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이기는 영어나 한국어나 마찬가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다문화 학생

by 정혜영

정신없이 바쁜 3월 신학기가 어느 정도 잡혀갈 무렵인 4월 초쯤, 세르게이(가명)라는 우즈베키스탄 아이가 전입해 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고는 하나 그냥 내 입장에서는 러시아에서 온 아이로 통 치환되었다. 세르게이의 아버님이 고려인 2세로, 할머님이 과거 고려인이셨던 집안 내력을 가진 아이 었다.

언젠가 일제강점기 때 연해주로 넘어 가 자신들을 고려인이라 부르며 살다가,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쫓겨 갔던 고려인들을 다룬 TV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우리의 아픈 역사에 눈도 시큰해지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TV에서나 볼 일이라 생각했지 내가 그분들의 후손과 만나게 될 줄이야.


다행히 세르게이의 아버님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대화를 나눌 수는 있을 정도로 한국어를 하실 수 있으신 분이셨다. 세르게이를 처음 데려와 교무실에서 만난 날, 세르게이의 아버님은 세르게이가 우즈베키스탄에서 받은 1학년 성적표를 보여주셨다. 우리나라 성적표 양식과 다르고 온통 우즈베크어로 쓰여 있는 생경한 성적표였지만, 만국 공통어인 숫자는 세르게이가 명석한 아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아버님께서 가정에서 세르게이에게 한글을 지도하고 있는 중이어서 말은 잘하지 못하더라도 따라 쓰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셨다.


처음 한 주 동안은 세르게이나 나나 서로가 어떤 사람인 지 파악도 해야 하고, 세르게이도 내가 안전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어야 자신을 더 내보일 수 있을 테니 탐색의 시간을 가졌다. 세르게이는 조용히 생활했다. 낯설기도 할 것이고, 언어가 익숙지 않아서이기도 할 것이었다. 바깥에서 몸으로 활동하는 시간에는 말로 하는 설명이 별로 없어서인지, 친구들과 잡기 놀이나 줄넘기를 하며 곧잘 어울렸다. 아이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금방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기했다. 세르게이를 수업 시간에 조금 더 참여를 유도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이때가 내가 헛발질을 하기 시작한 지점이다.


국어 수업은 어렵지만, 수학 연산은 숫자 위주로 나와서 잘 따라와 주었다. 문제는 통합 시간이었다. 과거 우리 어렸을 때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바른생활이라는 교과목으로 배우던 수업이다. 활동 위주로 교육과정이 짜여 있어서 저학년 아이들은 이 통합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세르게이에게도 활동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리듬악기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하는 활동을 잘하게 하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영어로' 설명해 주면 더 잘 알아듣겠지, 싶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유럽 문화권'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당연히 제2 외국어로 영어를 상용할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게 나는 세르게이에게 '영어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영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수업용 영어는 몇 문장 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제일 많이 한 영어는 "like this.(이렇게)"와 "understood?(알아들었어?)"였으니까.

처음에 세르게이에게 영어로 설명해 줄 때는, "선생님 영어 하신다."하고 관심 갖던 반 아이들도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이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세르게이에 대한 수업 중 영어 안내가 지속될 수 있었나 보다. 세르게이는 내가 영어로 안내해 주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내 안내대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영어 설명을 잘 알아들었을 거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르게이와 친하게 지낸다는 4학년 러시아 아이, 알로샤와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세르게이와 친한 아이라니 절로 반가웠다. 그래서 아는 척을 하며, 세르게이와 친하다며? 세르게이랑 같은 동네 사니?를 '영어로' 물어보았다. 한국에 온 지 2년 정도 된 알로샤는 이제 제법 한국어를 할 줄 안다. 알로샤가 한국어로, "몰라요." 하길래, 세르게이 몰라? 친하다던데? 다시 '영어'로 계속 물었다. 알로샤가 한국어로, "무슨 말인지 몰라요."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알로샤는 본토 러시아에서 온 '찐'러시아 외국인인데 영어로 물었더니 무슨 말인지 몰라했다.

순간, 모든 게 명확히 인지되었다.

너 영어 몰라? 한국어로 물었더니 모른단다. 러시아에서 영어 안 배웠단다. '러시아 제2 상용 외국어는 영어'란 생각은 그냥 내가 멋대로 한 착각이었다. 알고 보니 세르게이도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난 세르게이와 그동안 뭘 한 것이었을까? 왜 세르게이는 그동안 알아들은 척했을까?


세르게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선생님께서 뭔가를 설명해 주려 하신다. 교과서 그림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행동으로, 표정으로 보여주시기도 하신다. 슬쩍 친구들을 보니 뭘 하라고 하는 건지 알 것 같다. 따라서 한다. 선생님은 항상 열심히 뭔가를 설명해 주신다.

이거였다. 세르게이에게 한국어나 영어나 모르는 외국어이기는 매한가지였을 테니, 어떤 말로 가르쳐줘도 똑같았을 것이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세르게이는 선생님께서 '열심히' 설명하시는 말을 알아듣기 위해 모든 감각을 사용했을 것이었다. 의욕만 앞서서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다니. 창피해서 누구한테 말도 못 할 노릇이었다.





이후 세르게이와의 영어 대화, 아니 일방적인 영어 설명은 사라졌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열심히 '한국어'로 설명해 주었고, 세르게이는 여전히 눈치껏 따라와 주었다. 세르게이 덕분에 앞선 의욕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 '선의'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은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세르게이는 나와 2학년을 마치고 3학년 2학기쯤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어가 많이 늘었는지 모르겠다.

세르게이, 그때 내가 가르치려고 했던 열정만 기억해 주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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