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찾아가면 좋은 이유

우물쭈물하다가 2년이 지나버릴 줄은 몰랐지

by 정그루

주변에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가진 친구들이 의외로 많았다. 첫째부터 시험관 시술을 한 친구들도 있었고, 둘째가 오래도록 생기지 않아서 시술을 한 친구들도 있었다. 친구들의 경우 대부분 적정 체중에 건강한 편이었고, 운동도 병행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나이도 현재 나보다 몇 살은 더 어려서 그랬는지 다들 1차 시도에 바로 아이가 생겼다. 결혼하고 나서 거의 8kg이 찐 상태에다가 운동도 안 하는 나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었는데. 보는 것이 무섭다고 나 또한 시험관을 시작하면 바로 아이가 생길 것 같아 몇 달을 병원에 가길 미뤘더랬다. 우리의 신변 정리도 잘 못 하는 것 같은 우리 부부가, 아직 둘이서 잘 지내기도 미처 다 익히지 못한 것 같은 우리가 아이를 낳아도 되는 걸까. 고민하며 몇 달, 그래도 자연 임신은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몇 달.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시간은 꿀꺽 잘도 넘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임신이라는 것이 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다 접어두고 일단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 동네에는 난임 병원이 많은 편인데, 그중에서 가장 새로 생긴 사람 많은 병원을 택했다. 그래서 갈 때마다 2시간씩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 깔짝깔짝 다니던 그 시절과 이런저런 일을 겪은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시험관 시술에 대해 물어본다면, 마음의 준비는 어차피 되지 않고 부모 될 준비를 다 하고 나서는 이미 늦어버릴지도 모르니 그냥 빨리 시작하라고 하고 싶다.



1. 갑상선 수치


난임병원에 다니다 보면 피 뽑는 일쯤은 가벼운 일과가 된다. 나의 경우 피검사 후에 같은 병원에 있는 내분비내과에 자동으로 연결되어 내분비내과 진료를 받게 되었다.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내과적으로는 정상이지만, 산부인과에서 임신에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수치보다는 조금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갑자기 안 먹던 호르몬약이 내 삶에 들어왔다. 갑상선 약은 그냥 임신이 될 때까지 영양제라고 생각하고 멈추지 말고 복용하라고 하셨고, 임신이 되고 나서도 먹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초반에는 약을 통해서, 나중에는 회사를 쉬고 살을 좀 빼고 나니 자연적으로 수치가 낮아지게 되었는데, 아무튼 시험관을 시작하려고 해도 갑상선 수치가 적절해야 하니 수치를 높이거나 낮추는 데 들어갈 시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병원에 가 보는 것이 좋겠다. 시험관 시술은 나중에 시작하더라도...



2. 자궁경 수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받아 오고, 난포를 키워서 채취하고, 수정하고, 이식하는 것이 나의 신체 주기에 맞게 한 달에 딱딱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선생님께서 자궁에 크고 작은 폴립들을 제거하고 나면 임신이 더 잘 될 것이라고 자궁경 수술을 추천해 주셨다. 난자 채취가 끝난 후 얼마 안 되어 바로 수술을 받았다. 회복기간이 필요하니 수정된 배아를 제시간에 넣을 수 없어 배아들은 냉동실로 갔다. 9개의 수정란 중 5개의 배아만이 살아남았다. 수술 후 약을 통해 몸을 인공 주기에 맞춰 인간이 원하는 날짜에 맞추어 수정을 했다. 자궁경 수술 후 바로 이식을 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으니 안 좋은 경우 한 달은 또 그냥 흘려보내야 한다. 생각과 달리 난자가 많이 채취되지 않을 수도 있고, 자궁내막이 충분히 두껍지 않아 이식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변수가 참 많았다. 그래서 주변에서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서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라고 했던 걸까...


IMG_1609.JPG 환자가 참 여러 번 됐었다. 수술모자까지 쓰고 동지 여럿과 함께 링거를 맞으며 차례를 기다린다.

3. 체질 개선


병원에 가기 전에 남편과 나 모두 살도 쫙 빼고, 건강한 것만 먹고 준비해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막상 병원에 가기 전에는 심각성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크게 노력을 못 했었다. 하지만 시험관 시술을 하고 배아 등급에 실망하고(배아 등급과 착상 및 출산이 영향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몸이 축나는 느낌이 들면서 뒤늦게 건강한 음식들도 챙겨 먹고, 운동도 하고 노력을 조금 더 하기 시작했다. 평생 안 먹어본 다이어트 환을 먹어보기도 하고, 한약을 먹어보기도 했다. 물론 병원에 방문하기 전에 체질 개선을 마치겠다는 생각으로 병원에 늦게 방문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결과적으로는 더 좋을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난소 나이가 높거나 기타 이슈가 있을 경우 채취와 이식 한 사이클이 3-4개월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라면 가급적 병원에 빨리 방문하여 건강 관리를 병행하면서 노력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내 글로 인해 조급함을 느끼는 분은 없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도 글에는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갈 걸, 이라고 쓰긴 했지만 다시 돌아가도 동갑내기 남편과 바늘만 한 걸로 싸움을 계속하던 시기에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일찍 병원에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유가 아니라, 일찍 갈수록 시도해 볼 시간과 기회가 더 많기 때문에 일단 병원에 빨리 가는 것이 좋다고 썼다. 시험관을 바로 시작하진 않더라도 검사를 받아야 어떤 상황인지를 알 수 있으니까. 나의 친구인 언니의 경우 산전검사를 하러 갔다가 몸에 혹이 있는 걸 발견했는데, 아이를 낳고 싶으면 빠른 시일 내에 낳고 혹을 해결해야 한다고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임신에 힘을 쏟았고, 지금 아주 예쁜 아들을 낳고 살고 있다.


또 하나, 병원에 빨리 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이 말고 관심을 쏟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꼭 만나야만 하고, 아기가 꼭 생겨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나면 자연임신을 시도할 때도 여간 스트레스받는 게 아니다. 배란일을 맞추러 병원에 가고, 배란 타이밍을 찾겠다고 배란 테스트기를 몇 개씩 쓰고, 이후에는 이번엔 임신인 것 같다며, 미열이 나는 것 같다고 증상놀이를 하고, 얼리테스트기를 여러 개 쓰고, 한 줄을 보고, 실망하고... 몇 달 하고 나면 진이 빠지고 그냥 다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해야 할 존재로 임신을 생각하니 오히려 스트레스 때문에 아기가 잘 찾아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관을 할 때도, 몸이 축나는 만큼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피검사 결과가 0일 때 스트레스가 쌓이고, 남편에게도 예민해져서 싸움이 나는 경우가 있었다. 오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이던 친구가 있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좋아하는 여행을 한동안 갈 수 없으니 걱정 말고 실컷 여행이나 하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얼마 안 되어 아이가 생긴 걸 본 적이 있다. (물론 내 말 때문에 아이가 찾아온 건 아닌데, 나는 얼마쯤은 내 말이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하!)


병원을 방문하기 망설여졌던 요소들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동안 아주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독립생활이 서툴고, 우리는 아직도 가끔씩 싸우며, 나는 아직도 엄마가 되는 것이 두렵다. 그래도 '그래서 평생 아이가 없어도 괜찮겠냐'는 생각에는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그래서 두려움을 남긴 채로 오늘도 노력을 한다. 부족한 사람, 부족한 부부이지만, 아이를 만나기 위한 여정 속에서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믿으며. 티격태격하다가도 열심히 육아 릴스를 구경하면서.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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