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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Feb 07. 2022

우리 가족 MBTI 테스트 결과, 깜짝 놀랐어요


학창 시절, 친구들 관계도를 알아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내 이름과 친구 이름 획순으로 알아보는 '이름 궁합', 다른 하나는 서로의 혈액형으로 알아보는 '혈액형 궁합'이었다.

이름 궁합은 이름 배치 순서가 달라지면 궁합 퍼센티지가 달라져서 좋아하는 친구와 그다지 좋은 결과가 안 나오면 좋 나올 때까지 계속하곤 했다. 그에 비해 혈액형 궁합은 대체로 일관된 결과를 보여주었으므로 혈액형 궁합에 대한 신뢰가 더 높긴 했다.


혈액형 성격 유형이 일제 식민지하 일본이 한국인을 비하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혈액형에 대한 관심은 옅어졌다. 하지만 오랜 시간 보아온 혈액형 성격 유형에 대한 믿음 쉬 사라지진 않았을 거다.


사회생활을 하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겪으며 혈액형이란 그저 사람에 대한 하나의 정보일 뿐이며,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절대적인 척도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 타인에게 혈액형을 묻는 횟수는 급격히 줄었다.


그런데 요즘엔 다른 유형의 성격 테스트가 유행이더라.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알아보는 'MBTI 성격 유형 검사' 말이다. 고입을 앞둔 딸이 언젠가 와서 해보라고 그렇게 조를 때만 해도 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다. 학창 시절에 주야장천 해보던 이름 궁합이나 혈액형 성격 검사쯤 되나 보다. 요즘도 애들 그런 놀이 하며 노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 <사춘기와 갱년기>를 주제로 글을 쓰기로 하면서 'MBTI'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글 모임 회원 중 한 분이 쓴 글을 통해서다. 그분은 자녀와 이 테스트를 함께 해보며 달라진 아이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제는 타인과의 관계에 휘둘리지 않을 나이가 되었지만, 사춘기 자녀를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라니. 안 해 볼 이유가 없었다. 아니, 적극적으로 해보고 내가 모르는 내 아이의 성격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MBTI 테스트는 나와 아이들 아니라 남편까지 강제로 동참시키며 식구 모두가 함께 보게 되었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MBTI 검사 결과, 몇 가지 충격적인 결과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테스트였지만, 검사 결과, 몇 가지 충격적인 정보를 얻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막연히 나와 비슷하리라 믿어왔던 첫째(딸)의 성격 유형이 남편과 똑같게 나왔다는 것이다. 나름 소신도 있고 자기주장도 다부진 면이 있는 딸이 남편과 같은 과라는 사실은 좀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딸이 가진 이런 성향을 장점으로 생각던 남편은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다. 남편이 좋아하니 더 부정하고 싶은 걸까?


두 번째 충격적인 결과는, 둘째(아들)와 나의 성격 유형 궁합도가 '최악'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지구 멸망의 길'이라니. 아, 정말, 아주, 깊이, 맹렬히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다. 우리 둘째에 대한 나의 애정도로 말할 같으면,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이 뜻이구나, 싶은 것이었다. 아들이 어릴 때부터 하도 쪽쪽 물고 빨았더니 녀석은 이제 내가 가까이만 가 어떻게 엄마 마음을 상하지 않게 거리두기를 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다. 큰 아이 앞에서 자제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내리사랑이라는 것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둘 이상 자녀를 둔 부모라면 다 고개를 주억거릴 거다.

그런 아들과 성격 유형 궁합도가 '최악'이라니, 이것을 어찌 받아들일 있단 말인가!


세 번째, 북극과 남극, 끝점끼리 만난 듯 보였던 남편과 나의 성격 유형 궁합이 '아주 좋은 관계' 중 하나라니 이 또한 충격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은 진정 진리란 말이던가! 요새 나이 좀 드니 조금 철이 드는 듯싶었으나, 남자는 70살은 먹어야 철이 든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뒤로 반 포기했었는데.


마지막으로 얻은 큰 정보는, 우리 식구 중 나만 에너지 방향성이 E(외향형)이며, 나머지 세 사람 모두 I(내향형)라는 점이다.

이는 아이들이 고학년이 된 후 활동적인 나와 함께 하려 들지 않는 것에 대서운해하던 내 마음에 대한 해답이었다. 이제 좀 엄마 껌딱지를 떼나 보다, 싶 홀가분함과 더 이상 엄마를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는 데에 대한 아쉬움. 성장하는 자녀를 바라보는 엄마의 양가감정은 늘 붙어 다닌다.


남편이 나와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인지는 진작부터 알았지만, 이런 객관적인 결과를 마주하니 바깥 외출만 하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던 우리들의 초기 결혼 생활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집 안에서는 세상 평화로운 관계가 집 밖에서는 세상 위험한 관계가 되던 그 위태롭던(?) 시절을 통과하며 이제는 서로가 평화로울 적정 지대를 찾았다. MBTI 검사를 좀 더 빨리 했었더라면 그 시기가 좀 더 당겨졌었을까.



MBTI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래서, 나에게 MBTI 검사의 충격적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거냐고 물으신다면?


친구 관계의 궁합도가 이름 궁합이나 혈액형으로 절대적 일리  없듯, 당연히 MBTI 역시 흥미로운 테스트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에 약간의 정보를 추가해 주는 자료로서 유익하게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딸이 나와 성향이 달라서 서운할 일이 아니라 아빠와 같다니(그것도 좋은 궁합으로) 둘 사이가 전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 엄마 사랑을 타고난 아들의 성격 유형 결과가 남편의 것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자식이니 '최악'으로 나온 성격 궁합이라도 보듬을 수 있지, 남편이었더라면 음...

남편과 성격 유형 궁합이 매우 좋다니 남편이 70까지 철이 안 들더라도 좀 봐줄 만한 여유가 생긴다. 언제나 철이 들지 두고 보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면 너무 나간 걸까?


내가 6개월 이상 북한산을 혼자 다니는 동안 (모두 내향형인) 우리 가족 모두 크게 관심을 안 갖더니, 몇 주 전부터 딸이 한 번씩 따라나선다. 2주 전부터는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만큼 찐 살이 감당이 안 됐던지, 남편도 따라나섰다. 다른 식구들이 다들 엄마를 따라나서는 걸 보고 (눈치 상) 안 되겠다 싶었던지, 아들도 다음 주말에는 꼭 가겠단다.

아들이 약속했으니 꼭 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 테스트 결과 나온, '지구 멸망의 길'을 가지 않으려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


 


흥미로만 보세요. MBTI 궁합표(출처: 네이버)



* 대문 사진: MBTI 유형(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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