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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Jan 31. 2024

거울

그동안 잊고 지냈던 얼굴, 그때의 모습을 알고 계신가요?


사라졌던 얼굴을 찾아볼까요?




사실 젊을 땐 거울을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겨우 아침에 나가기 전 한번 정도? 생각해 보면, 그것도 옷매무새나 머리 정리를 위한 것이지 ‘내 얼굴’이나 ‘나’를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나서부터 거울을 더 자주 봅니다. 시작은 아마도 새치가 생기면서부터였을까요? 이젠 내 얼굴과 나 자신을 자세히 바라봅니다. 어느 날 세수를 하다가 마주한 거울 속의 얼굴... 낯설기만 합니다.






거울 속의 얼굴이 좀 낯설지 않나요?


그만큼 '나'를 자세히 봐주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너무 바빠서였을까요? 피하고 싶거나 무관심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항상 내가 알고 있는 그 얼굴일 거라고 너무 자신만만했을까요? 세월이 지난 지금 내 얼굴을 바라보다, 문득 예전의 사진을 찾아봅니다. 지금이야 휴대폰이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쉽게 셀카라도 찍고 이런저런 이유로 찍을 기회가 많지만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 당시엔 기껏해야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고작이었고 따로 카메라로 '찍는 행위'를 해야 사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앨범을 뒤지다 보니 사진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내 '얼굴이 사라진' 기간이 꽤나 길었다는 걸 확인합니다.



스스로 얼굴을 잊고 산 시간, 그동안 자신을 어디에 남겨두고 있었을까요? 어떤 순간들이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졌을까요? 지금, 아침마다 아니 순간순간 거울 속의 나는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을까요? 나의 무엇을 바라봐 달라고 눈길을 주는 걸까요? 의문은 계속 꼬리를 이어가지만, 이젠 사라졌던 내 모습을 찾기 위해 나도 모르는 내가 드러난다 한들 그것도 그대로 봐주려 합니다. 어느 날엔가, 정말 눈길조차 주기 싫을 만큼 마주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나를 확인하는 순간, 아플지도 모른다


지금은 일부러라도 사진을 가끔씩 찍어봅니다. 혼자서도 가족들과도. 그리고 실제로 거울을 지주 들여다봅니다. 표정의 변화와 흰머리들, 그리고 늘어나는 주름을 깊이 바라봅니다. 흰머리와 주름이 생길 만큼의 세월 동안 내 삶에도 내 나름의 깊이가 생겨났는지, 내 삶의 색이 어떻게 변했는지 물어봅니다. 또다시, 시간이 지나면 달라져 있을 지금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봅니다. 기억으로 저장합니다. 나만 아는 내 모습을.



내가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이 어쩌면 아플지도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사진을 찍지 않거나 거울을 보지 않게 된 것은 새로운 환경에서 바쁘고 지친 무표정의 얼굴과 피곤한 얼굴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돌아봐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진짜 알아보고 이해해 줄까요? 사람들은 모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나도 나를 잘 모를 때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자꾸 돌아보면 내가 왜 지금의 모습인지 조금은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 얼굴의 표정과 태도와 자세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닌 척 꾸민다 해도 나는 무엇이 가짜인지, 그 속에 숨어있는 진짜 나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예전, 몸과 마음이 힘들 땐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행복한 순간 속에서도 마음껏 그 순간을 누리지 못한 채 오히려 다가올지도 모르는 또 다른 불안과 두려움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듯 힘들었던 순간들과 어처구니없이 해맑게 깔깔거리던 모습들, 무표정 너머 오만의 시절까지 하나하나 남겨둘 것과 버릴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깊이, 오랫동안... 그렇게, 사라졌던 얼굴을 하나씩 찾아봅니다.



시간이 주는 선물일까요? 그러고 보니, 울퉁불퉁하던 삶의 모서리가 조금은 둥글게 바뀌어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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