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예쁘시네요.
ADHD 증상이 있는 아이
민국이(가명)는 ADHD 진단을 받은 아이 었다.
민국이를 포함해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3월 첫날은 아이들도, 담임 선생님도 설렘과 긴장이 함께 하는 날이다. '저 사람이 나에게 득이 될까, 해가 될까?'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나오는 2학년 답지 않은 집중력은, 3월 첫 주에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먼저 일러주지 않아도 서로가 말을 낮추고 행동을 조심한다.
그래서 민국이와 같은 아이들은 더 크게 눈에 도드라지게 마련이다.
"선생님, 예쁘시네요~"
아이답지 않은 말투, 첫 만남에도 주눅 들지 않는 생글생글한 눈웃음, 첫인사라고 하기엔 뭔가 맥락이 애매한 문장에, "어머, 고마워~"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웃음으로 응대했다. 40을 전후로 한 나이에 어린 학생이 예쁘다고 해 주는데 일단은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까지가 민국이가 보여줄 수 있었던 가장 큰 친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민국이는 그렇게 다른 모든 친구들보다 빨리 나와 말을 텄으면서 가장 많은 말을 나누는 학생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학생 말을 잘 듣는 선생 이어서야 아니라, 모든 수업 시간, 매 순간마다 민국이는 말을 해야 하는 아이 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말해야 했고, 자기가 말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말해야 하는 아이였다.
자기의 순서를 좀처럼 기다려주지 않는 아이. 손을 두 번 들었는데도 말하지 않은 친구가 먼저 순서를 받으면 폭발하는 아이. 3월 첫 주 반 친구들과 함께 정성을 들여 만든 학급 규칙 같은 것은 깡그리 무시하는 아이. 복도에 그냥 지나가다가도 보지 못했거나 넘어졌다는 핑계로 옆에 지나가는 친구들을 다치게 하는 아이.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변명하고 다른 친구 탓을 하는 아이…….
어르고 달래도 보고, 진지하게 다짐 계획도 세워보고 험상궂은 얼굴로 야단도 쳐 보았지만, 민국이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민국이 어머님과 전화로 상담하는 것도 안 되겠다 싶어, 민국이 어머님과의 대면 상담도 여러 번 진행했다. 그때마다 민국이 어머님은,
"아, 네, 아이가 제 말을 잘 안 들어서……."
와 같은 말끝을 흐리는 대답뿐이었고, 아이 아빠에게 말해 본다는 말씀으로 얼버무리셨다.
느낌이 이상했다. 엄마의 눈빛과 심리 상태가 왠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민국이의 문제가 민국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보통의 다른 어머님들과의 상담에서는 교사가 먼저 묻기 전에는 "아빠가……."로 시작하는 말은 좀처럼 듣기 어렵다. 어머니와 이야기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민국이 아버님과의 상담을 요청드렸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민국이 가족 내의 힘의 역학관계가 느껴졌다.
대답을 주저하시는 어미님께 호기롭게 직접 요청드리겠다고는 했지만, 민국이네 집의 힘의 역학 관계가 이미 느껴졌는데 그 정점에 있을 아버님과 대면하는 게 솔직히 꺼려지긴 했다. 폭력적인 사람이면 어쩌지? 다짜고짜 욕만 해대는 사람이면? 덩치가 너무 커서 만나자마자 내쪽이 주눅 들면 어쩌나. 교사이기 전에 여자 사람이라 이런 마음이 안들 수가 없었다. 내가 민국이를 맡은 담임교사가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이런 상황과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난 교사다. 아이들의 안전과 학습권을 책임져야 하는. 그래서 용기를 냈다.
며칠 후 교실 뒷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오신 민국이의 아버님은, 그 모든 나의 상상을 깨고 무척 얌전하신(?) 분이셨다. 조금 큰 키였지만 그렇다고 영화에서 본 깍두기 같은 거대한 덩치도 아니었고, 민국이가 첫날에 내게 보여준 눈웃음이, 아빠를 닮았구나, 싶은 선한 표정을 가지신.
아버님과의 상담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아버님은 민국이에 대해서 어머님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주셨다. 민국이가 1학년 때 ADHD 진단을 받은 후 약을 복용했지만 예민한 아이라 약 복용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사촌 중에 민국이랑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있었는데 크니까 점점 개선되더라는, 묻지도 않은 말씀까지 해주셨다.
"자기의 의사와는 다른 행동과 말을 하게 되는 민국이도 학교 생활이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 필요하시면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무료 상담센터를 연계해 드릴 수도 있다, " 등의 계속적인 나의 설득에 아버님은 가족 모두 상담센터를 찾아가 보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가셨다.
그 후, 민국이 가족이 함께 상담 센터를 찾아 진단 검사를 받았고 어머님의 우울 진단과 아이의 ADHD 진단을 받아 한동안 치료를 진행했다. 민국이는 치료와 더불어 눈에 띄게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그 후로도 기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민국이에게도 다른 친구들이 갖지 못한 재능이 있었다. 목소리였다. 민국이는 목소리가 참 예쁜 아이 었다. 남자아이 었는데도 부드럽고 낭랑한 데가 있는 목소리. 다른 친구들에게 해코지하는 행동 때문에 주목받지 못한 재능이었다. 수업 시간의 대부분을 자신이 독차지해야 성이 차는 민국이를 단속하며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해주려고 온 신경을 쓰다 보니, 아이가 가진 재능을 발견하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면 핑계일까.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보통 때 같으면 누구보다 먼저 손을 들고 제일 먼저 해야 직성이 풀리던 아이가, 그날따라 손을 들지 않는다 싶었는데, 반 친구들 절반의 발표가 끝나갈 무렵, 수줍게 손을 들어 발표한 노래, '마법의 성'. 눈빛은 흔들리고 자세도 흔들리고, 노래하는 목소리는 더 흔들리고...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너무 아름다운 것이었다. 민국이 목소리가 저렇게 맑고 영롱했었나? 매일 짜증 내는 말투와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는 욕심 어린 태도만 단속하느라 민국이가 조용히 부르는 노래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어린 친구들의 평가는 때로는 어른보다 정확해서 민국이를 보는 친구들의 눈빛에서도 내 귀가 주관적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
민국이의 노래가 끝나자 친구들은 온몸으로 박수를 치며 좋아해 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민국이로 인해 힘든 상황에 놓이는 다른 아이들이 이제는 암묵적으로 민국이를 건드리지 않는 게 내가 안 다치는 거, 로 생각하며 조심히 생활하는데, 이날만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기뻐해 주다니. 민국이의 노래도 감동이었지만, 2학년 아이들의 너그러운 반응도 놀라웠다.
그 뒤로 민국이는 '노래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노래 잘하는 아이로 인정받았다고 민국이가 해왔던 행동이 일시에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민국이가 힘들게 할 때, 이따 노래 한 번 들려줘~ 하며 대응하는 여유도 내게 생겼다.
민국이는 3학년이 되어서 남자 선생님을 만나고는 또 한참을 힘들 게 적응해 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지나가다 교내에서 마주치면 예전의 그 눈웃음으로 "많이 예뻐지셨네요~"라고 인사해서 웃음을 주었다.
3학년 말 학예발표 주간에 교내 거리 버스킹에서 민국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민국이는 노래 부르고 옆에서 두 명의 친구들이 춤을 추는.
민국이는 노래할 때 행복해 보였다. 내가 좀 더 능력 있는 교사였다면 민국이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더 찾아주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가 된다. 그때는 민국이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버거워서 창조적인 뇌가 기능을 잘 못했나 보다, 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민국이는 내가 이후 어떤 힘든 아이를 만나도 두렵지 않도록 나를 강하게 단련시켜 주었다. 민국이 1학년 때 담임이자, 정년을 몇 년 안 남겨둔 대선배 선생님이 '60 평생 첨 만나본 아이'라고 하셨던 말씀처럼, 난 '민국'이라는, 이후 만나는 힘든 아이들을 슬기롭게 대할 수 있는 강한 예방 주사를 미리 맞은 것 같았다.
이제 한창 사춘기에 들어섰을 나이일 민국이. 자라니 조금 나아지더라는 민국이 아버님이 들려주신 민국이 사촌처럼, 조금은 더 나아졌기를, 조금은 더 행복해졌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