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코미디언 이경실이 인기 라디오 방송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배우 이제훈에게 했던 발언은 이를 성희롱으로 받아들인 청중들의 심각한 항의에 직면했다.*1) 당시 방송 현장에서 당사자들은 서로 웃고 넘기는 분위기였으나, 다수의 청취자는 이경실의 선정적인 발언이 천박하고 무례하다고 비난했으며 누군가는 범죄로까지 여겼다. 논란이 일자 방송사는 해당 방송분의 다시듣기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리고 그날 이경실은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에 의해 성폭력처벌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로 고발당했다.*2) 이 사건에서 대체로 관찰되는 사람들의 반응은 만일 발언의 주체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면, 그리고 그 발언이 겨냥한 객체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면 발화자가 파국적인 처지에 내몰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이 이러한 반사실적 가정을 통해 시사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오랜 교훈을 상기하도록 하는 것과는 결이 달라 보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평등에 관한 관념을 담고 있음이 분명했다.
ㅤ이 사건을 모종의 평등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쪽은 전술한 반사실적 가정을 전제로 개인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남성이 하는 성희롱과 여성이 하는 그것이 다르게 취급되는 상황을 불만스럽게 여긴다. 다시 말해, 남성 코미디언이 여성 배우를 상대로 “가슴골 약수” 운운했더라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을 터지만, 성별이 반대였기 때문에 약간의 소란만 있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한쪽은 이 사안을 정반대로 다루고자 한다. 즉,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성적 언동을 보이는 것은 비판받아야 하지만, 여성이 남성을 상대로 하는 경우는 용인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는 여성에게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어떤 차별적 구조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 이를테면 역사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남성이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여성을 성희롱하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차별의 평가 기준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ㅤ후자의 관점은 익숙하며 기시감이 든다. 이따금 일부 학자, 정치인, 활동가, 언론인은 혐오표현(hate speech)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할 때만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는 혐오표현을 “소수자 또는 그 집단을 대상으로 한 차별, 혐오, 조롱, 증오, 모욕 등의 적대적 내용을 담은 표현”으로 정의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는 “혐오표현의 대상이 소수자에만 한정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경험적ㆍ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적 소수자로 특정하는 것이 혐오표현의 개념 정립이나 그 해악을 명확히 하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3) 미국에서 포그노그래피 금지 운동을 주도한 매키넌(C. MacKinnon)의 주장에서도 유사한 논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유형의 주장은 특정한 자유 ― 특히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는 주체를 주로 사회에서 지배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전제하고 그 자유를 부분적으로 타협해서 평등을 촉진해야 한다고 본다.
ㅤ이것은 일종의 평등주의 논변이다. 이 논변의 특징은 검열을 옹호하며 오로지 특정한 집단, 곧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과 불평등에 노출된 약자들만이 그들의 불리한 처지를 조성하는 모욕과 멸시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 있다.*4) 이러한 평등주의 논변이 추구하는 “균형” 내지는 평등은 종종 이 논변을 옹호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비판자들에 의해서도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과 동일한 맥락에 서있다고 설명된다. 이를테면, 의료법은 오직 시각장애인이 안마사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은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이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이 같은 제한은 생활전반에 걸쳐 시각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유무형의 사회적 차별을 보상해 주고 실질적인 평등을 이루기 위한 것이므로 정당화된다.*5) 또한, 각 대학교는 신입생을 모집할 때 일정 합격자 비율을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계층의 몫으로 할당하고 있다. 이러한 입학정책은 소외계층에 속한 이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적을 가졌으나 합격기준에 못 미치는 지원자에게 박탈감을 주지만,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도록 약자를 배려한다는 점에서 정당하다고 여겨진다. 이렇듯 때에 따라 자유와 평등 사이에서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ㅤ그러나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만 안마사 자격을 인정하거나 대학입시에서 합격자 정원의 일부를 소외계층의 몫으로 할당하는 것은 단순히 정신적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람들의 자유를 희생하는 대가로 평등을 촉진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이때 자유가 제한되는 이유는 특정한 기준에 따라 구분된 두 부류의 집단 사이에서 각자 갖는 어떤 부담이나 혜택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선택 가능한 직업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각자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를 동등하게 만들려고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로 취업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마찬가지로 전체 합격자 가운데 일부를 소외계층에서만 선발하는 정책은 소외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의 합격자 비율을 똑같이 만들려는 목표로 고안되지 않았다. 만일 복지의 결과적 평등을 추구했더라면 더 과격한 방법이 사용됐을 것이다.
ㅤ이러한 차별정책은 다른 공익을 목적으로 도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훨씬 그럴듯하다. 가령 취업 선택지가 한정적인 시각장애인에게 특별히 안마업을 독점적으로 수행할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장애인 고용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비용이 감소할 것이다. 또한, 소외계층이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어 장래가 조금 더 유망해진다면 계층 간의 사회적 긴장이 감소할 것이고, 대학은 교육환경에 있어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장애인의 취업 제한과 다른 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로 남겠지만, 이처럼 약자를 배려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잠재적 손실은 공동체의 이익에 의해 무시될 수 있다.*6) 이 같은 정당화 사유는 중요하다. 차별정책은 시각장애인이 안마업을 독점할 권리를 가진다거나 소외계층이 합격자 지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전제하지 않는다. 만일 차별정책이 실제 의도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면 그러한 비판은 개인의 잠재적 손실을 변호하는 강력한 논거가 될 것이다.
ㅤ이와 달리 앞서 본 평등주의 논변은 성희롱이나 혐오표현 문제를 다룰 때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근거를 공공의 이익에서 구하지 않고 다른 개인의 권리에서 찾는다. 우선 이 논변은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고 그들 사이에서 사회적 지위와 발언권을 평등하게 만들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약자를 향한 멸칭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하지만 강자로 분류된 이들을 상대로 한 멸칭을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어야 한다(한때 이런 태도는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다). 왜냐하면, 강자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차별적 구조를 공고화하는 반면에, 강자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약자의 말은 그런 구조를 깨트리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견지에서 볼 때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성적 불쾌감이나 모욕감을 주는 언동을 보이는 것은 성희롱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성희롱으로 보아서는 안 되거나 최소한 남성이 여성에게 한 것과는 다르게 평가되고 다루어져야 한다.
ㅤ물론 이 논변 역시 무용론에 직면할 수 있다. 이 논변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강자의 발언권 제한과 약자의 발언권 증진 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는 방향으로 논증을 구성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잠재적 손실을 입는 이들을 위한 변호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기에 충분하지 않다. 어쨌거나 약자를 향한 혐오는 부정의할뿐더러 질 나쁘고 파렴치한 것으로 여겨진다. 비장애인에게 안마사 자격을 부여하거나 소외계층에게 합격자 몫을 할당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로 생각될지 몰라도 그 행위 자체가 심각한 부조리로 간주되지는 않을 것이다.
ㅤ그러므로 우리는 논증을 한층 더 정교화해야 한다. 그것은 다음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출발한다. 우리는 왜 성희롱에 반대하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당연하게도 사람이라면 누구든 인격권과 그로부터 파생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인격권을 보유하지만, 평등주의 논변은 성희롱 사안에서 여성만큼 남성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별로 인한 손실은 시각장애인이나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경우처럼 다른 이익에 근거해 무시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그 손실이 크게 두 가지로 고려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특정한 유형의 발언이 금지되어 입는 손실로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특정한 유형의 발언으로부터 보호받을 대상에서 배제되어 발생하는 손실로서 인격권과 관련된다. 사람들은 전자 못지않게 후자에도 관심을 둔다.
ㅤ일단 다른 심사기준은 잠시 차치하고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평등의 요청, 곧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라”는 원칙에 비추어보자. 사회적 약자는 특별한 배려를 필요로 하기에 그들에 대한 차별표현을 금지해야 한다는 측면은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반드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측면, 곧 차별표현의 보호 대상에서 이른바 지배적 다수 내지는 강자 집단에 속하는 이들을 제외하는 것은 전통적인 평등 관념에 의할 때 정당화되기 어렵다. 모든 사람이 지닌 인격적 가치와 이에 대한 권리는 성별ㆍ인종ㆍ장애ㆍ빈부ㆍ세계관ㆍ성정체성 그 밖의 신분 여하에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며, 따라서 “같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실제로 약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약자만이 누릴 수 있는 어떤 특권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마땅히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을 가진다는 점에 근거함으로써 건전성을 얻는다.
ㅤ이는 성희롱 문제와 관련해 평등주의 논변을 곧바로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의 직관을 드러낸다. 그 직관은 다음과 같은 의문으로 풀이된다. 모두가 인간으로서 평등한 지위에 있는데, 왜 성희롱으로부터 오직 여성만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 이것은 타당한 의문이다. 성희롱이 비판받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일반적인 이유는 성희롱을 당하는 사람에게 자기 의사에 반하여 성적 혐오감과 불쾌감을 초래하여 정신적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권리 차원에서 보자면 성희롱은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한 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로 간주된다.*7)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누구든 자기 의사에 반하는 성적 언동을 보거나 듣는 경우 정신적 고통을 겪을 것이고, 인격권은 특정한 사회적 집단에게만 인정되는 특수한 권리가 아니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향유할 자격이 있는 보편적 권리다.
ㅤ누군가는 혐오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현실에서 남성과 여성이 체험하는 성차별 경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며 여성이 더 열악한 지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서 우리가 모종의 구조에 호소하는 것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만일 여성 CEO가 소년가장 노동자를 성희롱한다면 그것은 약자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지만, 오직 여성만을 피해자로 상정하는 구조는 합당한 답을 주지 못한다. 또한, 그러한 차별은 합리적이라기보다는 자멸적일 것이다. 우리가 평등한 존중과 보호라는 원칙에 예외를 둔다면 시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졌거나 자신이 노력해서 성취한 바에 따라 도덕적 지위를 박탈당해야 한다. 평등한 자로서 대우받을 개인의 보편적 권리와 평등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대신하여 일각에서 제안하는 새로운 평등관을 위해 타협하는 조치는 자유를 구가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평등을 두려워해야 할 무엇으로 만들 것이다.
Feb 24, 2023
* 이 글은 또한 나의 개인 블로그에 게시되었다. (최초발행: Feb 24, 2023)
1) 정한별, “"이제훈 가슴골 물은 약수"…이경실, 발언 논란 휩싸였다,” 한국일보 (2023년 2월 20일)
2) 이혜원, “‘이제훈 성희롱 발언’ 이경실, 연대생에 고발당했다,” 동아일보 (2023년 2월 20일)
3) 국가인권위원회.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 (2016년 12월), 15-16면
4) R. Dworkin, “Women and Pornography,” New York Book Review (Oct 21, 1994), p.41
5) 헌재 2021. 12. 23. 2019헌마656 [판례집 33-2, 870]
6) 타인의 이익을 제한하는 어떤 차별적인 정책이 정당화되려면 일정한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공동체의 이익이 개인의 손실보다 커야 하며, 둘째 같거나 더 큰 수준으로 공동체의 이익이 되면서도 개인의 손실이 상대적으로 적은 다른 방법이 없어야 한다. 다만, 이 사안에서 의료법 조항과 국공립대학의 입학정책은 정당하다고 인정된다는 점을 전제로 따로 그 조건을 충족하는지는 논하지 않겠다.
7) 대법원 1998. 2. 10. 선고 95다39533 판결 [공1998. 3. 15.(54), 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