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복병
아이는 태어나면, 엄마의 모유를 먹는다.
요즘은 분유가 잘 나와서 분유를 많이 먹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쨌든 분유회사에서도 말하는 것이 아기에게는 엄마의 모유가 가장 좋다는 것이다.
나의 엄마가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나도 그럴 줄 알았건만 막상 나는 모유가 넘쳐흐르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좋다고 하니 모유수유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조리원에서는 혼합수유를 했다. 분유와 모유를 섞여 먹였다. 그러면, 모유는 계속 나오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서 유축을 해줘야 한다. 유축기라는 기계가 있어서 분유병에 모유를 담아뒀다가 아기에게 먹인다. 어떤 엄마들은 유축하고 있는 자기 모습이 젖소가 된 것 같아서 우울하다고 하는데 난 딱히 그렇진 않았다. 그냥 나오는구나 싶었고, 오히려 너무 신기하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오히려 나는 통증 때문에 우울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않아서 젖몸살이 왔는데 출산의 고통과 맞먹었다. 조리원에서 가슴마사지를 받았는데 이렇게 젖몸살 온 사람 중에 안 울고 참는 사람 처음 봤단다. 어떡하나. 이미 아픈 것을 참아야지 나아진다는 데 참아야지.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대부분의 아기가 빠는 힘이 약해서 모유직수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 옛날 시대엔 어떻게 했을까? 모유를 떠먹였을까? 궁금해졌다.
태어나서 못 먹으면 죽을 텐데... 힘이 없어 못 먹는다는 게 무슨 말이냔 말이다. 놀랍게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도 '모유수유 컨설팅'이라는 게 존재할 정도로 모유수유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유자세도 잘 못 잡으면 아이가 더 못 먹고, 유두에 상처가 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현실의 모유수유는 전쟁 그 자체다. 애는 배고파서 울고불고 우는데 수유자세 잡기는 어렵고, 빠는 힘도 약하고 잘 못 먹으니 또 울고. 초보엄마는 울고 싶다. 배고프다해서 물리면, 엄마품이라 그런지 갑자기 먹다 말고 잠을 잤다. 그럼 또 깰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 아이 역시 빠는 힘이 약해서 잘 먹지 못했다. 그래서 이용한 것이 유두보호기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젖병꼭지처럼 생겼는데, 이걸 가슴에 대고 먹이면 아이가 빠는 힘이 약해도 모유를 먹을 수 있다. 조리원에서 당분간 이걸 사용하기를 추천해 주었다. 이것도 조리원에 가지 않았으면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을 것 같다. 그나마 이게 있어서 모유수유를 할 수 있었다.
모유수유가 진짜 힘들지만,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과 기쁨이 있다. 아이가 내 품에 안겨서 열심히 모유를 먹는 모습을 보면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지는 것이다. 모유수유를 할 때 '옥시토신'호르몬이 나온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몸에서 저절로 나오는 이 호르몬이 아이와의 유대감을 더 키워주고, 모유도 촉진해 준다고 한다.
요즘엔 출산하자마자 단유 하는 엄마들도 많다고 한다. 분유가 잘 나오는 데 굳이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대문물을 이용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하지만, 모유가 잘 나온다면 힘들더라도 잠시라도 시도해 본 것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그건 엄마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확실히 분유를 먹었을 때 보다 모유를 먹었을 때 잠도 잘 자고 대변을 잘 보았다. 아이에게는 모유가 가장 좋다니까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후회하는 것은 억지로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엄마가 행복하고 건강해야 아기도 잘 볼 수 있다. 억지로 고집해서 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100일쯤에 새벽에 모유수유하다가 잘못 삐끗해서 손목이 아작 났다. 모유수유하면 확실히 손목에 안 좋을 것 같긴 하다. 상황에 맞춰서 하자.
조리원 퇴소 전날. 밤에 유축한 분유를 가지고 신생아실에 갔는데, 야간담당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내일 퇴소 맞죠?"
"네 맞아요."
"찰떡이가 잠투정이 많이 심해요. 각오하고 집에 가셔야 해요."
"아, 정말요?"
"집에 가서 놀랄까 봐 말해주는 거예요."
나는 몰랐다. 잠투정이 심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냥 진짜 투정 부리는 건 줄 알았다. 좀 더 귀담아듣고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 했다.
퇴소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신생아실 선생님이 한 번 더 나를 걱정해 주었다. 잠투정이 많다면서 말이다. 우리는 집에 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게 뭘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다.
집에 돌아오자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모유수유는 아이가 배고파하면 계속 물리는 거라고 해서 계속 물렸다. 근데 물리면 잠들고, 조금 있음 배고파 깨고를 반복했다. 깨워 먹이라는데 도무지 잠들면 깨지를 않았다. 수유 30분 하고, 트림 30 분 시키고 겨우 잠들었다가 또 금세 깨어나 울어댔다. 이러다가 내 허리와 손목이 작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보 엄마와 초보아빠는 애가 뭐 때문에 우는지 몰라 매번 진땀이 났다.
하루종일 안았다가 내렸다가 반복하는 날 보면서 남편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마트에 가서 분유를 사 왔다. 본인이 새벽수유를 담당할 테니까 본인이 있는 2주 동안은 밤에 자면서 몸을 회복하라고 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지만, 온전히 잘 수도 없었다. 아이가 울면 눈이 떠졌고, 모유가 돌면 새벽에도 유축을 해놓아야 했다. 그나마 남편이 도와줬기에 밤에 몇 시간이라도 잠을 잘 수 있었다. 남편이 없었다면 정말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새벽 4시~5시쯤 되면 남편은 쓰러지듯 잠들었고, 내가 교대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2시간마다 수유를 해야 하고, 심지어 모유수유를 할 경우에는 더 자주 수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임신 전에 누가 알았을까. 나는 심지어 태어나기 직전에서야 알았다. 그마저도 수유하고, 트림 시키고 기저귀 갈아주고, 젖병 세척하고 하다 보면 부모가 쉴 시간은 거의 없는 것이다. 또 다음 수유시간이다. 모유수유를 할 경우에는 수유시간이 더 걸리고, 아기는 빠는 힘이 없어 잘 못 먹거나 먹다 말고 자버린다. 초보 엄마에겐 정말 전쟁이 따로 없었다.
밤이 되자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다. 조리원에 있어서 몰랐던 진짜 전쟁. 조리원에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기가 밤이 되자 자지러져라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우는지 알 길이 없었다. 모유를 물려도, 분유를 타줘도 울기만 했다. 안아주어도, 둥가둥가해줘도 미친 듯이 울어댔다. 진짜 무슨 큰일이 났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아기는 놀랍게도 30분 이상을 거의 한 시간가량을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조리원부터 심상치 않았던 '등센서'가 발동했다. 아기침대에 내려놓으면 귀신처럼 눈을 번쩍 뜨고 다시 울어대는 것이었다.
어디가 아픈가 영아산통인가 걱정했는데, 이게 바로 조리원 야간선생님이 경고했던 "잠투정"이었다. 각오하라는 말이 이런 것인 줄 몰랐다. 이건 잠투정이 아니라 '잠 소리 지름'이나 '잠 자지러짐' '잠 울부짖음' 정도로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잠투정 대처법과 신생아시기 육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