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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May 07. 2023

'갱년기' 엄마가 '사춘기' 자녀를 응원하는 방식


"엄마, 이거 봐봐. 나 오늘 선생님한테 칭찬받았다!"

아들이 자기 핸드폰을 내 눈앞에 불쑥 밀며 말했다. 청소년의 핸드폰이란 자기 몸의 일부와 같아서 엄마의 손이 닿으면 파르르 경기를 일으키는 물건인데 웬일로 이리 가까이 들이민담?


아들은 다른 집 청소년들에 비하면 점박이 양처럼 순한 편이지만 얼룩덜룩한 색깔은 감출 수 없는 중3이다. 자기 방 앞에 엄마의 모습이 비치면 귀신같이 감지하고 커다란 몸을 잽싸게 방문 으로 이동시켜 온몸으로 출입 불허의 뜻을 표하는 사춘기다. 그런 녀석이 어쩐 일로 자기 핸드폰을 엄마에게 허하는 걸까?


아들이 들이민 폰 화면에는 연필 소묘화 한 장이 찍혀 있었다. 미술 학원에서 그린 것을 찍은 거라고 했다.

"엄마, 선생님이 내 그림에서 결점을 찾기 어렵대! 성적이 18등급이어도 합격할 수 있는 그림이래!"

다소 상기된 듯 들뜬 아들의 목소리에 자세한 영문도 모르면서 내 기분도 덩달아 들썩였다.

자세히 맥락을 따져보니, 그날 그린 그림이 괜찮아서 미술 학원 선생님께서 좀 과하게 칭찬해 주신 모양이었다. 아들의 미술 학원 선생님은 예고 입시반을 지도하시는 미술 입시 학원 원장님으로, 평소 예고 입시반 아이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쓰시는 분이시다. 이번엔 아들에게 '달큰한' 당근을 투척하신 게 틀림없었다.


아들의 연필 소묘 by 그루잠's son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리본 디테일이 불러일으키는 긴장감. 그러한 사실에 당황한 듯한 양손의 아련한 손놀림. 전문가가 아닌 내게아들의 소묘는 그런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첫날에 그린 손 그림 이상의 그림이 안 나온다는 선생님의 말에 풀이 죽었던 녀석이었다.


난 아들 그림의 이런 거칠고 자유로운 느낌이 좋다. by 그루잠's son


서너 살 때부터 그리기를 좋아한 아들이 일찍부터 정형화된 그림 기술부터 배우지 않기를 바랐다. 자유롭게 아이가 가진 본모습을 지키며 재능을 키울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런 바람으로 입시 미술을 미뤄왔었는데, 중3 직전에 상담한 한 화실에서 "너무 늦었다"는 말을 듣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대한민국의 입시 교육의 현실 앞에서 매번 허둥거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엄마라서 딸, 아들에게 미안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다른 미술 입시 학원에서 경쟁력이 높은 예고에 대한 욕심만 버린다면 무난히 합격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서야 아들은 미술에 대한 꿈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예고 미술 입시반에서 레슨 받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이 녀석이 갑자기 미술이 하기 싫어졌다는 거다. "여태까지 주변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해서 했던 거지, 진짜 미술이 좋아서 한 건 아니"라는 아들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아들은 오래전부터 입시 미술을 준비해 온 탄탄한 실력을 가진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한없이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감을 잃은 모양이었다. 얼마나 좌절모드였으면 "진짜 미술을 좋아한 게 아니"라는 말까지 했을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도 이럴 때 엄마마저 흔들리면 안 다. 아들은 연필을 쥘 수 있는 손가락 힘이 생길 때부터 꽂히는 것들을 그리고 그려온 아이였다. 자신이 그리기에 복잡해 보이는 캐릭터 그림을 내가 그리다 지칠 때까지 끊임없이 다시, 또다시 똑같이 그려달라고 요구하던 아이였다. 매해 오디션으로 다시 뽑는 예술의 전당 미술 영재 오디션 기간을 내가 놓치는 바람에 응시조차 못했던 해에 아들이 얼마나 내내 침울해했었는지. 진짜 미술을 좋아한 게 아니라는 말은 아들의 진심일 리가 없었다.


"네가 하기 싫다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그건 네 선택이니까. 그런데 아들, 그 아이들은 네가 영어, 수학 공부할 때 오랫동안 그것만 준비해 온 애들이야. 이제야 입시 미술 한다고 들어간 네가 그 아이들보다 잘한다면 그게 더 불공평한 거 아니니?"

아들이 엄마의 진심을 오해하지 않길 바랐다. 아들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엄마 말을 듣고 보니 엄마 말이 맞는 것 같"다며 다시 해보겠다고 했다.

"아들, 지금은 네가 뒤처진 듯 보이지만 네가 여태 해 온 게 언젠가 네게 큰 무기가 되어 줄 거야."

아들의 노력이 헛된 게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다.


뒤돌아선 아들 등짝이 널찍했다. 녀석, 언제 저렇게 컸을까. 그러던 녀석이 미술 선생님이 던져주신 당근에 히히힝, 콧김 뿜는 말처럼 신나 하는 걸 보니, 몸만 큰 아기 같다.


자식을 키우는 데 정답이 있으랴. 아이의 꿈을 응원하고 흔들릴 때 지지를 보내는 것 외에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자녀가 성장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부모도 함께 성장하라"는 김미경 강사님의 말씀처럼, 나도 글을 쓰고 악기와 그림을 배우며 엄마의 성장 스텝도 멈추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이것이 갱년기 엄마인 내가 사춘기 아이를 응원하는 방식이다.



주 1회, 4개월만에 겨우 피워낸 해바라기. 아들, 엄마도 멈추지 않을게. by 그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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