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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맨'을 아시나요?

그 시절 우리들의 남사친

by 정혜영


중2 딸아이가 요즘 눈에 들어오는 남자애들이 있단다. 남자’애'도 아니고 애‘들'이라고? 몇 명이냐고 물어보니 3명이란다. 금사빠인 우리 딸이 한 명으로 만족할 리가 있나. 거기서 그래~ 하고 그쳤으면 될 것을, 난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 그 애들도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더냐고. 딸은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어투로, "아니! 걔들은 내가 있는지도 잘 모를걸?" 한다. 한숨이 폭 나오려다 이게 아니지, 싶다. 15년을 길러 왔으면서 아직도 딸을 모르느냐, 고 난 스스로를 타박한다. 외사랑 전문이자, 외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의 모습을 더 사랑하는 딸. 사춘기 시절 딱 내 모습 같은 딸을 알면서.


영어 학원에 하나, 수학 학원에 하나, 학교 자기 반에 하나. 이렇게 셋이라는데, 학원을 두 개만 다녀서 그나마 다행인 건지... 그중 그래도 제일 마음 가는 애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영어 학원 남자애란다. 어찌 된 게 학생이 7명 정도 되는 학원 반에서 딸아이 빼고는 다 남자아이라는데, 지지리 공부 안 하는 다른 남자 애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인가 보더라(중2 남자 애가 공부를 좋아한다면 그게 더 흥미로운 일 아닌가).


똑똑하고 성실하고 착해 보인다고 딸아이는 이유를 붙였지만, 내가 네 속을 모를 줄 알고? 그냥 그 애는 잘생긴 아이임에 틀림없다. 잘생긴 애가 공부도 조금 하는 것 같으니 금상첨화인 거겠지. 아름다운 이성이 조금 착하면 무조건 천사같이 느껴지는 걸 남자만의 전유물이라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어쩐지, 그렇게 좀 씻고 다니라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웬일로 매일 머리를 감는다 싶더라니. 남의 집 중학생 딸들은 너무 치장하느라 꼴 보기 싫다던데, 우리 집 딸은 너무 안 씻고, 안 차리고 다녀서 걱정이었는데. 그 셋 남학생들, 이 아줌마가 너무 고마워서 언제 만나면 흑당 밀크티라도 한 잔씩 사주고 싶구나.


좋아하는 상대를 마음에 품은, 몽글몽글한 솜사탕 같은 그 마음, 엄마도 알지. 그런 마음이 너를 더 예쁘게 피어나게 하리라는 것도.




아직 고등학생을 안 키워봐서 요즘 학생들도 학교 가려면 버스를 타는 경우가 많은지 모르겠다(우리 집 주변엔 가까운 거리에 고등학교가 2군데나 있어서 딸아이가 버스를 타게 될 것 같진 않다). 내 고등학교는 버스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매일 아침, 같은 동네에 사는 같은 학교 친구 2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아침 일찍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우리들은 여고생들이 으레 그렇듯, 아침부터 뭐가 재밌는지 그칠 줄 모르는 수다와 웃음에 30분 통학 거리가 멀 새가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다녔고, 남녀공학인 학교가 흔치 않았다. 그래서 어느 교복 입은 학생이 어느 학교 학생인지 대강 짐작이 가던 시절이었다. 굴러가는 가랑잎만 보아도 까르르 웃는다는 여고생들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없을 리가 있나. 우리 셋은 매일 아침 같은 버스에서 만나는 매우 만만해 보이던 남고생 한 명을 타깃 삼아 우리만의 은어와 눈짓을 교환하며 좋아 죽었다.


우리는 그를 '버스맨'이라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잘 생기지도, 건장하지도 않았으며 두꺼운 뿔테에 덥수룩한 외모로 매력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던 남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 3년 동안 매일 함께한 시간(등굣길)과 공간(버스 안)이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정을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지금은 사회적인 관계와 체면상 요조숙녀 행세를 하고 있지만, 그땐 세상 까불이였던 나는 그중 제일 티를 많이 내서 두 친구들이 “그냥 네 남자 친구 해”라고 양보해 주었다. 그렇게 3년 동안 나랑 말 한 번 안 섞어본 그 아인 자기도 모르게 내 남자 친구가 되어 있었다.

우린 그 뿔테 남학생에게 '영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새벽안개가 다 걷히기 전, 김 서린 버스 창에 내가 숫자 0과 1로 그 아이의 탑승을 알려준 게 계기가 되어 그 아이의 별칭이 되었다. 버스 정류장에 그가 나타나지 않아서 웬일이지? 싶은 아침엔 그가 지각한 날이었다. 뒤늦게 허둥지둥 달려와 부랴부랴 올라타는 그 아이를 보면 우리 중 먼저 본 한 명이 버스 창에 숫자 0과 1로 그의 출현을 알렸고, 그럼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또 까르르 웃곤 했다.


그 친구가 입은 교복으로 우린 그가 우리 학교와 같은 재단 남고생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같은 교문을 썼던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3년 동안 같은 교문을 드나들었으니, 그 인연을 어찌 가볍다 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같으면 3년 중 한 번 정도는 커피라도 한 캔 들이밀었을 법하련만. 그 친구도, 나와 내 친구들도, 그만한 숫기는 없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안 일어난 채, 고등학교 3년을 마무리하고 졸업했다.

이제는 아침마다 그 친구를 못 보겠구나. 딱히 마음을 주었다거나 좋아하는 감정을 품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에 껌딱지처럼 붙은 정을 단박에 떼어 내기엔 아쉬움이 남았던 모양이다.


대학에 진학하고 한동안 마주치지 않았던 그 친구를 마주친 적이 딱 한 번 있다.

대학교 2학년 때였나?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가 우리 집에 데려다준대서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그 친구, '영일'군과 똬악! 마주친 것이다. 생각해 보면 3년 내내 같은 버스를 타고 등교했으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엔 그런 생각은 못하고, 난 마치 양다리라도 걸치다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잡고 있던 남자 친구의 손을 냅다 팽개쳐 버렸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영문 몰라 뻘쭘해하던 남자 친구를 보고 한참 만에야 어이가 없어서 어찌나 웃었던지.

버스맨! 어디에서 잘살고 있나... 사뭇 궁금하다.

내가 연예인이라도 됐더라면 예전에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주는 TV 프로그램에라도 나가봤으련만. 그대도 살면서 3년 동안 세 여고생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음을 안다면, 삶의 한 자락 추억이라도 남을 것을. 전해주지 못해 참 아쉽소. 어디서든 건강하시구려.


나랑 내 두 친구는 한 남자아이를 3년 동안 입에 올리며 여고생 감성을 채웠었는데. 비록 외사랑일지언정 우리 딸은 혼자서 세 남자아이를 마음에 품고 있다니, 역시 엄마는 따라가기 힘든 딸의 스케일이도다! 누군가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감정은 인생에서 자주 오는 게 아니니, 딸, 예쁘게 가꿔갔으면 좋겠다. 고운 꽃을 피울 수 있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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