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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ul 27. 2021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월요일 아침 단상

좋은 날엔 좋은 생각만 하자


이미 가진 것의 소중함은 잘 모르기 마련이다. 가지지 못한 것만 바라보고 아쉬워하며 자꾸 스스로를 소비하며 살다 보면 그래도 세월이 너도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타이르는 때가 오는 것 같다.


매번 한 번의 방학을 맞이하기 위하여 학기말 업무는 그렇게도 많았던 모양이었다.

이제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학기말 업무와 개인 일이 겹치니 나하고 엮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대상포진'까지 왔던 방학 전 일주일. 다행히 약하게 와서 남들은 그렇게 아프다는 대상포진을 가볍게 앓고 보내기는 했다. 그렇기는 해도 컨디션 난조에 학기말의 몰아치는 업무량은 수월치 않았다. 그래도 올 것은 꼭 오고야 만다. 그렇게 올 것 같지 않던 방학이 시작되었다.


일요일까지는 주말권이었으니 오늘부터 본격적인 방학이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월요일은 말 그대로 '달코롬하다'. 그 달함에 취해서 미처 방학 중 나의 하루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맞이한 월요일 아침. 어젯밤 취침 전, 주중 6시 35분에 맞춰져 있 알람을 'off'시키면서 몇 시로 알람을 맞출까? 즐거운 고민을 했었다. 본격적인 방학 첫날인데, 너무 첫날부터 고민하지 말자, 사람이 회로를 잠시 멈출 때도 있어야지. 한 시간 늦게 맞춘 알람을 다시 8시로 맞췄다. 8시에 일어나도 되는 월요일이라니. 자꾸 지어지는 미소를 어쩌지 못했다.


그렇게 8시까지 늦잠을 자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단잠을 방해하는 열대야와 해만 떴다 하면 이 여름을 끝장이라도 낼 것처럼 울어대는 매미들의 떼창, 아침엔 어김없이 일어나던 시간에 눈이 떠지는 이 몹쓸 바이오리듬, 이 복병들은 물리치기에 너무 센 것들이었다.


눈은 일찍 떠졌지만 몸은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리라는 굳은 의지(?)로 침대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려 했으나, 이것도 쉽지는 않았다. 또렷해진 정신 상태로는 열대야로 더 뜨끈해진 나의 체온과 침대보를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털고 일어나 앉아서 선풍기 바람에 열기를 식혔다. 오랜만에 여유롭게 브런치 지인들의 글을 천천히 음미하며 맛있게 읽었다. 그들이 써 내려간 하루, 생각, 고뇌, 지적인 성찰들. 이 아침을 더 풍요롭게 해 주는 그 친구들이 고맙다.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참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출근 준비로 바빴던 아침에는 언감생심이었던 다른 사람들의 삶 들여다보기. 이런 호사를 음미하다 보니 진짜 허기가 느껴졌다.

거실에 나가 아이들의 동태를 먼저 살폈다. 아들, 딸 모두 먼저 일어나 컴퓨터 방에 앉아 각자의 재미를 추구하고 있었다. 조금 전 말랑했던 심기가 급속도로 불편해졌다.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라니. 이 녀석들 엄마 없을 땐 이러고 살았던 것이냐? 어쩌다 여유가 생긴 엄마는 사춘기 자식들에게는 하나도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너 오늘 아침에 도서관 간다고 하지 않았어?"


애먼 큰 아이한테 먼저 화살이 돌아갔다. 하루를 시작하는 관계의 첫 대화라고 하기엔 유쾌한 어투가 아니었다.


"난 너무 조용한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건 숨 막힐 것 같아서."


딸의 퉁명스러운 말투가 돌아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이다. 뾰족하게 간 말이 둥글게 돌아올 리 없다. 일단 시작된 나의 잔소리는 컴퓨터 사용 시간 조절과 도서관 도서 대출 압박으로 이어진 뒤에야 끝이 났다. 아이들 표정이 별로였으므로 그 정도에서 끝내야 한다는 '이성'이 뒤늦게라도 한 덕분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알아서 아침을 해결했다고 하여 혼자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허기가 채워지니 빈곤한 나의 뇌에도 생각이 하나, 둘 채워졌다.


식빵 한 조각과 삶은 달걀 한 개, 사과 1/4 조각, 방울토마토 5~6알, 그리고 우유 한 잔. 바쁘게 출근하던 아침 식사 메뉴가 무방비, 무계획 상태에도 이어졌다. 시간도 좀 있으니 좀 맛있고 예쁜 것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먹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잠시. 사람마다 쓰고 싶은 시간의 가치는 다르다. 느릿느릿 계획 없이 일어난 아침이지만 부엌일에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8PJh_5ToJE


언젠가 친구가 보내준 '일곱 가지 아침 메뉴'라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누군가는 저 식기 참 예쁘네,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담아내지? 저 독특한 식재료 이름은 뭘까? 이런 류의 질문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저분 뭐하시는 분이시길래 바쁜 아침에 저렇게 많은 아침 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지? 저 집 식구들은 입맛 없는 아침에도 참 잘 먹어주는구나. 이런 맛있는 영상을 보며 이렇게 멋없는 생각들을 했다. 결국 저렇게 맛있고 다양한 아침 식사를 만드는 '엄마'의 역할보다는 해주는 저 많은 맛난 식사를 맛볼 수 있는 저 집의 자식이 되고 싶다는 것이 나의 결론.


이게 내 최선의 아침 메뉴다. 저 유튜브 영상 속에 소개된 집 딸내미가 되고 싶다 by 그루잠

영상을 보며 나도 저 중 몇 가지 내 입에 당기는('내가 할 수 있는'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거 먹고 싶어 차린 게 이 정도니, 우리 집 애들이 아름다운 조식을 맞이할 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 알아서 아침을 해결하고, 방학 특강까지 채워진 학원 수업으로 여유로운 시간이라고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시간밖에 없는 아이들. 나보다 훨씬 바쁜 아이들을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데 자꾸 보이는 걸로만 판단하려 드는 짧은 생각. 모처럼 찾아온 여유로운 아침에도 여유로운 생각을 못한다면 언제나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직장인에게 출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월요일은 일 년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 소중한 날이다. 소중한 날, 소중한 것들로 채워야지. 오늘 하루 맛있는  먹고, 예쁜 옷 입고, 좋은 것을 보아야겠다. 그렇게 좋은 것으로 채워진 하루하루가 결국 내 삶의 모습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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