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철(가명)이는 뭐든지 잘하고 싶은 아이 었다.
읽은 책 권 수대로 10권, 20권, 30권……. 10권 단위로 차례차례 올라가서 1년에 100권 목표인 독서나무를 4월 달이 넘어가기 전에 이미 달성했다.
수학 시간에 제일 먼저 문제를 푼 학생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고 싶어 했고, 스포츠클럽 활동 시간에 하는 줄넘기도 누구보다 빨리, 많이 넘어야 했다. 학기초부터 선생님이 가르치는 오카리나와 리코더를 집에서 얼마나 연습했는지, 다음 날이면 연습곡을 뚝딱 외워서 불었다.
이쯤 되면 너무 모범생 아닌가? 생각되겠지만, 민철이는 잘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구보다 잘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게 문제였다. 잘하는 학생들 중 하나가 아니라 '누구보다 빠르게' 1등으로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아이.
1학년 때 까지는 개인 활동으로 하는 학습 활동이 많지만, 2학년이 되면 친구들과 공동으로 해야 하는 학습 활동들이 많아진다. 이제 학교의 시스템을 알고 1학년 때에 비해 제법 몸도 마음도 자란 2학년 학생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시민교육을 하기 딱 좋은 시기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공동의 과제를 이루어내는 협동 학습을 수시로 계획하고 수업에 넣는다.
그런 수업이 민철이와 안 맞았나 보다.
민철이는 느린 친구들을 견딜 수 없어했다. 느린 친구 때문에 자기 모둠이 1등을 놓친 놀이 활동은 민철이에게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재미없는 활동이 되었다. 친구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의견을 모아 결정을 내려 뭔가를 해야 하는 협동 수업 과정에는 유독 더 힘들어했다.
언젠가 민철이가 한창 모둠 협동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나에게 찾아와서,
"선생님, 저 혼자 하면 안 돼요?"
하는 것이었다. 모둠 활동할 때마다 민철이가 속한 모둠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서로를 배워갈 필요도 있다. 아이들이 먼저 요청하지 않으면 웬만하면 난 지켜본다.
"무슨 문제 있니?"
"애들이 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해서 우린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 혼자 하고 싶어요."
민철이가 처음부터 먼저 의견을 낸 민아(가명)를 마땅치 않아했다는 것은 안 본 척 해도 계속 지켜보고 있는 나의 레이다망에 걸려있는 터다. 민아의 의견이 자기보다 먼저 낸 의견이라 싫은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운다. 의견이 나눠질 때, 어떤 모둠에서는 순서를 정해서 하기도 하고, 어떤 모둠에서는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도 한다. 손을 들어 많이 나오는 대로 하자! 는 건실한 목소리도 어느 무리에서는 들려온다.
"그래, 그래도 이번 공부는 친구들과 함께 협동해서 해야 되는데. 너 혼자 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 거야. 괜찮겠니?"
괜찮단다. 빠른 고민에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민철이도 친구들도 행복하게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자기 혼자 하는 게 더 낫겠다고 이미 결정한 민철이를 다시 모둠으로 돌려보내 봤자 모둠 상황은 더 어수선해질 게 뻔한 일이었다. 민철이가 그 말을 하려고 나에게 와 있는 동안 민철이가 빠진 민철이네 모둠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원활하게 수업 자료 만들기를 진행 중이었다.
민철이를 혼자 하도록 하는 것이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일까. 모두가 함께 하는 활동이니 서로를 배려하면서 하는 거라고 일러주는 게 맞는 걸까.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민철이는 가지고 온 자료를 몽땅 자기 자리로 챙겨가 혼자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발표할 차례가 되었다.
결국 민철이는 혼자 하기로 한 발표 자료를 시간 내에 다 완성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민철이가 빠진 민철이의 모둠이 다 완성한 것도 아니었다. 민철이도, 민철이네 모둠도 그날 발표를 하지 못했다.
다른 날 같았으면 민철이는 자기 모둠이 시간 내에 끝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민철이는 조용했다. 화를 내지도 않았지만 발표하는 다른 모둠 친구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생각이 많아 보였다.
수업이 다 끝나고 민철이와 이야기를 따로 나눌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생각이 많았던 민철이의 표정을 보니, 내가 뭔가를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대신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뒤, 민철이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으니, 모르는 척 오늘 학교 생활에 대해 물어봐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이 마음이 불편하면 가장 편한 상대에게는 속마음을 드러낼 것이다. 민철이 어머니는 민철이가 다른 얘기는 다 하는데 그 얘기만 안 하더라는 말씀을 전해 주셨다.
민철이는 그 후로 혼자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민철이는 모둠 활동을 할 때마다 다른 친구가 먼저 의견을 얘기하면 여전히 불만에 가득한 표정으로 뚱해 있었다. 그래도 씩씩거리며 혼자 하겠다고 다시 내게 안 오는 걸 보면 기특했다.
민철이는 여전히 어느 집단에서건 1등을 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선생님도 평생 1등 해 본 적 없었다고 말해주었더라면, 민철이도 1등이 별 거 아니란 것을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