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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윤 Nov 01. 2023

MZ는 임신도 계획적으로 건강하게

feat. 두근두근 임테기

나는 미리 걱정이 많은 타입이다. 그래서 나는 아기를 키울 자신도 출산의 고통을 견딜 자신도 엄마가 될 자신도 없었다. 걱정거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산더미가 아니던가.  한 생명을 책임질 자신도 없었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우리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숭고한 희생정신'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머니란 그런 이미지가 아니던가. 나는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자신도 없는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임신과 출산 육아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렸다. 그래도 딱히 딩크족은 아니었고 남편 역시 딩크족이 아니었으므로 결정해야 할 순간은 거침없이 다가왔다.


남편과 나는 5살 차이다. 남편은 더 나이 먹기 전에 아이를 갖기를 원했다. 결혼한 지 몇 달 안 된 후부터 임신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나는 이직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내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남편은 자기 나이가 너무 많아져서 빨리 갖기를 원했다. 남편의 친구가 불임으로 시험관시술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어서 남편은 마음이 더욱 급해진 것 같았다. 결국 임신하고 출산하는 건 나인데 남편이 자꾸 강요하는 게 짜증이 났다. 하지만 나이가 있어서 걱정하는 남편의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정답이 없는 문제라 끝없는 논쟁이 이어졌다. 결국 극적인 타협으로 21년부터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마음의 준비가 잘 되지 않았고 남은 시간 최대한 열심히 놀아보려 애썼다. 아기를 가지면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21년이 다음 달 코앞으로 찾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온전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큰 결심을 하게 된 건 내가 그렇게 유지하고 싶던 커리어인 회사 때문이었다. 회사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조직개편, 고생해서 공들인 프로젝트는 엎어지고, 내 본래업무와는 다른 신규 tf팀 결성까지. 매년 고과 A를 받고, 연구소장님에게 매우 좋은 평가를 받을 만큼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그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이었다. 당장 일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상황이 겹겹이 찾아온 것이었다. 어차피 계획된 임신이었으니 임신과 육아휴직으로 잠시 리프레쉬하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맘카페에 가입해 보니 요즘은 다들 계획임신이라서 제대로 준비하는 듯했다. 문득 화학연구를 해온 나와 남편이 불임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석사기간은 물론이고 회사에서 나는 몸에 안 좋다는 유기화학물을 만지는 일을 했다. 불임의 기준은 1년간 자연임신이 안되면 불임이라고 한다. 사실 결혼 후 지난 1년간 배란일 기준으로 피임을 하고, 완벽하게 피임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임신되지 않은 게 불임이면 어쩌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생리주기가 워낙 규칙적인 편이라 불임은 아닐 거라는 위안은 되었다. 별 준비 없이 시행된 첫 시도는 어김없이 실패했다. 배란주기에 피임을 하지 않은 첫 시도였으므로 호기롭게 은근 기대하며 임테기를 구입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줄이면 임신, 한 줄이면 비임신인데 그냥 한 줄이었다. 이게 은근히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앞으로 1년이나 이렇게 기대하고 안되고 하면 어쩌지? 하고 또 걱정이 엄습해 왔다.


맘카페와 인터넷을 보다 보니 요즘엔 계획 임신 몇 개월 전부터 여자와 남자 모두 영양제를 챙겨 먹고, 남자는 술과 담배도 자제하고 운동도 하면서 준비한다고 한다.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래도 영양제는 챙겨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바로 영양제를 주문했다. 남편도 챙겨 먹이고 나도 챙겨 먹었다. 빠른 임신을 원했던 남편은 나의 이런 적극적인 태도에 은근 만족해하는 듯했다.


우리가 즐겁게 사랑을 나누던 일이 임신을 목적으로 하니까 남편은 '어쩐지 숙제가 된 것 같아 힘들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래도 꾸준히 시도하며 이번엔 은근 기대를 했다. 마침 설연휴였는데 시댁에 가니 장어구이에 소고기에 몸에 좋다는 것을 잔뜩 먹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어머님이 은근히 바라시면서 준비한 건 아닐까 싶다. 물론 평소에도 가면 항상 맛있는 것을 사주셨지만.




이상하게 이번엔 생리일이 다가오자 허리가 너무 아팠다. 원래 생리전증후군과 생리통으로 허리통증이 있었어서 생리통인가 싶었다. 그래도 또 은근 기대가 돼서 얼리임테기를 구입했다. 착상이 되면 HCG라는 호르몬이 나오게 되는데, 이걸 검출해서 임신사실을 알려주는 게 임테기다. 얼리임테기는 이 호르몬을 검출하는 최소 검출농도가 매우 낮아서 착상 즉 임신이 되자마자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빠르면 생리예정일 8일 전부터도 나온다고 했다. 허리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나는 생리 예정일 8일 전에 얼리임테기를 바로 시도해 보았다.

임테기는 한 줄로 너무나도 깨끗했다. 생리하려나보다 싶어서 다음기회를 또 기다리기로 했다.


생리예정일에 소량의 피가 비쳐서 역시 생리하네 싶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피가 전혀 나지 않았다. 여기서 갑자기 촉이 왔다. 착상혈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착상할 때 소량의 혈액이 나오기도 한다고. 이건 착상혈이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드는 것이다. 지난번 구입했던 얼리임테기가 하나 더 있어서 바로 임테기를 사용해 보았다. 한 줄이었다. 그럼 그렇지. 한두 번 만에 될 리가 없지.


출근하기 위해 샤워하고 나왔는데 뭔가 이상하다. 내 눈이 이상한가. 희미하게 뭔가 보인다. 너무 흐려서 이게 맞나 아닌가 긴가민가 하다. 출근해야 하는데 맘카페를 뒤져본다. 희미한 것도 무조건 임신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놀라운 마음반 믿기지 않는 마음반이다.

회사에 지각할까 얼른 집에서 나오면서도 심장이 두근댄다. 저녁까지 기다려서 놀라게 해 줄까 하다가 도저히 입이 간지러워 못 참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임신인 것 같아!"

"와 진짜? 진짜야? 정말?"

나의 격양된 목소리와 남편의 격양된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기쁨과 설렘 두근거림이 섞여있었다.



희미한 줄이 보이시나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임테기를 본 남편은 대체 이걸 어떻게 알았냐고 놀라워한다. 진짜 실눈 뜨고 봐야 겨우 보이는데 이것도 진짜 임신 맞냐고 진짜 맞냐고 확인에 또 확인을 한다.   

나 역시 조금 확신이 서지 않아서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생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고, 4일의 시간을 기다려 임신테스트기를 다시 해보았다. 진한 두 줄이 나왔다!


진한 두 줄. 확실히 임신이다.

와 내가 정말 임신을 하다니.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드라마에서처럼 입덧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바로 병원을 가려고 했는데, 맘카페를 보니까 일찍 가도 보이는 것도 없고 할 게 없다고 했다. 첫 생리일로부터 5주 뒤에 가야 한다고. 그 짧은 며칠이 몇 달 인양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만 같았다.



병원과 임신초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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