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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Aug 15. 2021

나의 자존을 우기는 날

가족은 나의 품위를 지켜주는 또 다른 나


나는 내 일신의 이득을 내세우는 주변머리에 약하다. 욕심은 많은데, 욕심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부끄러워 드러내기 주저하는 나라는 인간의 이중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말하는 일이 업(業)이니 딱히 말 못 할 것도 없고, 평상시에 사람들과의 소통이 나쁘지도 않은데 왜 그럴까 생각해 본다. 그러다 내가 알고 보니 자존감이 약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자존'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이 필요했다. 사전에서 '자존(自尊)'을 검색하니 세 가지 해석이 나왔다.


1.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지킴.
2. 자기를 높여 잘난 체함.
3. 자기 인격성의 절대적 가치와 존엄을 스스로 깨달아 아는 일.


평소에 '자존'의 뜻을 주로 1번으로 알고 있다가 무엇인가 욕심을 내어 성취를 이루는 순간, 2번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나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은 성취라도 하나 해내고 나면, 나를 높여 잘난 체하는 자존에 나를 가두고 두려웠던 게 아닌가 싶다.

이딴 일로 잘난 체하는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이 보면 콧방귀 뀔 일이야, 너는 '가치'를 중요시 기로 했으면서 속물이었네, 그새 우쭐해져 가지고는...


품위를 스스로 지켜내는 일이라고 생각한 일이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되는 순간, 놀라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이러니 나 같은 사람이 장사를 했다면 다 말아먹었을 것이다.  결혼 전, 지인 하나가 나더러 "부끄럼 타면서도 할 거는 다하는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그 말은 칭찬이었을까?


딸이 보내온 깨똑을 보고 최근에 딸이 프사를 바꾼 것을 알았다. 한참 BTS가 차지하던 그곳에 언젠가부터 슈퍼주니어 멤버 '예성'이 빨강머리를 빛내며 있던 딸의 프사(취향이 역주행이냐고 했다가 딸한테 구박 많이 당했다). 잘생기고 멋진 남자 아이돌이 아니면 언감생심 넘볼 수 없던 그 자리에 의 에세이 책 사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프로필 배경 사진은 딸의 배려로 채워.


한 번씩 나를 놀라게 하는 아이를 보며 어릴 적 나는 참 늦게야 철이 들었을 안다. 철이 들기 시작하면 어른이 되는 건데, 딸이 빨리 철들기를 바랐다가 또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은 싫어진다. 엄마의 마음은 항상 갈팡질팡한다. 그래도 자식을 부모의 자랑거리로 만들려 하지 말고 부모가 자식의 자랑거리가 되자고 먹었던 마음이 한 번은 통했나,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화장대를 책상 삼아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나도 애들처럼 번듯한 책상 좀 하나 만들어달라고 했던 말을 남편은 기억해 주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일하며 혼자 육아하는 거 힘들다고, 외롭다고, 그렇게 하소연하고 성을 내 보아도 귓등으로도 잘 안 듣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흘려하는 말도 새겨 실행에 옮기는 걸 보면(물론 여전히 선택적이긴 하지만) 저 사람도 늙구나, 싶어 진다.

젊은 날, 이대로는 못 산다고 부들부들 손을 떨며 던 이혼 서류를 짝짝 찢던 이 사람과 이제는 백년해로할 것만 같은 것은, 이제 나도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일 거다.


남편의 선택적 취미, 목공. 어쨌든 고마워요~^^ by 그루잠

오늘은 내가 세상에 처음으로 머리를 내민 날이다. 해도 해도 너무 더워서 나를 낳자마자 마루에 나앉아 찬바람을 쐬었다는 친정 엄마의 말이 반쯤 거짓일 거고 생각했다.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빵빵하게 도는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아이를 낳았던 내가 집에서 산파의 도움으로 죽을힘을 다해 출산을 했던 엄마를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으랴. 바깥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절로 걱정되던 폭염을 지나다 보니 엄마가 아주 지어내신 말씀은 아닌 것 같다.


젊은 날, 몸과 마음이 함께 힘들었던 시기엔 누군가의 sns에 실린 행복한 사진들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하게 사는 줄로 알았던, 어리석은 시절이 있었다. 나의 힘듦은 아틀라스가 떠받치고 있는 지구보다 더 무거운 법이니까. 이제는 그 행복하기만 한 사진에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슬픔, 고통, 인내, 화해의 시간도 있음을 안다. 가장 크게 웃는 사람은 가장 크게 울어본 사람일 테다.


남편이 나의 생일날에 맞춰 완성해 준 나만의 책상, 나만의 공간. 아이들이 전날부터 함께 케이크와 쿠키를 준비할 수 있도록 때마침 일에 맞은 나의 생일. 난 이것들을 있는 그대로 오롯이 즐기기로 했다. 충분히 행복해하기로 했다. 오늘의 행복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면 다가올 내일이라는 또다른 오늘의 가치도 잘 모르고 흘려보낼 테니까.

스스로는 잘 못하고 가족이 지켜준 내 품위를 나의 자존이라고 우기며 오늘을 맘껏 즐기기로 한다.

  

(왼) 딸램 프사, (오) 딸과 아들이 함께 만든 케이크와 쿠키 by 그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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