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랑 한 팀 먹기 싫어요
교육과정의 의도와 다르게 생각하는 아이
민재(가명)는 눈이 크고 피부도 하얀 귀공자 같은 아이 었다.
요즘 귀공자, 귀공녀가 아닌 아이들이 있을까마는, 유독 눈에 띄는 아이 었다. 인사도 잘하고 친구들과 별로 갈등 없이 잘 지냈으며, 학습 시간에도 해야 할 일을 성실히, 빠짐없이 잘하는 아이. 좀처럼 문제 될 것이 없는 편안한 아이. 민재는 그런 아이 었다.
그런데 그런 민재가 예상치 못한 일로 나를 당황스럽게 한 일이 있었다.
2학년 교육과정이 개정되어 지금은 교과서 명칭이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라는 교과서가 있었다. 우리나라를 남, 북한으로 구분해 비교해 보고, 세계 여러 나라도 살펴보는. 요즘처럼 세계 여행을 많이 다니는 시대에 아이들 말이 유독 많아지는 수업 시간이었다.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있지만 그때처럼 남한과 북한을 비교하며 배우는 수업 차시는 없어진 지 꽤 오래다.
'우리나라' 시간에 북한의 생활 모습에 대해서 비교해 보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한민족', 이 정도를 목표로 배우는 수업 시간이었다. 먼저 북한 어린이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본 후, 우리나라와 북한이 한민족인 이유에 대해 알아볼 차례였다.
"남한과 북한은 왜 한민족일까요?"
질문하자마자,
"모두 한글을 사용해요."
"똑같이 김치를 먹어요."
"전통 옷으로 한복을 입어요."
아이들은 교과서도 보고, 아는 것을 최대한 생각해내어 여기저기 손을 들어 발표를 잘해 주었다. 누군가가 "태권도를 해요!"라고 해서 엄지를 날려 주었다. 아무 문제도 없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과서에 남한과 북한이 한민족인 까닭을 써 보라고 했다.
그런데, 민재가 그 부분에 손을 대지 않고 비워둔 것이었다.
"민재야, 아까 우리가 함께 얘기한 거 쓰면 돼."
아이가 뭘 쓸지 모르나 해서 조용히 다가가 귀띔해 주었다. 그런데도 민재가 쓰지를 않는 거였다. 생각이 잘 안 나나 보다, 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며 교실 한 바퀴를 돌고 왔는데도 빈칸이었다. 왜 안 쓰냐고 물어보니, 꼭 써야 하냔다. 안 쓰면 안되냔다. 자기는 남한과 북한이 한민족이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아까 남한과 북한이 여러 가지 같은 문화가 있다고 하지 않았니? 같은 문화를 쓰는 사람들을 뭐라고 한댔지?"
"한민족이요."
"그런데도 남한과 북한이 한민족이 아닌 것 같아?"
이제 민재의 큰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저는 북한이 우리나라랑 한민족인 게 싫단 말이에요!"
왕방울만 한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곧 떨어질 듯, 말 듯, 민재는 목소리를 높였다. 속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애써 표정 관리하며 그렇게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지금은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고, 더 크면 생각해 보라고 얘기하며 달래주었다.
요즘 어린 학생에게는 북한이 먼 유럽이나 미국보다도 더 먼 나라, 아니 더 나쁜 나라로 각인이 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어렸을 때,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로 국민 영웅이 된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시대도 아닌데, 무엇이 이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 한 것일까? 2학년 아이에게 분단의 비극과 아픔에 대해 어떻게 달리 설명해 주었어야 했을까.
한 해 뒤에 다시 2학년 담임을 맡아 똑같은 수업을 다시 하게 되었을 때, 말과 행동에 더 신중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에게 혹시 선생님이 들려주는 말과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고 말해 주면서.
지금은 아예 2학년 교육과정에서 그 부분이 통째로 빠져서 이런 걱정 안 해도 되니 참 다행이다.
학년이 올라가서도 이런 문제와 직면했을 텐데……. 민재의 생각은 달라졌을까, 그대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