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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Jun 03. 2024

가벼움을 향해 문을 열어두다

태어나고 살다가 사라질 뿐이니, 나를 이끄는 것에 그저 맡겨도 좋다


가벼움을 좋아합니다. 단순히 무거움의 반대가 아니라 무거움이 점차 가벼워지는 과정, 봄바람에 나풀거리는 나비처럼 번데기를 빠져나온 나풀나풀한 가벼움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깊은 무거움으로 가라앉지 않게, 어두움 속으로 사라지지 않게 부유하는 가벼움의 비상을 좋아합니다.






털어내고 덜어내고



평생을 사는 동안 우린 여러 번 변태의 과정을 겪습니다. 내면으로 혹은 주변의 환경에 의해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자주 그리고 꽤 긴 과정을 겪습니다. 그러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를 하나씩 찾아갑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조금씩 덜어내다 그것이 궁극에 이르면 털어냅니다. 무엇을 덜어내고 비워낸다는 건 오랜 시간의 문제가 따라다닙니다. 덜어내고 털어낸다는 건 의지와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혹은 무의식처럼, 때론 머리를 감고 가볍게 털고 말리는 행위처럼 그저 단순한 행위와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시간도 생각도 심지어 마음조차 우린 스스로 이해할 수 없을 때 움켜쥐고 불안해하고 조바심합니다. 하지만 이해가 되면 모든 것은 단순해집니다.



매미의 짧은 한철 시간과 한 시절의 꽃봉오리들이 다 그렇듯 때가 되면 모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사라집니다. 인간의 삶도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런 면에서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그 모든 것이 애잔하지 않을 수 없고 더더구나 짧은 한 철을 사는 관계들에 우격다짐할 일이 없습니다. 세상은 복잡해도 모든 삶은 결국 단순합니다. 태어나고 살고 그러다 홀연히 사라질 뿐입니다.







깊은 웅덩이에서 중력에 따라



깊은 웅덩이에 빠진 날, 오염된 오물을 견뎌야 할 수도 있지만 그 웅덩이를 벗어나지 못해도 조금씩 오염을 아래로 밀어낼 수는 있습니다. 모든 생각과 시간, 그리고 모든 행위는 중력의 작용에 충실하므로 아래로 밀어낼 수 있습니다. 그 안에 내가 잠식하느냐 나를 건져 올리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나를 건져 올릴 두레박에 무엇이 담길지, 두레박의 줄을 잡고 끝내 내가 세상 밖으로 건져 올려질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이미 여러 번 벽에 부딪히고 수많은 긁힌 상처가 생기겠지만 그래도 깊은 웅덩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순간이니 그것으로 마음은 가벼워집니다.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저는 현실에서 실제 싸움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형제들끼리도 화가 나는 일이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문제였던 것이 해결이 되기 때문에 잠시 서먹하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싸우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왜 싸움을 할 줄 모르는지 몰랐습니다. 돌아봐도 흥분하거나 격앙된 감정으로 누군가와 싸워본 적(물론, 의도적으로 흥분해서 화나는 것처럼 해 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기분은 별로였습니다. 그 행위가 내 삶에 특별한 의미가 없었습니다.)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탓하며 잔뜩 화를 내던 그 순간에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난 감정이 없는 사람인가? 상대방을 무시하는 건가? 내가 시건방진가? 갖은 상상과 생각으로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차분해지는 머리와 상대방이 왜 저렇게까지 흥분하고 화를 내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골똘히 생각에 잠길 뿐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나이를 먹고 - 난 상대방의 감정에 무관하기에 그 감정에 섞일 일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때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는 가벼움 때문에 더 크게 상대방의 화(혹은 오해)를 부르기도 하지만 '나의 가벼움'은 상대방의 심각함에 물들지 않습니다. 때문에 상대방과 싸움이 되질 않습니다. 서로 만나야 하는 감정의 접점이 없으므로 다툴 일은 더더구나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시간은 유한합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시도하듯 마음과 감정의 가벼움을 위해 여러 실랑이와 감정의 혼탁함을 덜어내는 건 어떨까요? 내 감정의 깊은 소리와 울림에 집중하며 조금은 가벼움을 향해 살짝 문을 열어두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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