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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윤 Nov 08. 2023

입덧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일 할 때는 살려는 드릴게

처음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사실을 확인 후, 정확히 지난 생리 시작일로부터 5주가 되는 시점에 병원을 찾았다.

"아기집이 보여야 하는데, 안 보이네요. 일단 피검사하고 혹시 모르니까 바로 월요일에 꼭 오세요"

피검사 결과는 임신호르몬이 충분해서 임신이 확실하다고 했다. 의사가 하루만 늦게 왔어도 보였을 거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그전에 들었던 '보여야 하는데 안 보인다. 혹시 모르니까'라는 말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물론 아직 임신인 게 믿기지도 않고 실감도 안 났지만, 맘카페에서는 자궁 외 임신이라는 무서운 말만 눈에 자꾸 들어왔다.

드라마에서 보던 식탁 앞에서 '욱' 하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입덧도 없고, 병원에서 초음파로 확인된 것도 없으니 도저히 실감은 나지 않았다.

다음에 병원을 찾았을 때 비로소 아기집이 보였고, 심장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형태도 안 보이는 아가한테 심장이 뛰고 있다니 그게 너무 신기했다.

아쉬운 점은 TV에서 보던 것처럼 남편과 함께 심장소리를 처음으로 듣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한창 코로나19가 유행일 때 임신해서 겪어야 했던 아쉬움이었다.


내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임신확인서를 갖고 회사에 임신소식을 알리는 일이었다. 간혹 회사에서 '눈치 보일까 봐' '불이익을 받을까 봐' 알리지 않으려는 분들이 있는데 반드시 알려야 한다. 그래야 회사도 직원의 출산휴가에 대비해 미리 인력배치 혹은 추가인력채용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본인 스스로도 출산휴가를 가기 전 하던 업무를 정리하고 인수인계 계획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임산부의 초과근무는 추후 회사에 있어 불이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당당하게 내 권리를 요구하자. 회사가 내 몸과 나의 태아를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권리요구를 욕한다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종료 이후 이직을 고려하는 것도 좋겠다. 그 정도의 회사라면 어차피 아이 키우면서 다닐 회사가 못된다.


나는 10년 남짓된 벤처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회사에서 임신한 여직원은 내가 최초였다. 우선 같이 일하고 있는 팀장님에게 알리기로 했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팀장님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내편이었다. 팀장님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임신준비 중인 아내가 있었고, 워낙에 업무를 같이 많이 하고 고생도 같이하면서 친하기도 했다. 오히려 내가 임신했다고 말했을 때 관두는 줄 알고 걱정했다고 했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나의 주 업무가 화학물질을 다루는 실험이라는 점과 공장 외근이 많다는 점이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팀장님이 먼저 실험 외 업무로 배정해 주고, 공장외근은 본인소관으로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다음으로 소장님한테까지 알리고, 관리팀에 단축근무를 요청하니 회사에서 임신으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끝났다. 작은 회사라 더 이상 내가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다음날 만나는 직원마다 내게 말했다.


"윤주임님, 소식 들었어요! 축하해요!"


내가 임신을 하고 가장 기분이 좋았던 점은 어디를 가나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다는 점이었다. 축하한다는 말이 기분 나쁠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나는 축하한다는 말 자체를 가정에서 많이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이라서 더욱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나도 뭔가 된 것 같다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마침 어머님 생신이라 시부모님에게 깜짝 임밍아웃(임신커밍아웃)을 준비했다. 어머님 생일축하 꽃다발에 카드를 살짝 끼워놓았다. 어머님이 너무너무 놀라고 좋아하셔서 참 뿌듯했다. 평생에 딱 한 번 할 수 있었던 깜짝 이벤트. 아들만 둘인 집이라, 내가 이런 것도 준비하니 남편이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기도 했다.

임밍아웃 카드


임신 9주 차에는 일명 '젤리곰'이라고 불리는 사람형태에 가까운 태아를 초음파로 볼 수 있었다. 너무너무 신기하고 이제야 정말로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실감은 현실이 되어 '입덧'으로 찾아왔다. 갑자기 입맛이 너무 없고 속이 메스꺼웠다. 저녁을 한 입 먹고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나와 '함께' 먹는 일이라 입덧하면서 가장 서로 힘든 부분이 이 부분이었던 것 같다. 특별한 취미가 없는 남편에게 퇴근 후 나와 맛있는 걸 먹으며 한 잔 하는 건 유일한 낙이었다. 남편은 본인입에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나와 함께 먹고, 내 입에 들어가는 걸 참으로 좋아했다. 정말 콩한쪽도 나눠먹는다는 건 내 남편을 보고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우리 아이의 젤리곰 시절


입덧은 점점 심해져서 하루종일 지독한 숙취로 술병에 걸린 마냥 혹은 멀미를 심하게 하는 마냥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렸다. 저녁엔 아예 아무것도 안 들어갔고 거의 몸져누웠다. 그나마 낮에 회사에서는 새콤한 사탕을 먹으면 버틸만했고, 점심도 아주 조금은 먹을만했다. 밥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반찬이나 다른 것들 위주로 조금 먹었다. 마치 태아가 "일은 해야 하니까 낮에는 살려는 드릴게" 이런 느낌이었달까. 그나마도 오후가 되면 '아, 죽을 것 같다' 싶어 졌는데 그럴 때쯤 임신초기 단축근무로 퇴근할 수 있었다. 임신초기에 단축근무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건 이래서가 분명했다.

살려는 드릴게


12주쯤에는 절정이 되어 저녁만 되면 변기를 붙잡고 토해냈다. 그나마도 먹은 게 거의 없어서 위산만 나왔다. 입덧약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입덧약은 내겐 큰 효과가 없고, 졸린 효과만 유효해서 입덧이 심해 잠 못 이루는 밤에 잠이라도 이룰 수 있게 해 주었다. 임신으로 늘어야 할 체중은 매주 줄어들었다. 회사에 거의 좀비처럼 출근했다가 좀비처럼 퇴근했다. 긴급건으로 타 팀 팀장님과 업무를 확인해야 했는데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말하고 아침 일찍 확인하기로 하고 퇴근했다.


이때, 가장 괴로워하는 건 의외로 나보다 남편이었다. 남편 성격상 본인이 힘들면 힘들었지 아내가 힘들어하는데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걸 너무 괴로워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그나마 먹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남편은 반드시 그걸 사다 줬다. 회사 끝나고 어디 가는 거, 집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거 두 가지를 가장 싫어하던 남편이었다. 그럼에도 오히려 기뻐하며 얼마든지 사다 준다고 먼 길을 돌아 사다 주거나, 집에서 다시 나가 사다 줄 정도였다.


남편한테 배운 거지만 사람은 힘들 때는 힘들다고 좀 티를 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표현을 정말 정말 잘 안 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반대로 생색왕이었다. 남편만큼 생색을 심하게 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남편한테 배운 점은 사람이 생색이나 티도 좀 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안 힘든 척 안 아픈 척해봤자 아무도 안 알아준다. 좀 힘들 땐 더 힘든 척, 아플 땐 더 아픈 척해야 할 때가 있다.

혹시 임신을 앞둔 분이나 임신한 분이 이 글을 본 다면 입덧이 없거나 덜 힘들어도 정상인 몸보다 안 힘들 리가 없지 않은가. 조금 힘든 척해보자. 티를 안내면 겪어보지 않은, 앞으로도 겪을 일 없는 남편은 알지 못한다. 남편과 같이 많은 것을 공유해 보자. 그래야 앞으로의 육아도 잘 헤쳐나갈 수 있다. 우리 부부가 사이좋은 비결은 솔직한 남편 덕에 많은 것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지독한 입덧이 대체 언제 끝나려나 싶었는데 16주쯤, 아기 성별을 확인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입덧이 사라지니 입맛이 너무 좋았다. 단 게 어찌나 당기는지 회사에서 제공하는 복지 중 하나였던 카페테라스에 가서 매일 달달한 음료를 사다가 입에 달고 살았다. 이 게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는 그때까지는 몰랐다.



임신 중반부 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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