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수영복 대표 브랜드, 스윔코(SWIMCO)에서의 친절한 쇼핑
밴프 여행 유튜브를 보면 빠지지 않고 온천에 가는 장면이 나왔다. 넓어 보이지 않는 풀장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 온천을 즐기는 장면이었다. '어퍼 밴프 핫 스프링스(Upper Banff Hot Springs)'라는 온천으로, 산 높은 곳에 있어 아래를 내려다보며 수영을 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온천, 수영장, 목욕탕 모두 가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또 가 줘야 하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그의 대답은 바로 'NO'였다. 사람들이 많이 들어간 곳에 굳이 몸을 담그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 김이 새긴 했지만 뭐 나도 안 가면 큰일 날 것 같은 장소가 아니었으므로 쿨하게 수용했다. 그래도, 호옥시, 모르니까 수영복은 챙기고.
밴프 로드 트립을 떠나기 전, 삼촌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들었다. 재스퍼 가는 길이 정말 예쁘니 일부라도 들를 수 있으면 들러라, 페이토호수는 이러했다, 예약을 안 해서 루이스호수를 못 봤다, 등등. 그리고, '밴프에 있는 어퍼 핫 스프링스도 특별한 경험이니 한 번쯤 가 봐라.'는 말씀. 듣자마자 머릿속에 재생되는 풍경. 멋진 풍경을 보며 목욕을 즐기는 내 모습. 우리도 가 볼까? 물었더니 그가 의외로 '그래',라고 흔쾌하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혹스러우면서도 기뻤다. 그런데 내 실수로 내 수영복 바지를 안 가지고 온 걸 깨달아 버렸다. 어쩔 수 없군. 수영복을 사야지. 캐나다는 어느 수영복이 예쁜가. 캐나다 여행 카페를 뒤적뒤적. 스윔코라는 데가 예쁘구나. 비싸구나. 그래도 어떡해. 가서 사는 것보단 싸겠지. (?)
로드트립 날짜는 다가오는데, 수영복은 아직이었다. 그는 911을 부르고 미국에서 놀러 온 친구를 배웅하고 나서 한껏 지친 상태. 내일 여행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고 싶단다. 여행 가이드(?) 삼촌께서 이렇게 하루를 보낼 수 없다며, 린 캐년과 딥 코브를 보러 가자고 하셨다. 나는 가기 전에 혹시 수영복을 사러 들를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여쭈었고 두 분은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다. 매장이 몇 개 없어서 그나마 우리 가는 길목에 최대한 가까운 곳을 골랐는데, 뭔가 세련되고 으리으리한 쇼핑센터가 나타났다. 주차장이 없어 빙글빙글 돌다 간신히 주차했다.
"딱 10분 걸릴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라고 외치고 나는 자신 있게 차에서 내렸다.
일단 길을 잃어서 수영복 매장까지 도착하는 데 이미 5분 이상 지체되었다.
매장은 적당한 크기에 깔끔했고 수영복 종류가 매우 많았다. 역시 한국인들이 좋다고 한 곳 맞다.
할인 코너, 할인 코너... 를 찾아 열심히 구경하고 있는 나에게 유난히 친절해 보이는 점원이 찾아왔다.
- 찾는 것 있나요...,
핫 스프링스 가서 입을 수영복 찾고 있어요, 할인하는 것 보고 있어요...,
- 아 핫스프링 좋죠, 어디 가세요...
밴프 가요... 아! 정말 좋겠어요....
스몰톡 후에 그녀는 여러 가지 수영복을 보여주었다.
뭐가 잘 나가나요? 아, 이건 좀 그래요...
- 왜요?...
(바디랭귀지와 함께) 여기 노출, 노우...,
- 아, 아이 갓 잇, 일단 그럼 이거, 이거 입어보세요...
세상엔 여러 가지 타입의 점원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 일단 어울릴 것 같은 옷을 무더기로 편하게 입어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날의 점원이 그러했다. 그리고 나는 그럼 점원을 만나면 진짜로 그 옷을 다 입어본다. 일반 탈의실 4개 정도는 되는 큰 공간에서 내가 골라온 수영복을 입고, 또 문 위쪽으로 던져주는 수영복을 계속 입었다. 안 어울려, 웃겨, 이상해, 아 이건 괜찮아. 역시 제일 비싼 게 제일 예쁘잖아. 계속해서 수영복을 갈아입으면서 대조해 본다. 탑 투, 할인하고 있는 청록색 수영복이냐, 세련되고 아름다운 홀터넥의 수영복 상의냐... 결국 홀터넥 상의로 정했다.
이런! 치마도 골라야 한다.
다시 입고, 입고, 입고. 평소 나의 스타일 같은 평범한 치마냐, 평소 내가 절대 입지 않을 듯한 물결무늬의 귀여운 치마냐... 또 입고, 입고...
좋아, 나도 예쁜 것 입을 거야, 여행 왔으니까.
(너무 고군분투하면서 옷을 입어봐서 사진이 없다)
그렇게 열심히 입고, 기왕이면 여러 옷을 가져다준 점원에게 구매하고 싶어 점원을 기다리는데 아뿔싸, 전화통화가 금방 끝나는 게 아니었다. 약 5분은 신발 구경을 하면서 기다리다 계산을 하려는데...,
기왕 사는 거 그의 것도 다시 사 줘?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이게 나아, 이게 나아? 전화와 통화를 반복. 겨우겨우 쇼핑을 마쳤다. 차로 돌아가 보니 삼촌과 숙모는 의자에 지친 듯 기대어 기다리고 계셨다. 당연히 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지났다. 송구한 마음을 안고 린 캐년으로 떠났다.
옷을 사러 가는데, 결정 쉽게 쉽게 못 하는 사람이 10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던 것 자체만 봐도
나는 아직도 나를 한참 모른다.
내일이 드디어 핫 스프링스에 가는 날! (페이토 호수와 콜롬비아 아이스필드에 다녀온 밤이다) 사람들 많이 들어간 물에 들어가기는 찝찝하다는 그를 위해 개장 시간에 가기로 했다. 그걸 위해 우리는 7시쯤 일찍 일어나 곤돌라를 먼저 보고 오는 계획과 예약을 모두 마쳤다. 하하! 좋았어. 완전 J 같았어. 근데 그때, 그의 작은 한 마디.
"난 사실 핫 스프링스에 가고 싶지 않아."
그야말로 충격발언.
수많은 물음표가 난무했다.
왜 진작 얘기 안 했어? 왜 수영복 사게 뒀어? 아침 일찍 가는데도 그렇게 싫어?
"네가 가고 싶어 하니까... 근데 사실은 나 안 가고 싶어."
다른 때 같았으면 분노의 푸닥거리(?)를 했을 텐데, 그리고 실제로 어이없고 화가 나긴 했는데, 나도 사실은 핫 스프링스에 덜 가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그가 폭탄선언을 하기 아주 조금 전, 여행카페에 핫 스프링스를 검색했더니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후기가 많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많은 게 문제인 것 같았다. 또 한 사람은 거긴 물도 이제 온천수도 아니라 했다. 흥미가 떨어진 차인데, 그래도 수영복도 샀고, 다들 가니까 가긴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런 말을 듣다니. 간계를 발휘할 때다.
"네가 정 안 가고 싶다면, 나도 그럼 안 갈게. 그래도 수영복 산 건 좀 아깝다. 그럼 대신에 내일 피곤하단 말 없이 내가 가자는 데 다 갈 수 있어?"
"어, 나 진짜로 어디든 다 갈 수 있어."
"그래, 그럼 내일 곤돌라 타고나서 캔모어 가는 거야."
아싸. 캔모어 안 가고 싶다던 사람 캔모어 끌고 가기 성공.
"그리고, 수영복 산 게 너무 아까우니까 우리 한국 돌아가서 수영장이든 어디든 수영복 입을 수 있는데 꼭 가는 거야."
"어, 그럼 그럼. 그러자."
원하는 것을 다 얻었다.
평화로운 밤이었다.
한 사람이 그리 싫다는 것을 굳이 굳이 할 이유가 무에 있을까.
이건 내가 얻을 걸 얻어내서 하는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