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앞머리 스타일이 있었다. 왜 있잖은가. 10대 소녀들이 앞머리에 롤 하나 돌돌 말고 다니며 만드는 앞머리. 길거리에서도 말려 있는 롤은 도대체 언제 빼는 것인지 궁금하여 물어보고 싶지만 함부로 남의 집 청소년에 대해 궁금해하면 안 되므로 참았다.
그 롤을 빼면 동그마 하게 앞이마를 덮는 앞머리 스타일. 그걸 뱅머리라고 하던가? 레옹의 마틸다처럼 똥강, 한 일자로 자른 뱅머리 말고 라붐의 소피 마르소 같은 자연스러운 아치형 앞머리. 그런 앞머리를 갖고 싶었다. 그런 앞머리가 주는 영(young)한 소녀 느낌이 갖고 싶었던 거다.
이런 여신의 앞머리를 갖고 싶었다니요 by 위키비키 작가님의 글,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피 마르소 리즈 시절'
항상 머리를 맡기는 미용실 원장님께 원하는 스타일을 말했더니 앞 머리카락에 거침없이 가위를 들이밀었다.
"아, 잠깐만요! 그런 스타일이 저한테 어울릴까요?"
"어울리죠! 선생님은 얼굴이 작아서 어떤 스타일을 해도 어울려요."
고객의 마음을 사는 서비스직 종사자로 살아온 세월만큼 미용실 원장은 고객의 마음을 사는 법을 잘 안다. 이 나이에 그런 앞머리가 주책일까 봐 주저하는 마음을 안심케 하는 원장의 시원함이 좋았다. 솜씨 좋은 원장의 손놀림 몇 번으로 옆으로 넘기던 내 앞머리는 눈썹을 다소곳이 덮는 아치형 뱅머리로 변신했다.
"아유~ 선생님 이제 저보다 어려 보이시네요!"
30대 중반을 살짝 넘긴 것으로 알고 있는 원장의 과장이 싫지만은 않았다. 한층 더 예뻐 보이는 미용실 조명발을 받으니 진짜 10년은 어려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돈을 쓰고도 아깝지 않았다.
미용실을 나와 집에 오는 내내 차 안 미러를 통해 익숙하지 않은 앞머리를 보고 또 보았다. 진짜 괜찮나? 너무 아이들 머리 같은가? 우리 반 아이들 반응이 어떨까? 예쁘다고 봐줘야 할 텐데… 미용실 조명발을 벗어나니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식구들 반응을 보면 좀 객관화되겠지.
미술 수업을 받으러 가기 위해 역까지 태워다 주기로 한 아들이 내 바뀐 앞머리를 대면하는 1호였다. 아들이 조수석에 타기 무섭게 바뀐 내 헤어스타일에 대한 평을 재촉했다.
"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 지."
예쁜지, 어떤지를 알고 싶어 하는 나에게 녀석은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평소 감각적인 녀석의 애매한 평은 "예쁘지 않다"는 말의 다름 아니었다. 실망한 내 표정에 당황스러워진 아들은 그런 뜻이 아니라며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았다. 말주변 없는 녀석의 노력이 가상했으나 내가 받아들인 결론은 같았다. '예쁘지 않다.'
그래도 남편은 좀 괜찮게 봐주지 않을까? 낙담한 마음을 쓸어 담고 남편과 마주했다.
"김신영 머리네?"
남편이 말했다. 저 인간에게 기대를 한 내가 잘못이지. 아니, 하고 많은 뱅머리 스타일의 연예인들 중 꼭 웃음을 주는 사람으로 골라야 했나. 내 머리가 그렇게 웃기단 말이지. 20대 때는 살찐 '김래원'이나 '한재석' 닮은꼴이었다는 남편을 한사코 '박상면 닮은꼴'로 칭하는 나에 대한 복수라 이거지.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계속 어떠냐고 물었더니 마지못해 "귀엽다"는 중의적인 평을 내렸다. 딸아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사자 머리에 눈곱 덜 뗀 엄마 얼굴을 보고도 예쁘다고 하는 아이니 참고할만한 객관적인 사람이 아니다. 결국 종합해 보면 결론은 같았다. '예쁘지 않다.'
앞머리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도대체 거울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는지 모른다. 결국 다음날 내 앞머리는 다시 예전의 스타일, 왼쪽으로 쏠리는 깻잎 머리로 돌아가고 말았다. 앞으로 내려오는 형태로 잘랐으니 옆으로 넘기기엔 다소 무리였지만 예전의 방향으로만 놓여 있어도 친숙했다. 마음이 놓였다.
앞머리 하나 바꾸고도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하다니. 이래서야 새로운 무엇을 시도할 수 있단 말인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노화의 증표라 믿는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하루 만에 옛날 머리로 돌아갈 거면서 뭐하러 그런 헤어스타일을 하고 싶었던 걸까. 딸아이와 일요일 아침 식사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오늘 또 북한산 가?"
"응."
"참 열심이다."
"한, 두 번 하는 건 의미가 없지. 얼마나 꾸준히 하느냐가 중요한 거야."
"아니지. 한 번이라도 해 보는 게 한 번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지!"
그렇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무엇이라도 한 번 해 보는 게 낫다. 소피 마르소 앞머리를 한다고 소피 마르소가 될 리는 없지만, 그 머리를 한 하루 동안은 분명 평소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뭐랄까. 뭔가 어색하지만 자꾸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고. 자꾸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보이고 싶어 하고. 이런 머리라면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어야 하나. 어떤 귀고리를 착용해야 어울릴까.
그건 '설렘'이었다. 작은 변화와 함께 찾아온 건 익숙하지 않음에 따른 어색함, 불편함과 더불어 묘한 두근거림이었다. 뱅 스타일 머리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영(young)한 소녀 느낌을 갖고 싶었던 게 아니던가. 하루 동안 여러 감정을 넘나들었던 나는 예쁘진 않더라도 충분히 소녀스러웠다. 시도해 보지 않았다면 느껴보지 못할 일이었다. 분명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제 북한산 나무들 예쁜 단풍잎을 다 떨궜어요ㅠ by 그루잠
북한산의 나무들은 이제 알록달록 예쁜 옷들을 거의 벗어가고 있다. 일찍 찾아온 추위에 단풍이 들기 전 먼저 말라버리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차가운 가을바람과 비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겨울로 접어들수록 나무는 점점 더 볼품이 없어질 것이다. 그래도 나고 자란 자리를 꿋꿋이 지켜내며 한파와 폭설을 이겨낼 것이다. 그러다 다시 온기가 찾아드는 계절이 돌아오면 새살을 돋워 다시 가열차게 푸르러지겠지. 나무의 몸은 날이 갈수록 깊어진 나이테를 품겠지만 가지에는 끝없이 새순이 나고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서 나무는 더 우람해지겠지.
한순간 생명을 다한 듯싶다가도 어느샌가 새로운 생명력으로 궐기하는 나무. 나도 나무처럼 나이 들고 싶다. 다시 되돌아올 줄 알면서도 시도해 보는 변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한 번씩은 요동치면서 나무처럼 생명력 있게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