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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Aug 19. 2022

서로 외롭지 않은 적정 거리두기란 뭘까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출처: ENA)


"저와 있으면서 외로운 적 없었습니까? 내 안은 나로 가득 차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안 그럴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준호 씨를 좋아하지만, 이준호 씨를 외롭지 않게 만들 자신이 없습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5 회차던가... 우영우 변호사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우리는 사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한 이유를 설명하는 대사다. 그 가늠하기 어려운 슬픔의 깊이에 가슴이 먹먹했다.


유행하고는 먼 사람에게 유행이 다 지나고 늦게서야 찾아온 코로나로 일주일을 앓는 동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울고 웃었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적인 고뇌를 드러낸 대사 뒤로 비친 내 모습을 보아서였을까.


우리는 외롭지 않으려고 누군가와 함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 혹은 여러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더 많이 '외로움'이란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혼자일 때 좀 더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며, 계획적인 인간형이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나약해지고 갈팡질팡 해지는 것이 못마땅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될 수 있으면 홀로 하는 일을 도모했고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일에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으려 했다.


그러나, 삶이 마음먹은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홀로 일을 도모하며 살아가려 해도 삶의 희로애락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온다는 것이 또 우리 삶의 역설 아닌가.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일수록 더 많은 행복과 불행의 감정을 겪기 마련일 텐데 나는 그것을 나약함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방법은, 나를 외롭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상대에게서 찾는 일이었다. 혼자일 때 난 외롭지 않았다,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난 이렇게 외로울 일이 없었다... 그렇게 나에게 보호막을 씌우고 상대방을 탓했던 과거의 기억이 드라마 속 배우의 대사 배경으로 깔렸다. 그래서 더 감정 이입했던 것 같다. 당신 때문에 외로워졌다고 책임을 전가시켰던 그때, 상대는 얼마나 외로웠을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자기 안에 가득 찬 마음을 보듬기도 벅찬 속 좁은 사람에게 상대의 마음까지 살펴볼 여력이 남았을 리 없었다.


가끔 내 안에 가득 찬 나를 돌보느라 가까운 이들을 외롭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인간관계에서의 일정한 거리 두기는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힘이라고 믿으며 거리 두기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 두기와 심리적 거리 두기의 차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심리적으로는 가까울 필요가 있고, 물리적으로는 가깝더라도 심리적으로 거리를 둘 필요도 있다. 그 필요를 가늠하고 적절히 거리 두기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두 거리 두기의 온도차에서 우린 쉽게 외로움이란 감정에 빠지 게 아닐까.


요즘 난 나름 아들, 딸의 양육 방식에 있어 분리하기대체로 잘 해내어 왔다고 자부했던 생각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만함이었는지 매일 새롭게 깨닫는다.

"자녀를 고등학교에 보내지 않았으면 자녀 양육의 해법을 얻었다고 자신하지 말라."

요즘 내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다. 아마 아이가 대학에 진학해도, 취업을 앞두고도,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두어도 자녀 양육의 해법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사춘기가 끝났다고 오판했던 고등학생 딸이 미래에 대한 불안,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어할 때, 매번  거리 두기에 실패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격려하고 지지하다가도 아이의 한없이 나약한 모습(엄마 눈에 비추어)에 실망하면 자제심을 잃게 된다. 그럴 때, 이해받지 못한 엄마의 표정과 말투가 얼마나 아이를 외롭게 했을지 모르겠다.


고백하건대,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하지만, 때로 아이를 외롭게 하고 있으며 외롭지 않게 만들 자신도 없다. 내 아이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면서도 홀로 세상과 맞서도록 용기를 북돋우는 엄마로서의 능력이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한다.

그래서 아이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엄마의 부족한 능력 공부라도 채워보려 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가 외롭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잘 헤쳐갈 수 있도록 현명한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엄마가 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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