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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Oct 24. 2020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 코로나가 만들어준 집콕 명절 나기

2월부터였으니 휴일에 집콕한 지 어언 8개월째. 코로나로 인해 우리들 일상이 엄청나게 바뀌었다.

안 끝날 것 같던 추위를 비집고 따사로운 햇살이 간질간질하던 봄날, 개나리로 시작해 진달래, 목련, 철쭉으로 온천지가 뒤덮일 때도 출퇴근길에서나 감상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여름은 조금 나았다. 더위를 엄~청 타는 체질이라 평상시에도 여름엔 에어컨 틀어놓은 실내가 가장 좋은 피서지라 생각하며 살아온 나니까.

그렇지만 가을은 사정이 다르다. 날도 선선해져서 딱 내 체온이 좋아하는 기온인 데다, 초록 계열 일색이었던 나무들이 한 잎, 두 잎 색깔을 입고 알록달록 바꿔 입은 거리의 패션을 보니, 눈은 황홀하고 가슴은 벌렁벌렁하다. 휴일 집콕 생활이 너무 길었구나... 싶다.


이 시기에 맞은 추석 명절, 대규모 이동시기는 피하자고 시댁과 친정에도 양해를 구하고 결혼 15년 차 처음으로 집에서 명절을 지내게 되었다. 예년 이런 긴 연휴였다면 벌써 어디 좋은 장소 물색해서 숙박 예약하고 이삼일 다녀왔을 텐데, 집에서 온 가족과 5일간의 휴일을 어떻게 보내나...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래서 휴일 전날 나와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몽땅 대여하고, 먹거리도 잔뜩 사서 냉장고에 채워 넣으니 일단은 마음에 위안이 오더라.


그렇지만 내 마음의 위안이 아이들 마음의 위안까지 되어 줄 수는 없을 테고... 아들 녀석은 아침 먹고 나면 점심은 뭐 먹을 거냐, 점심 먹고 나면 저녁은 뭐 먹냐, 하루 종일 현 끼니를 먹고 나자마자 다음 끼니 메뉴를 묻는 바람에 몇 차례 퉁바리 맞고. 아침 식사는 간편하게, 신랑이 점심 식사를 맡고 저녁은 사두었던 기본 재료들을 활용한 약간의 수고로움으로 세 끼 식사를 해결했다.

그러고 보니 5일이나 되는 긴 연휴를 오롯이 우리 식구들이 함께 집 안에 있던 적이 전에 있었던가? 처음인 것 같다. 이런 긴 연휴가 주어졌다면 그중 한 사람, 나는 분명 바람처럼 구름처럼 바깥공기 따라다녔을 테니까.


먹을 식에, 입 구 자를 쓰는 '식구'가 밥을 함께 먹기 때문에 가족일진대, 함께 5일간 매끼를 함께 먹는 일은 코로나로 인한 지난 8개월간의 집콕 생활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아이에게 핀잔을 주긴 했지만 그만큼 함께 먹는다는 일은 소중한 일일 터. 그래서 5일간 매일 하루 1 명절 음식을 해주겠노라 아들 녀석에게 약속했었는데, 나중에는 괜한 약속을 했구나... 후회도 살짝 들었다.


평상시엔 가족이 함께 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주말에도 함께 할 만한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함께 요리한 음식을 함께 나누며 매일 밤 윷놀이를 하며 보냈더니, 모처럼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 항상 함께 놀아주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사두기만 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 팀 페리스의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의 제목처럼 현재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고 내 가까운 사람과 눈 맞추며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거,라고 위안했다.


명절 전날 몽땅 빌려온 책만 잔뜩 남고, 채워놓은 음식만 싹 사라진 선별적 집콕 명절 나기. 며느리 역할 없이 하루 종일 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빈둥거리며 보낸 이런 명절이 언제나 또 올 것인가 마는,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해 보겠는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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