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에는 꿈을 다 이룰 줄 알았지

50에 새로운 꿈으로 설레면 좋겠다

by 정혜영


좋은 기준


2학년 수학, 분류하기 수업 시간. 분류할 때 '좋은 기준'의 조건을 찾는다. 아이들은 교과서 속 흐트러진 다양한 신발들을 신발장에 정리해 보며 왜 '예쁜 것'과 '예쁘지 않은 것'으로 기준을 잡으면 안 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누구 하나 나와 똑같은 결과를 가진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기준'이란 '누가 해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게 하는 기준'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강당에서 신체 활동을 할 때 활동 전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준비 운동'이다. 나의 학창 시절에는 수시로 줄을 맞춰 서는 연습을 했었다. 나 때와는 다른 교육과정 속에 사는 21세기 아이들은 반듯한 줄에 대한 몸에 밴 감각이 없다. 준비운동을 하려고 길게 늘어선 줄의 간격을 맞춰보려고 한 아이를 '기준'으로 잡았다. 기준이 된 아이는 움직이지 말라 하고 옆 친구들에게 양 팔을 벌려 같은 간격으로 서게 했다. 결과는 우왕좌왕, 삐뚤빼뚤. 바라보는 사람만 속이 터진다.

기준을 잡고 줄을 서는 일련의 시간이 수업 내용에서 차지하는 분량이 이렇게 많을 줄 겪어보고야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은 자주 나의 예상 밖에 있다는 것을.

기준은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해도 옆 친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기준의 몸은 자동적으로 따라 들썩인다. 아이들에게 '기준'이란, 주변 친구들과 같은 속도, 크기의 움직임에 맞추는 것이다.



삶의 기준


삶이란 누군가가 알려주는 기준에서 '나만의 기준'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한다. 누구나 동의하는, 같은 지점과 결과로써의 기준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우리네 삶에 똑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글로 쓰면 소설 서, 너 권은 거뜬히 나올 거라던, 어릴 적 들었던 어르신들의 말씀만큼 개개인 일생의 사연은 하나같이 곡진하다.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색깔로 칠하며 살다 보면 어느 곳은 뭉침이, 어느 곳은 번짐이, 또 어느 곳은 채색조차 안 된 곳이 생기는 게 우리네 삶의 원화(原畵)이지 않은가.


가진 것만큼 꿀 수 있는 게 꿈인가, 가진 것을 넘어서서 꿀 수 있어 꿈인가.

어릴 적 내 피부와 맞닿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훌륭하신 어른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엄마, 아빠가 모르시는 것까지 다 알고 계실 것 같았고, 항상 정갈하고 예쁘게 차려입으신 모습은 내 주변 어른들보다 멋졌다.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사력을 다하게 되던 그때, 내게 주어지는 보상은 항상 선생님이 선택해 주셨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막연한 꿈은 그(녀)가 가진 절대권력을 갖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칭찬과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학교가, 선생님이 제시하신 '기준'에 부합하여 나를 맞춰야만 가능한 것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그렇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맞는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보낸 12년 간의 학창 시절. 가끔 그 기준이 체질상 맞지 않았던 친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았다. 기준을 따라오지 않는 개인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과 방황은 오롯이 개인이 책임져야 할 몫. 그렇게 꿈을 접은 친구들, 그들은 또 다른 나였다.


어렸을 때 내 꿈이 뭐였지?


어린 시절과 물리적 거리가 한참 멀어진 지금, 가끔 어릴 적 내가 꾸었던 꿈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는 선생님이 되면 언젠간 자동적으로 교감, 교장이 되는 줄 알았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어른이 되면 나의 학교를 세우겠다고 미래의 꿈을 표현했으니, 꿈은 가진 것을 넘어서서 꿀 수 있는 것인가 보았다.

그때 내가 그린 학교는 푸른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오래된 학교가 낯설지 않은가 보다. 오래된 학교엔 세월을 함께 하며 무성히 우거진 아름드리나무들이 함께 하기 마련이니까.


기준에 맞춰 살다 보면 내가 그토록 선망하던 선생님의 나이가 될 때는 내 꿈이 다 이뤄져 있을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도록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던 선배들의 말을 들으며 왜 아직도 모르느냐며 속으로 딱해하면서.


곧 50이다.

되고 싶어 하던 선생님으로 20년이 넘게 살았지만, 난 교장도(교감도) 되지 못했고 집 한 채 온전히 내 것이 아닌 사람에게 '나의 학교'는 언감생심이다. 그렇게 크게만 보였던 선생님이 이 정도 나이까지 먹으면 뭔가에 통달한 인간이 되어 있을 거란 생각은 꿈이었다. 어릴 적엔 분명했던 나의 꿈. 50이 가까워올수록 오히려 그 실체가 흐릿하다. 2학년 아이들의 그림처럼 원근감 없이, 두서없이 일직선 상에 놓인 대상들의 우선순위를 잘 모르겠다.


그럼, 기준이 분명할 때 보였던 선명했던 꿈은 정말 내가 바랐던 꿈이었을까? 12년을 알맞은 기준에 맞추도록 교육받고 살아오면서 내가 정말 원했던 꿈을 꾸었을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했었던가? 100세 시대, 인생의 절반 가까이나 산 이 시점에 이제야 정말 내가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본다면 우스운가.

두 번 살아낼 수 없는 삶. 정해준 기준이 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이야말로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을 본격적으로 그려 보기에 좋을 때가 아닌가. 어릴 적 꿈꾸던 나의 학교를 세우기는 어렵겠지만, 내 안의 '진짜 나'를 세우기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꾸던 꿈을 50에 다 이루지는 못하겠지만, 50에 새롭게 꾸는 꿈으로 다시 설렐 수 있다면 이보다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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