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 5년 차 쯤, 권태기가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난 스스로 '준비된 교사'라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내가 선생님이 되면 어릴 때 만났던 선생님들과는 다를 거야, 라는 내 생각은 오만이었고, 아이들은 생각만큼 예쁘지 않았다. 자괴감이 들었다. 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생님이잖아, 아이들이 예쁘지 않은 너가 어떻게 아이들의 '선생님'이 된다는 거야? 매일 내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괴로웠다.
그러다 교사들을 상대로 한 연수에서 한 강사분의 질문과 만났다.
"학교 선생님 하는 거 쉽지 않죠? 내가 무슨 선생님인가 싶으시죠? 교사를 계속 해야 할 지, 고민되시죠?"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하시는 질문 같아서 움찔했다.
그 분은 다음 두 가지 중 한 가지만 충족해도 교사를 계속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첫째, 아이들을 좋아하는가.
둘째,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가.
였다. 귀가 번쩍 뜨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게 뭐 별거인가 싶지만 절박했던 당시의 나였기에 이 말은 한 줄기 계시와도 같았다. 가르치는 것만 좋아해도 교사를 계속해도 된다니, 아이들이 예쁘지 않아서 괴로웠던 내게 그래도 교단에 계속 있어도 된다고 용기를 주는 말이었다.
희한한 것이,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들 곁에 계속 있었더니, 점점 아이들이 예뻐지더라는 것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눈에 띄는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오더니 나중에는 한 반 30명에 가까운 아이들 하나 하나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제는 너무 많이 인용되어 식상할 수도 있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어처럼, 그냥 오래 옆에서 보았더니 예뻐지더라는 것이다.
내가 했던 고민이 나만의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들은 매일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살아간다. 아이들로 인해 기쁘고, 괴로울 수 밖에 없다. 아이들과 부대끼다보면, 내가 이만큼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라는 자존과 만날 수 밖에 없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더불어 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20년 째 함께 하고 있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할 말이 좀 있지 않을까. 이 이야기들은 나의 20년 교직 생활 중 내리 7년차 2학년 담임을 하며 만난 일부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짧은 브런치북을 계획하고 일주일 동안 매일 하루 한 명의 아이들을 기억속에서 소환했다. 아이들을 이야기하며 아이들 너머로 어린 나와 만나는 일주일은 기쁨이자 슬픔이었다. 자주 아련하고 가끔 먹먹했다.
2학년 아이들이 하는 가식없는 말과 행동은 점점 '보여지는 나'라는 옷을 덧입어가는 내게 그냥 그대로도 괜찮다고, 주변의 사소한 것들과 함께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라고 '가르쳐' 준다. 나는 이제 내가 가르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아이들이 참 예쁘다.
매년 힘든 아이들이 있지만 그 아이들이 나를 전보다 더 어른이 되게 이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모두가 꽃이야> 노랫말 가사처럼,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다, 너희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