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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Oct 16. 2023

월-E  WALL-E  2008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린 어쩌면 수렵 채집 생활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디즈니의 창의력에 무한 감탄하면서도 영화적 상상력의 무서움을 함께 느꼈던 영화 <월-E>. 월-E(WALL-E: 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는 지구 폐기물을 수거하고 처리하는 로봇입니다. 2008년 상영 당시만 해도 그저 신기하고 신선했던 영화였지만 지금 다시 보니 세상 변화에 대한 예측을 '미리 보기'했던 것 같습니다. 월-E는 쓰레기로 가득한 텅 빈 지구에 유일하게 혼자 남아 외롭게 폐기물을 처리하는 로봇이 바라보는 우주와 지구, 그리고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난 생존이 아니라 생활을 하고 싶다고!



텅 빈 적막한 지구에 홀로 남아 수백 년이란 시간을 외롭게 일만 하며 보내던 월-E는 모든 것에 흥미가 없습니다. 지구가 망해도 끝까지 살아남는다던(?) 바퀴벌레가 월-E의 유일한 친구입니다. 다소 지루하고 삭막하게 매일을 보내던 그가 매력적인 탐사 로봇 ‘이브’와 마주친 순간, 잡동사니 수집만이 낙이던 인생(?)에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브는 지구의 미래를 결정할 열쇠가 우연히 월-E의 손에 들어간 사실을 알게 되고, 고향별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인간들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기 위해 서둘러 우주로 향합니다. 월-E는 이브를 뒤쫓아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우주를 향해 은하계를 가로지릅니다. 월-E가 우주에 들어서는 순간, 반짝이는 은하계를 훑고 지나가며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을 선물합니다. 인간의 우주에 대한 로망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결정체가 아름답고도 낭만적으로 펼쳐집니다.





쓰레기와 각종 폐기물만 가득한 지구와 광활한 우주, 특별한 대사 없이 보여주는 장면들을 따라가면 고요함과 함께 깊은 적막함의 공간을 만나게 됩니다.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이유가 아마도 이런 고요함이 그리워서 인가 봅니다. 기계와 폐기물을 뚝딱거리는 월-E와 이브 간의 오가는 단순한 기계음의 높낮이와 음의 길이 변형만으로도 충분히 감정 표출과 소통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월-E를 기다리던 애완용 바퀴벌레의 움직이는 속도와 더듬이의 방향만으로도 그리움과 반가움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다정함과 순수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우리 맛있는 채소도 심고 피자도 심어 보자고!



미래의 모습(?)인 우주에서 고향별을 그리워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너무 충격적입니다. 모니터 앞에서 하루를 보내고 운동 부족으로 복부 비만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우리 모습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기계적인 통제(?) 속에서 보내는 판박이의 삶, 그래서 누구나 같은 모양으로 짧아진 팔다리와 무기력한 모습들엔 호기심도, 재미도 없어 보입니다. 이브와 월-E의 만남이 없었다면 인간들은 지루한 삶에서 활력을 찾을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오래전부터 우주를 동경하던 지구의 사람들이 이젠 우주에 살면서 고향별 지구를 그리워합니다. 발달한 기계 덕에 편리해진 생활, 그렇지만 그 편리함만큼 더 퇴화한 사람들의 몸은 작은 '생명체'를 계기로 그리워하던 지구별을 향해 새로운 꿈을 꿉니다. 선장은 우주선에서의 안락한 생존이 아니라 고향별에서 인간처럼 생활을 하고 싶다며 오토 파일럿의 제안을 뿌리칩니다.



인간에게 안락한 상태와 무기력한 상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주에서 고향별을 그리워하며 생활하는 인간들은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형태의 몸으로 안락의자에 앉은 채 기계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 보여주는 대로 모두 같은 문화를 향유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월-E가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식물이 유일하게 '스스로 자생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월-E의 소동으로 인간들은 자신의 모습에서 깨어나고, 아주 오래전 옛날처럼 스스로 채소도 키우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피자나무도 심고 싶어 합니다.







앞으로 올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 생명력과 사랑을 간직한 삶의 이야기, 코로나를 겪은 우리에겐 생명이 존재하지 않던 지구의 삭막한 모습이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우린 문명이 발달할수록 아날로그 보다도 더 훨씬 이전의 원시적인 시절을 그리워할 때가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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