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 본능적인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고 설사 자신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내재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모성애란 그런 것인가요?
부모가 되어 자식을 기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문득문득 자신을 닮은 자식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싫은 점과 나쁜 점만 빼닮은 자식을 볼 때 무슨 생각이 드나요? 얼마나 잦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은 부모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느끼고 배웁니다. 케빈의 모습 중 부모의 모습이 보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할 때 등장하는 어머니의 모성애, 그것에 대한 전제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 의문이 듭니다. 자유로운 자신만의 삶을 살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는 동안 삶은 짧은 시간에 급변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을 준비가 부족할 땐, 문제가 생깁니다. 누구나 예기치 못한 상황은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처음이 있는 법입니다.
본능에 충실하지 못한 것을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식과의 소통이 부재한 엄마, 그 엄마의 노력 부족을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라고 무조건 비난만 할 수 있을까요? 본능에 충실한 사람도, 그 이상의 것에 욕심을 드러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모성애일 때 당연히 내재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 부재함으로써 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자유로운 여행가로 살던 에바(틸다 스윈튼)는 케빈(이즈라 밀러)이 생기면서 삶이 달라집니다. 육아와 일을 함께 해야 하는 에바는 매번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케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랄수록 더 예민하게 굴고 자신만의 고집을 보이는 케빈, 엄마와 아빠를 대하는데 조차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마음을 열지 않는 케빈과 아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에바 - 의심과 불안 그리고 공포로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 서늘해 보입니다.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예쁜 모습 하나를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만 가지의 미운 모습들을 견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좋고 예쁜 모습 하나를 더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을 애쓰고 함께하는 것이 부모의 노릇이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간극은 어느 정도일까? 끝내 엄마와 소통하지 못하고 비뚤어진 채 성장한 아들의 반항과 저항이 점점 위협적인 폭력으로 자라고 마음속에서 꿈틀대던 폭력성은 거침없이 밖을 향해 뻗어나갑니다. 사회 문제의 시작점, 그 작은 시작이 가져온 결과는 어마어마합니다. 사회의 위협이 되고 자기 삶을 놓아버립니다.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하면서 그릇된 애착을 보이는 자식과 자식에 대한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는 엄마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만큼 가족과 주변의 죽음을 부릅니다.
자식을 낳고 길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까다로운 행위인지, 어디까지 책임이 따르는 것인지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눈높이를 가졌을 때, 또 서로 다른 양육 태도를 보일 때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 매 순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육의 일관된 태도가 왜 중요한지,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야 할 인내와 소통이 얼마나 소중한지 - 그것이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생각해 봅니다.
We Need to Talk About Kevin2012
인간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서 자신의 의사를 처음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은 우는 것일 겁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울음을 터트리며 나오니까요. 그런데 그 처음 의사 표현이 무시될 때, 가장 가까운 엄마가 알아채지 못할 때 그 조그만 아기의 무의식은 세상에서 거부당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매번 의사 표시를 해도 그때마다 거부되는 방식, 그 학습이 체화되면 세상은 부정적이고 자신과는 무관한 곳이 됩니다. 무의식에서 불필요한 곳, 자신과 무관한 곳은 점점 불편해지고 불만이 쌓이면 폭력을 쓰게 되고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약간의 기대가 다시 엄마를 향하게 되지만 그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할 때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배우기도 전에 마음을 닫아버린 자식은 세상과 타협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케빈과 같은 아이들은 현실 사회에 항상 존재합니다. 감정의 왜곡과 그로 인한 폭력성, 그것은 성장하면서 가속화되고 범죄가 됩니다.
자식을 길러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엄마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강요되는 모성애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볼 필요도 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삶을 살던 엄마가 산후 우울증에 빠지고도 스스로의 상태를 모를 경우도 있고, 안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추스리기에도 벅찬 상태일 수 있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엄마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가 불안해하는 것에 아빠가 문제없다는 시그널을 주거나 엄마가 문제없다는 것에 아빠가 위험의 시그널을 주면 아이는 자기 삶의 기준을 찾지 못합니다. 부부의 일관된 태도와 서로 조력하는 양육을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잘못된 것에 익숙한 삶은 파멸을 부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