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찾고 싶어서 떠나는 글쓰기 여정
Day 2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건 아마 에고를 버리는 일이 아닐까? 내가 특별하다고 느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일.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현실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고, 더 나아질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그런 특별함을 느끼거나 자신감을 갖는 일이 어째서 오히려 나를 망하게 만드는 일이 되는 걸까? 그 깊은 곳에는 아마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숨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를 보고 있다. 단순히 사치를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 가십걸 처럼 볼거리가 많은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애나는 첵 <에고라는 적>에 나온 안 좋은 예를 다 갖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 살며 실제로 그것을 현실이라고 믿으며 정말 모든 게 다 가능하다고, 아니 가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몇 후기에서는 사람들이 왜 애나를 좋아하고 도와주려고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도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애나를 왠지 모르게 좋아하게 됐다.
애나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 애나가 있습니다." 브랜딩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사람들은 기업을 제품을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브랜딩 한다. 어떻게 하면 더 좋아 보이게 만들 수 있는지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 안에서 좋아 보이게 만드는 것과 좋아 보이는 척 꾸미는 것에 대한 경계가 매우 불분명해 보인다.
나도 한 때는 나를 어떻게 좋아 보이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내가 뭘 더 해야지 이걸 사면 더 좋아 보이고, 이렇게 찍으면 더 좋아 보이고, 이렇게 쓰면 더 좋은 것 같아 보인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거짓 없이 진실되길 바라지만, 나 자신만큼은 최대한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한다. 나는 에고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애나였다.
애나는 사기꾼인가 아닌가, 하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인간관계는 모두 마음속에 어떤 욕망에 의해서 성사되는 일종의 거래라고 생각한다. 너무 딱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마저도 자신의 욕망이고 충분히 거래 이유가 될 수 있다. 애나는 사람들의 욕망을 잘 알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얻고자 하는 욕망, 에고에 눈이 멀어 애나의 환상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애나 만들기를 보는 동시에 에고라는 적을 읽게 된 건 굉장히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에고의 관점에서 애나와 주변 인물들을 보게 된 건 나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 줬다.
정체성을 찾는 일은 어쩌면 정체성, 즉 에고를 없애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