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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윤 Nov 29. 2023

인생이란 역시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다

엄마가 됐다

임신의 끝 출산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실감은 잘 나지 않았지만 골반 통증과 허리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조금밖에 안 나왔던 배도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누가 봐도 한 치의 의심 없이 임산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큰 이벤트나 사고 없이 임신기간을 지나왔는데 갑자기 병원에서 한 소변검사에서 단백뇨가 나왔다. 의사가 심각한 얼굴을 했다. 바로 발이 얼마나 부었는지부터 확인했다. 고혈압에 단백뇨가 나오면 '임신중독'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진단 내린다고 했다. 임신중독은 갈수록 악화되면 태아와 산모 모두 위험할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다행히 아직 고혈압이라고 할 정도의 혈압은 아니라는 것. 항상 낮은 혈압이었는데 임신 후로는 혈압이 약간 높아진 상태였다. 의사가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거나 두통이 심하면 지체 없이 응급실로 내원하라고 했다. 각종 피검사를 마친 후 나는 불안해졌다. 그래서 당뇨환자용이라는 소변검사지까지 구매했다.


집에서 자가검사 해보니 조금이라도 단 음식을 먹으면 소변에서 당까지 검출되었다. 퇴근 후 피곤한 상태로 검사하면 어김없이 단백뇨가 나왔다. 골반통증은 갈수록 심해졌고 몸은 너무나 피로했고 계속 잠이 쏟아졌다.

마무리하며 인수인계할 타임인데 바뀐 팀장은 계속해서 내게 압박을 가했다. 줄어야 할 실험양도 자꾸만 늘어났다. 개념 없는 한 남직원은 위험 화학약품을 아무 데나 방치해 놓기 일쑤였고 실험실 정리가 왜 필요하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위험약품이 방치된 실험실에 계속 드나들고 업무시간 외 업무를 압박받으면서 이러다가 내 몸도 상하고 태아에도 안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출산휴가 일자를 앞당겼다. 그래봤자 예정일 한 달 전이었고 그중에 내 남은 연차를 사용한 게 2주나 되었다. 끝까지 버티며 일하다가 일하는 도중에 출산하러 가는 경우도 있다는데 나는 임신체질은 아닌 듯했다.


재밌는 것은 휴가가 시작되자마자 거짓말처럼 소변에서 당도 검출되지 않았고 단백뇨도 더 이상 검출되지 않았다. 퇴근하고 나면 팅팅 불어있던 발과 다리도 더 이상 붓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처음으로 병원에서 단백뇨가 심하게 검출되었던 그날은 팀장이 내게 압박을 가하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준 날이었다. 회사에 출근하며 받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이었다.


이제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 태교도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앞으로 없을 유일하게 온전한 휴식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교로 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태교라고 할만한 걸 전혀 하지 못해서 태교랍시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그림도 그렸다. 태교라는 게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또 전혀 영향이 없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자연분만을 계획했다. 수술은 무서웠다. 물론 출산도 무서웠지만 말이다. 원만한 자연분만을 위해서 순산요가를 집에서 하고 매일 아침 집 앞 공원을 산책했다.

갈수록 골반통증이 심해져서 절뚝거리며 걷는 수준이 되었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아기가 점점 내려오면서 골반을 눌러서 그런 거라며 출산밖에 답이 없다고 했다. 빨리 출산하고 싶은 마음과 최대한 늦게 출산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예정일이 2주도 더 남은 시점에 양수가 터져버렸다. 아무래도 순산한다고 전 날 너무 많이 걸은 걸까.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양수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남편은 영화 '머리속의 지우개'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무서웠다고 한다. 첫 출산이던 나 역시 어찌할 바를 몰라 우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정말 양수면 감염위험이 있으니 병원으로 바로 오라고 했다. 막상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출산에 두려움이 앞섰다.

인터넷에서 본 건 있어서 자연분만 바로할까 봐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근처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었다. 밥심으로 힘을 잘 줘서 순산하려고 했다. 그때의 나는 정말 비장했다.


양수 터진 것 같다고 하니 진료대기자를 모두 고 진료실에 입성할 수 있었다. 양수가 맞다고 했다. 보통 양수가 터지면 진통도 금방 오니까 분만대기실에서 기다려보자고 했다. 하필이면 주말이었고 일요일에는 당직선생님 한 분뿐이라 유도분만도 안된다고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진통이 오지 않았다. 결국 월요일까지 기다려도 분만진행이 되지 않았다. 유도분만을 시도했지만 배를 누가 빨래 짜듯 온 힘을 다해 쥐어짜 내는 진통만 찾아올 뿐이었다. 경부가 열리지 않아 분만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양수가 터진 지 너무 오래되어서 제왕절개를 해야 한단다. 결정이 되자마자 바로 휠체어에 실려서 남편과 혹시 모를 작별의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수술실로 끌려갔다. 겁이 많았던 나는 생전 처음 누워보는 차가운 수술대가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수술준비가 정신없이 진행되어 무서워할 틈도 별로 없이 마취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

간호사가 "고생했어요. 한숨 자고 일어나면 아가랑 만날 수 있을 거예요"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내가 회복실에서 일어나자마자 아기가 괜찮은지부터 계속 물어봤다고 한다. 남편말로는 그 모습이 정말 엄마 같았다고 한다.


무려 9개월이란 시간을 기다린 아기와의 첫 만남. 아기가 너무 궁금해서 수술직후 일어나기도 힘든 몸으로 휠체어 타고 만나러 갔다.

어떻게 저렇게 조그마할 수가 있지? 내 몸속에서 나온 아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아직은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얼떨떨했다. 다른 아기들은 눈뜨고 있기도 하고 울기도 했는데 우리 아기는 면회시간마다 가만히 잠만 잤다.

양수 터진 지 너무 오래되어 태어나서 그런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너무 일찍 나온 걸까? 걱정이 되었다.

코로나시기에 아이를 낳아 수유시간도 없어서 아이를 직접 만져볼 수 조차 없었다.


먼저 출산한 친구가 젖몸살에 대해 경고해 주었는데 잘 모르니 그냥 모유가 돌기를 기다렸다. 사실 속으로는 우리 엄마가 모유가 안 나와서 분유만 먹였다고 해서 나도 그럴 줄로 알았다.

퇴원 전 날 갑자기 가슴이 땡땡해지며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어찌할 줄을 몰라 유튜브를 찾아보고 마사지도 시도해 봤지만 가슴은 점점 더 아파졌다.


조리원에 가면 가슴마사지를 받을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퇴원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조리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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