평가기간에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가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평가대상에서 제외됐을 때 '열심히 일하지 말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임산부의 출퇴근길과 대중교통이용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는데 자리가 없으면 좁은 통로를 지나 저 뒷자리에 앉아야 했다. 버스기사는 내가 채 앉기도 전에 출발하기 일쑤였다.

지하철 역시 임산부배려석이 비워져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임산부배려석에 앉아 핸드폰을 보다가 내 가방에 달려있는 임산부 배지 혹은 내 배를 발견한 사람은 갑자기 눈을 감고 잠을 잤다. 노약자석에는 항상 노인분들이 앉아계셨고, 임산부배려석에는 젊은 남녀와 중년 남녀 그러니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앉아있었다. 그래, 출퇴근길은 누구라도 피곤하고 힘들다. 이해한다.

배려해 주는 분께 항상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장거리를 서서 가다 보면 식은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배려가 생각보다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감사했던 것 같다.

대중교통에서 나를 배려해 주는 분들은 대부분 젊은 아기 엄마였다. 나의 힘듦을 근시일 내에 겪어보았기에 공감해 주고 먼저 배려해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저출산 국가에서 임산부가 된다면 마땅히 배려가 넘칠 줄로만 알았다. 물론 배려란 것은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그 사람의 몫일뿐이다. 그 누구도 배려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출산 꼴찌 국가에서는 무엇보다 신혼부부, 난임부부, 임산부와 아기를 많이 배려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책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회 전반적인 배려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당연히 저출산문제는 사회적인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중에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어쩔 수 없이 배려 없는 각박한 사회로 흘러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아직도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전혀 없고, 사회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고 느꼈다. 저출산 국가라기엔 더없이 멀었다. 우리는 복합적인 사회문제까지 더해져 인구절벽을 향해 갈 것이다.

만약 보기 힘들겠지만, 혹시라도 임산부를 만나게 된다면 작은 배려를 실천해 주시기를 바란다. 물론 강요는 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부탁드리는 바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이가 정말 적어졌음을 느낀다. 인구절벽이 가까워오고 있다. 우리에게 근시일 내에 세금, 인력과 같은 사회문제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편에




이전 03화 입덧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