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해도 될까요?
선택적 함묵증을 보이는 아이
다미(가명)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 었다.
어른들도 내성적인 성격이 있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말하는 것을 수줍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이들이라고 그러지 않을까.
같은 아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 같은 학년을 몇 년째 맡아도 지루할 틈이 없는 이유다.
금방이라도 교실 문이란 문은 다 뚫고 나갈 것 같은 '에너지 폭발이'가 있는가 하면, 금방이라도 교실 바닥에 구멍을 내고 쏙 숨어 들어가 버리고 싶어 하는 '내성적인 수줍이'들도 많다. 그게 또 정도의 차이가 심해서 같은 성격의 아이라고 똑같은 매뉴얼로 상대하다 보면 오류가 나기 십상이다.
수줍어서 말을 안 한다고 하기에는 다미의 말을 안 하는 정도는 심했다. 보통 수줍이들은 말을 잘 안 하다가도 3월 한 달 정도 지내보고 선생님이 생각보다는 '마녀'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 그 긴장의 끈을 조금은 늦춰주기 마련인데, 다미는 도통 그 끈을 풀지 않았다. 한 달이 아니라 5월이 될 때까지 다미가 하는 제대로 된 한 문장을 듣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이미 학년 초 학부모 상담을 통해 조금 길게 봐달라는 다미 어머님의 부탁이 있긴 했다. 아이가 말을 안 할 뿐이지 글쓰기 노트에 쓴 내용을 보면 다른 보통 아이들보다 글도 더 잘 써서 좀 더 지켜보자, 했던 게 5월이 되었던 거다.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어머니와 면담을 요청드렸다. 아이들을 만나온 경험이 좀 되다 보니, 보통의 아이들과 다른 친구들을 만났다고 당황스러워하거나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안달복달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이가 말을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가 학교나 담임 선생님에게 있는 것이라면 간과할 수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그런데 다미 어머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는 내 귀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다미가 하교 후에 집에 돌아가면, 거의 매일 여동생과 함께 학교 놀이를 하면서 논다는 것이었다. 다미가 주로 선생님 역할을 맡고 동생이 학생이 되는데, 다미는 선생님의 말투까지 흉내 내며 무척 많은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데 집에서는 수다쟁이라니, 조금 보탠다면 배신감마저 들었다.
친구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그간 얼마나 이 아이를 유리잔 다루듯이 대해 왔던가. 학교에서는 옆 짝과의 활동도 도통 안 하려고 해서 못 본 척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않고 있는 다미로 인해 다미의 짝 아이는 또 얼마나 난감해했던가. 결국 다미의 짝을 이미 다른 짝과 활동을 끝낸 다른 아이와 다시 한번 활동을 하게 하고 내가 다미의 짝이 되어 겨우 시늉만 하며 지냈는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 아이가 집에서는 말을 하는 아이구나. 그것도 수다스럽게.
학교에서 너무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서 학교 수업이 마음에 안 드나 걱정했다고 하니,
"아니에요. 다미는 학교 수업이 참 재미있대요. 동생이랑 학교 놀이할 때 엄청 신나게 해요."
하신다. 다행이었다. 나랑 수업할 때도 좀 반응을 보여주었다면 걱정을 좀 덜 했을 텐데.
"그래도 다미가 여러 사람 앞에서 뭔가를 하는 것을 계속 수줍어하는 데는 뭔가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안다면 저도 다미를 지도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아마, 저 때문인 것 같아요."
어머님께서 어렸을 때 다미처럼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부끄러워서 말을 잘 안 했었다고 하셨다. 그런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다미를 볼 때마다 속상한 마음이 든다고도 하셨다. 전문 기관에서 검사를 받으면 원인이 자기에게 있을까 봐, 아이가 힘든 것이 엄마 때문일까 봐 그것을 확인하게 되는 게 두렵다고 하셨다. 나도 내 아이를 심리센터에 데리고 다니면서 한동안 놀이치료를 진행했었다고, 그래서 어머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다미 어머님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다미는 그 뒤로 그림 놀이 치료를 다녔다.
그림 치료를 '그림 수업' 받으러 간다고 말하던 다미는 그림 그리러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다미는 천천히, 조금씩 표정이 좋아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놀이 치료 선생님이 1:1로 오롯이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으며 이야기하는 과정이 좋은 것 같았다. 다미 표정이 좋아지는 게 기쁘면서도, 1:1로 시간을 많이 가졌다면 내게도 좀 더 빨리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다미는 2학기가 되어 좀 더 많이 웃었고, 앞에 나와 발표하는 용기도 보여주었다. 다미가 국어 마지막 단원 역할극 시간에 할머니 역을 얼마나 실감 나게 연기했는지 영상으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다미는 3학년에 올라가서도 아마 3월 한 달, 아니 4월까지? 말을 트는데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래도 집에서 날마다 하는 선생님 놀이 때 연습해 둔 연기력으로, 3학년 말쯤엔 또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겠지. 다미의 연기를 보았으면 참 좋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