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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Apr 10. 2023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폐지해야 하는가?

ㅤ오늘 국회에서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루어진다. 각 정당은 대체로 자기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 제44조 제1항은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라고 정하고 있으며, 동조 제2항은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인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신체의 자유를 특정한 공직과 결부하여 권력의 개입에 제약을 부과하는 것은 통치구조로서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의회 내지는 의원의 특권이다.*1) 대의민주제에서 의원들은 형사범죄와 연루되더라도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 주로 현행범인이 아니고 회기 중일 때 ― 체포와 구속을 합법적으로 회피할 수 있다.*2)

ㅤ그런데 이러한 불체포특권은 누구보다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는 이들이 저지른 부정과 부패 혐의를 방어하는 수단이라고 비판받는다. 이른바 “방탄 국회”라는 조어는 의회의 불공정한 태도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을 압축하는 표현이다.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시 소환되는 하나의 주장은 불체포특권을 겨냥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주장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여당은 야당 대표가 과거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들의 대표를 비호하는 야당의 행동을 문제로 삼는다. 이것은 일종의 정치적 공격, 다시 말해서 불체포특권이 부당하거나 정당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야당 대표의 비일관성을 비판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 이와 달리 정의당은 불체포특권 자체가 잘못되었고 이를 폐지해야 하기 때문에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당론을 정했다.

ㅤ이것은 중요한 차이다. 우리 앞에는 지금 두 개의 주제가 놓여있다. 하나는 국회가 회기 도중에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는 어떤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하는 것이 올바른지 그른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범죄 혐의가 있는 국회의원을 체포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도록 정한 헌법제도가 올바른지 그른지에 관한 것이다. 혼동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양자의 차이를 잘 구분한다면 논의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정의당 대표는 “체포동의안 찬성이 곧 이재명 대표 구속 찬성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체포동의안은 회기 중인 국회의원이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법원이 구속수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라고 부연했다.*3) 이러한 태도는 후자의 주제에 대한 답을 “불체포특권은 옳지 않다”로 전제하고, 이를 규준으로 삼아 전자의 주제에 대한 답을 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불체포특권이 옳지 않다는 생각 외에도 셈법에 포함되는 여러 요소를 고려할 때 필연적으로 체포동의안은 가결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불체포특권을 부당하게 여기더라도 다른 이유에서, 가령 민주당의 주장처럼 이번 체포동의안이 반대자를 탄압하기 위한 모종의 “사악한 정치적 기획”이라는 점에서 이번만큼은 예외적으로 방탄조끼 착용을 허락해야 한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그러한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ㅤ어쨌거나 이 글의 주된 관심사는 후자, 곧 불체포특권이 부정의한 제도라서 폐지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불체포특권의 기이함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 그리고 시민혁명의 결과로서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 의해 채택되고 사랑받는 ― “법 앞의 평등”을 상기할 때 더더욱 두드러진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한데, 왜 국회의원은 신체의 자유에 있어서 더 특별한가? 물론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교사, 장학사, 대학교수 등 교원과 공직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도 몇몇 경우 법적으로 불체포특권을 향유하지만, 그들이 누리는 특권은 법률적 차원에 한정되어있다.*4) 이와 다르게 국회의원은 헌법적 차원에서 특권을 인정받고 있다. 참으로 의아한 점은 이것이 한국만의 고유한 제도가 아니라 대의민주제를 시행하는 국가 대부분에서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레 “왜” 그런지로 향한다. 어째서 대의민주제 국가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채택하고 있는가? 대의민주제와 불체포특권 사이에는 어떤 필연성이라도 존재하는 것인가?

ㅤ역사 연구가들의 통상적인 설명은 불체포특권의 기원을 영국에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대략적으로 살펴보자면, 한창 의회제도가 발달하던 시기의 영국에서는 국왕이 의회와 대치할 때 의원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는 방식으로 대응했고, 이에 의회는 국왕이 의원을 임의로 구속할 수 없도록 요구하면서 불체포특권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불체포특권은 국왕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로부터 의회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고안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한 가지 의문은 과연 지금도 여전히 불체포특권이 필요한지다.  과거에는 통치자 한 사람이 사법권과 행정권을 행사했지만, 오늘날에는 국가권력을 각각 통치기관에 분산하고 있을뿐더러 특히 공화정에서는 명목상으로라도 군주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권력이 남용될 위험은 크게 줄어들었다. 오히려 남용의 위험이 커진 것은 권력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가진 특권으로 보이며, 이제는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역사적 유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생긴다.

ㅤ그러나 권력이 분산되었더라도 그것의 범죄적 이용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독재정권에 의한 테러 지배의 암울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의적인 권력이 어떻게 의회를 짓밟고 무시했는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그러한 사례가 반드시 멀게 느껴지는 과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에 발생했던 소름 끼치는 사건을 다시금 상기할 수밖에 없다. 2018년 드러난 기무사령부 내란음모 사건에서 쿠데타를 기획한 이들은 여소야대인 국회가 계엄해제를 요구할 것에 대비해 국회의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하려 했다.*5) 그들이 계엄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할 것을 계획한 까닭은 헌법이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도중 국회의 동의 없이 국회의원을 체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눈먼 권력은 더 과격한 방식을 추구할 수 있다. 예컨대, 이승만 정권은 집권 연장을 목표로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 헌병대(오늘날 군사경찰)를 동원하여 국회의원 50여 명이 탑승한 통근버스를 강제로 연행했다. 이때도 불체포특권은 존재했으나, 발가벗은 폭력 앞에서 헌법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았다.

ㅤ사실 권력자가 헌법을 뭉개버리기로 마음먹은 이상 통제를 벗어난 권력에 의해 유린당하는 것은 의회만이 아니다. 따라서 불체포특권을 존치해야 할 이유를 논할 때는 헌법의 실효성(effectiveness)을 전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헌법이 실효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때 불체포특권의 의의는 무엇인가? 우선은 자의적 권력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점에서 전술한 것보다 그 정도가 약하면서도 특정한 인물과 관련된 사례를 고려할 법하다. 말하자면, 대통령이나 검찰총장, 경찰청장, 영장전담판사 등 권력자들은 정치적으로 혹은 다른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국회의원을 음해하거나 제거할 목적으로 체포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뇌물수수죄로 엮거나 부정청탁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그렇게 옥살이를 시키는 데 성공하면 추후 무죄가 입증되더라도 상대는 타격을 입는다. 아마 자신이 신뢰하거나 평소 청렴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정치인이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몇몇 사람은 그 사건의 이면에 무언가 어두운 힘이 개입했을 것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ㅤ하지만 이 설명은 너무 일화적이고 듣기에 따라서는 뭔가 음모론 같이 느껴진다. 또한, 불체포특권이 변호해야 할 대상을 좁게 설정한다.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정치인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참전용사를 지원하는 법안에 찬성하는 것을 막고자 경찰이 그를 체포하는 것은 정당한가? 그러므로 불체포특권을 이해하는 데에는 특수한 사례에 의존하는 상상력보다는 좀 더 일반적이고 세련되며 발전된 해명이 필요하다.  포퍼(K. Popper)식으로 표현하자면, 어떻게 조직된 정치제도가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의 해악을 막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6) 실제로 학자들은 불체포특권을 권력분립의 원리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즉, 불체포특권의 의의는 권력의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nce)을 달성하고 다른 국가권력의 부당한 ― 주로 의회를 지배하려는 정략적인 목적의 ―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의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는 합당한 설명으로 보이는데, 권력은 충분히 그런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다. 꼭 군대나 경찰을 동원해서 국회의원이 탑승한 통근버스를 납치하지 않더라도, 행정부나 사법부는 겉보기에는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의회를 위협할 수 있다.

ㅤ불체포특권을 권력분립과 관련짓는 관점은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게 한다. 당장 라디오를 틀면 정부와 국회가 대립한다는 소식이 보도된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는 굉장히 좋은 신호다. 국가기관이 서로 견제한다는 것은 초월적인 권력이 출현할 가능성이 작다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액턴 경(Lord Acton)의 말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굳이 해설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그러한 견제는 각 기관이 서로 고유한 권한을 침범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이러한 안전장치를 하나 제거하자는 주장과 동일하다. 또한, 그 주장의 무게는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이나 불소추특권을 폐지 또는 제한하자는 주장과 같다. 이쯤에서 흥미로운 점 하나를 언급하자면, 우리 주변에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비판하는 견해는 쉽게 찾을 수 있어도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비판하는 의견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과는 달리 대통령은 형사소송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데도 말이다.

ㅤ독자는 지금 내 주장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나는 대통령의 특권도 문제시되지 않는데 어째서 국회의원만 못살게 구냐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죄를 지으면 반드시 구속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견해를 제외하고, 우리가 양자의 특권을 서로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신념을 고집하는 것 외에도 다른 기준이나 원칙을 고려할 수 있다. 가령 국회의원은 수백 명이라서  몇 명쯤 체포되어도 의회가 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으므로, 불소추특권은 국정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혹은 불가피하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물론 내가 생각하기에 법 앞의 평등과 불체포ㆍ불소추특권이 공존하는 우리 헌법에 대한 최선의 해석은, 이러한 특권은 공직을 갖지 않은 국민이 열등하다는 전제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지위와 의회의 독립성 보장 따위의 헌법기능적 필요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 앞의 평등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국회의원의 특권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ㅤ한편, 한국이 민주화를 성취한 이래로 행정부나 사법부가 의회를 탄압한 사례를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까닭은 불체포특권이 현존하며 실효적으로 정착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달리 말해서 불체포특권을 폐지하더라도 우려하던 일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아직 그것을 폐지하지 않았기에 용기 있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는 불체포특권이 없어지고 나서야 정직하게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고양이가 든 상자를 열지 않아도 어느 정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권력은 헌정질서 파괴라는 메두사의 눈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방식으로 작동될 위험이 있으며, 지금도 각기 분산된 권력의 경계가 맞닿아 있는 곳에서 국가기관은 서로의 권한을 주장하며 다투고 있다. 특권의 안전핀을 제거함으로써 우리가 얻게 될 것은 어떤 숭고한 정치적 이상의 실현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대표자를 4년마다 우리 손으로 심판할 권리의 손길에 두는 대신 국민을 참칭한 자의적인 권력의 손아귀에 무방비 상태로 내던졌다는 뒤늦은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은 후에는 이미 늦었다.


* 대표이미지 출처: 대한민국국회

* 이 글은 또한 나의 개인 블로그에 게시되었다. (최초발행: Feb 27, 2023)


1) 이를테면, 독일 기본법 제46조 제1항은 “의원은 범죄를 구성하는 현행범이거나 그 익일에 체포되지 않은 때에는 연방의회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책임을 지거나 체포될 수 있다”라고 규정하며, 프랑스헌법 제26조 제2항은 “현행범이거나 최종판결이 선고된 경우를 제외하고, 의원은 소속 원(院)의 사무처의 동의 없이 범죄 또는 위법행위와 관련하여 체포되거나 자유를 박탈 혹은 제한받지 않는다”라고 규정한다. 일본헌법 제50조는 “양원의 의원은 법률이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도중에 체포되지 않으며 회기 전에 체포된 의원은 소속 원(院)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2) 다만 불체포특권의 적용 범위에 형사범죄가 포함되지 않는 국가도 있다. 가령 미국헌법 제1조 제6항은 “양원의 의원은 내란죄, 중죄 및 치안위반죄를 제외한 어떤 경우에도 회기 중 회의를 참석하려 오가거나 회의에 참석한 도중에 체포되지 않는다”고 규정하는데, 이 조항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형사사건을 제외한 민사사건에 한정하여 체포할 수 없음을 규정한 것으로 해석한다. Williamson v. United States, 207 U.S. 425 (1908)


3) 정윤주, “정의 이정미 "이재명 체포안 찬성표결…불체포특권 폐지해야",” 연합뉴스 (2023년 2월 26일)


4) 교원지위법 제4조는 “교원은 현행범인인 경우 외에는 소속 학교의 장의 동의 없이 학원 안에서 체포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교원의 불체포특권을 규정하고 있으며, 공직선거법 제11조는 후보자 등이 몇몇 범죄나 중죄를 범하거나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포 혹은 구속되지 않으며 병역소집의 유예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5) 대비계획 세부자료, 42면(⑬ 국회에 의한 계엄해제 시도시 조치사항). 이 문건은 국군기무사령부에서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에 부속된 문건으로 2급 군사비밀 자료였으나 현재는 기밀이 해제된 상태다.


6) Karl Popper.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Volume Ⅰ: The Spell of Plato (London: George Routledge & Sons, Ltd., 1947),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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