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필요 없다 잠이나 자자
엄청난 가슴 통증을 참고 퇴원수속을 밟았다. 드디어 처음으로 작디작은 나의 아기를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다들 퇴원하는 아내 대신 함께 온 남편이 아기를 안고 나갔는데, 나의 남편은 너무 무섭다고 했다. 아기가 생각보다 너무 작아 다치기라도 할까 너무 무섭다고. 결국 내가 아기를 안고 차로 갔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남편은 조리원 출입이 불가능했다. 그게 가장 아쉬웠지만, 대신 우리는 산후도우미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조리원 퇴소에 맞춰서 출산휴가를 사용하기로 했다. 법이 변경되어서 아빠 출산휴가를 2주나 쓸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었다. 양가도움도 받을 수 없기에 소중한 휴가였다.
입소하자마자 내가 생각하는 모유수유방향에 대해 조리원 원장님과 상담을 마치고, 시설소개와 각종 프로그램 소개를 받았다.
짐 풀고 잠시 쉴 틈도 없이 마사지실에 가서 무료로 제공받은 마사지를 받고, 출산 전 산전마사지를 받으러 왔을 때도 받았던 풀 패키지를 결제하라는 권유를 또 들어야 했다. 나는 과감하게 풀 패키지를 결제하지 않았다. 주변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인터넷 속 글들을 보아도 언제 이렇게 마사지받냐며 조리원 왔을 때 받아야 한다며 무리해서라도 2주내내 마사지를 받는 게 대세인 듯했다. 내 느낌은 결혼준비할 때 언제 이런 거 받냐고 예물을 무리해서 받아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같았다. 우리는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고 가능하면 빠듯하더라도 자가구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쓸데없는 돈을 쓸 여유는 없었고, 굳이 2주내내 마사지를 받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퇴소 시에 풀패키지 결제를 안 한 것을 최고로 잘한 일로 꼽았다. 비싼 돈 주고 마사지받는 것보다 잠을 많이 잔 것이 최고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집에 돌아가 신생아를 돌봐야 한다면 더더욱 잠이 최고 중에 최고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기다렸던 가슴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마사지사가 코로나19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아파서 오는 엄마들이 많다며 한탄을 했다.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레 모유수유를 해야 젖몸살이 오지 않는데 코로나라고 애도 못 보게 한다면서 나를 위로했다. 나의 엄마가 모유가 돌지 않아 내게 분유를 먹였기에 나도 그럴 거라는 편견과 달리 나는 모유부자였다. 그래서 젖몸살이 왔던 것. 모유는 펑펑 나오는데 아기가 먹어주지를 않으니 가슴속에 갇혀서 통증을 유발했던 것이었다. 가히 엄청난 통증이었다. 옷이 스치는 것조차 아팠다.
다행히 계속 모유수유를 시도하며, 가슴마사지를 추가로 받자 많이 좋아졌다.
생각보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별로인 조리원이나 본인과 맞지 않는 조리원도 많은 듯했는데, 나는 다행히도 나와 잘 맞았고 아주 만족스러웠다. 금액 역시 저렴한 곳조차 비싼 강남에 비하면 반값이었다.
뷔페식 밥이었는데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내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괜히 비싸게 받고 호텔식으로 플레이팅 해서 나오는 밥보다 나는 맛있는 게 훨씬 좋았다. 모유수유도 간호사실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알려주고 열심히 도와주셨다. 아이 대변을 봤을 때 씻기는 법도 몇 번이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대변은 자기네가 치울 테니까 직접 치우지 말고 집에서 할 수 있게 알아만 가라는 것이었다. 아이를 보다가 왜 우는지 알 수없어 SOS를 치면 언제든 달려와 주셨다. 매일아침 목욕을 시켜주셨고, 아이 보기가 힘들어 데려가면 언제든 돌봐주셨다. 밤에는 조리원 왔을 때 자라면서 굳이 수유를 권유하지도 않았다.
조리원이 산후조리하러 가는 곳인데 생각보다 매우 바쁜 스케줄로 굴러간다. 신생아의 위장은 계란만 하다고 한다. 그들은 수시로 배가 고프다. 수유간격이 2시간 이내인데, 모유수유를 하는 경우에는 더 자주 먹여야 한다. 거기에 마사지를 2주내내 받는다고 하면 그중에 1시간 반은 마사지를 받는 시간으로 써야 한다. 낮에 조리원에서 교육이나 프로그램을 하기도 한다. 모빌 만들기를 하거나 신생아 관련 교육을 하는데 대부분 업체홍보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이 역시 1시간 반을 또 써야 한다.
큰 스케줄을 적어보면
-8:30 아침식사
-10:00 오전간식
-11:00 오전 프로그램
-12:30 점심식사
-13:30 오후 프로그램
-15:00 오후간식
-17:00 저녁식사
-19:00 모자동실(아기와 무조건 보내야 하는 시간. 신생아실 청소 및 소독시간이다)
-20:30 야식
생각보다 이게 엄청 바쁘다. 여기에 모유수유를 해서 수유콜을 받으면 중간중간 계속 1시간 이내로 아기를 데려와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 것이다. 막상 데려왔는데 신생아 특성상 갑자기 자버리는 난감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나의 목표는 오로지 산후조리였다. 내 몸을 잘 회복해야 아이도 잘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가슴통증으로 어쩔 수 없는 모유수유와 가슴마사지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잠과 휴식에 나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프로그램도 일절 참여하지 않았고, 마사지 패키지도 결제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유수유를 해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바빴다. 너무 졸린 날에는 분유 보충을 부탁하고 수유를 한텀 건너뛰기도 했다. 종종 '나는 모성애가 없는 엄마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걱정이 되었지만, 내 몸의 회복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잘 선택한 일이었다. 2주내내 마사지를 받아야 부기가 빠지고 살이 빠진다며 업체에서 마사지를 권유하지만, 마사지를 받지 않아도 내 체중은 2주 동안 10킬로 이상이 빠졌다. 꼬박꼬박 오전 오후 간식에 야식, 밥을 두 접시씩 챙겨다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넉넉히 돈을 쓰고 싶고 그럴 여유가 충분하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업체의 상술에 넘어가지는 말자.
업체 홍보까지 들어야 하는 프로그램 대신 잠을 택했고, 덕분인지 나는 제왕절개를 했음에도 날아다녔다. 조리원 선생님이 제왕절개하고도 나처럼 벌떡 일어나는 사람 처음 본다고 했다. 조리원 동기를 만든다고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에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모유수유로 계속 수유콜을 받다 보니 잠깐 쉬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처음 돌보는 작은 신생아는 너무나도 작아서 만지면 부러질까 무서웠다. 혹여 울기라도 하면 어찌할 줄을 몰라 식은땀이 뻘뻘 났다. 아주 쉬운 기저귀 가는 일조차 초보 부모에겐 진땀 나는 일이었다. 아기가 당연히 태어나서 먹으려면 해야 하는 모유수유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세를 잘못잡거나 잘못 물리면 가슴에서 피가 나기도 했고, 신생아는 빠는 힘이 부족하다고 한다. 태어나면 먹고살아야 하는데 빠는 힘이 부족해서 못 먹는다는 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 조리원에 가지 않았다면 이 모든 걸 어디서 배우고, 누구에게 도움받았을까. 부모님들도 아기를 키운 지 너무 오래되었다. 경험자이지만 전문가는 아니다. 첫 출산이라면 조리원은 무조건 가는 것을 추천한다.
퇴소일이 가까워질수록 남편이 보고 싶은 마음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보다 이제 홀로 어찌 헤쳐가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밥, 빨래, 청소를 다 해주고, 아기 목욕도 시켜주고, 언제든 도와주며, 새벽에도 아기를 봐주고, 아기 수유, 기저귀 교체, 대변 후 씻기기까지 다 해주는 곳에서 나가기가 두려운 것이었다.
조리원 퇴소와 모유수유와의 전쟁 이야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