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피싱 같은 영업에 녹아나는 노인들은 봉이다
"집에 뭐가 왔다!"
"??... 뭐가?"
"몰라, 무슨 택배가 큰 게 왔어."
"... 어디서 온 건데?"
"모른다니까! 이따가 가다 들러라!" 뚝..... 시도 때도 없이 불시에 전화를 해서 일방적으로 당신이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통화, 엄마의 전화는 매번 똑같습니다.
이번에는 또 뭘까요? 하여간 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합니다. 일단 퇴근길에 들러봐야겠습니다. 작년 가을에 신용정보 연체 통지서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노인을 대상(꼭 그럴 것만 같은 수법입니다.)으로 판매하는 건강보조식품 업체의 일방적인 택배 발송, 그리고 노인들이 돈을 내지 않으면 최고장이라며 협박성 문구를 사용해서 집으로 우편물을 보내는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후진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집에 도착한 택배는 커다란 박스에 '생녹용'이라는 이름을 단 건강보조식품입니다. 안에는 시답잖은 녹용이름표를 단 보조식품과 지로 용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9,000원을 3개월 분할 납부하라는... 택배사는 배달을 하는 것이 일이니 문 앞에 놓고 갈 수밖에... 하지만 엄마는 주인도 없는데 택배를 그냥 던져두고 갔다며 펄펄 뜁니다. 아무리 택배사 잘못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화를 멈추지 못합니다. 직접 만났으면 받지 않고 돌려보냈을 거라며... 참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지만 볼 때마다 답답합니다. 하필 금요일 저녁에 도착한 택배, 어차피 주말이 지나야 뭔가 해 볼 수 있습니다.
노인들은 자식들이 모두 분가하게 되면 부부가 혹은 혼자 살아가게 됩니다. 정서적으로 쓸쓸해지는 때이고 대부분은 무료한 일상을 보내게 됩니다. 제 부모정도 나이의 노인들은 더더구나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하지 못해서 자주 방황합니다. 노인정이나 복지관을 다니거나 종교시설의 지인들, 동네 친구들을 만나며 소일합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의 노인들에게 사근사근 손 내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강의료기나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방문판매업자들입니다. 특정 장소에 노인들을 모아두고 감언이설로 공짜 물품을 조금씩 주면서 환심을 삽니다. 꽤 여러 날동안 하루 일과 중 긴 시간을 보내는 곳이 됩니다. 어른들이 갑자기 어딘가 활기차게 다닌다면 거의 확실합니다. 그곳에 가시는 겁니다. 적적한데 어머님, 아버님을 외치며 친숙하게 다가오는 영업사원들, 자식들보다 살갑고 매일 얼굴을 보니 친근함을 느낍니다. 그 이후 이름, 전화번호, 주소를 땁니다. 이후는... 지금 이렇게 되는 겁니다.
예전과 달리 전화나 인터넷, 홈쇼핑 등등 고객이 직접 매장을 찾지 않고도 재화를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해졌습니다. 그에 따라 관련 법들도 만들어졌지만 피해는 반복해서 발생합니다. 간단히 신고만으로 사업이 가능한 통신판매업자들은 그렇게 획득한 노인들의 연락처로 전화를 합니다. 주소 확인을 하고 잠깐의 통화 후 물건을 보냅니다. 노인들은 돌려보낼 방법도 모르고 물건을 떠안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연체료가 포함된 금액이 찍힌 빨간 글씨의 문서를 받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노인들은 전전긍긍합니다. 혼자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대응할 방법을 모릅니다. 자식이 있어도 선뜻 말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뭔가 잘못을 한 거 같아 자식들에조차 도와달라고 하길 꺼립니다.(20여 년도 훨씬 전, 실제로 전에 제가 근무하면서 본 실제 사례들을 지금 내 엄마를 통해서 봅니다.)
매번 적당히 해결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하나 상세하게 질문을 할수록 이야기가 바뀌는 게 수상해서 아무래도 경찰에 신고를 해야겠다고 하니 엄마는 순간 말을 멈춥니다. 제가 시작을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겁을 먹은 듯합니다. 일단, 업체에서 임의로 노인들의 개인정보를 활용해서 영업하는 행위에 각성이 필요해 보여 민원을 접수하기로 합니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한국소비지원에 구제 요청을 접수합니다. 아,,, 그런데, 그들의 절차에 맞지 않는다며 진행이 어렵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유는, 일단 소비자가 직접 업체와 처리를 해 보고 내용증명을 보내서도 안될 때 그 자료를 근거로 분쟁조정을 요청할 때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기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는 한국소비자원, 그들의 절차와 프로세스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해결의 의지가 없음을 확인합니다. 대한민국에서 NGO란 무엇인지, 조직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 NGO를 잠시 거쳐오긴 했으나 현재의 기능은 많이 관변스러워졌다고 느껴집니다.
보이스 피싱 같은 후진 영업으로 노인들의 삶이 무시당하거나 농락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시기를 견디고 살아온 노인들의 시간은 그렇게 함부로 무시되거나 희화화할 대상들이 아닙니다. 모두 늙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이유 불문, 노인들의 삶도 조금 더 존중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이번엔 좀 끝을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