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늘 가는 북한산. 같은 등산 코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었다면 반복되는 같은 행위를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테다. 그날의 날씨, 계절의 변화, 바람의 정도, 피고 지는 이름 모를 나무들의 꽃과 야생화, 삼삼오오 모였다 흩어지는 사람들의 발길, 그날의 내 기분... 같은 일상을 달리 만드는 요소들은 끝이 없다. 홀로 오르는 산행에도 변화를 주는 것들이 이렇게 많은데 일행이 있을 땐 말해 무엇할까.
누구와 함께 가느냐는 그날의 이야기를 달리 만드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번에 함께 오른 이들은 이전 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셋. 그중 한 분이 낸 일종의 심리 테스트는 같은 루틴에 다른 의미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분 말에 따르면, 95% 이상의 신뢰 수준을 보이는 테스트라니 구미가 당겼다.
- 원숭이, 새, 뱀. 세 가지 동물이 있다.
이 동물들을 함께 데리고 가야 한다면, 어떻게 데리고 갈 것인가? -
원숭이, 새, 뱀. 어떻게 데리고 갈 것인가? by pixabay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동물 심리 테스트였다. 그런데 또 결론이 생각이 안 난다. 왜 이런 테스트에 등장하는 동물들을 한, 두 가지씩만 바꾸면 아예 다른 테스트처럼 느껴지는 걸까? (신뢰 수준이 높다니, 이 글을 보시는 그대도 결론을 보시기 전에 한 번 마음속으로 답 해 보세요. 남 얘기만 듣는 건 재미가 없잖아요.^^)
꼭 다 데리고 가야 하느냐고 질문자에게 몇 번 물었다. 데리고 가고 싶지 않은 동물도 섞여 있었으니까. '함께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해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내 답은...
한 손에 원숭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새를 줄에 매달아 줄을 붙들고 가겠다고 했다. 날아다니는 속성을 가진 새를 내가 가는 방향으로 데리고 가려면 다른 방도가 있을까 싶었다. 뱀은,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천 보퉁이에 넣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꽁꽁 묶어서 되도록 내 뒤, 멀리에 두고 주둥이 끈을 끌고 가겠다고 했다. 솔직히 데리고 가고 싶지 않은 동물이었지만 함께 가야 한다니 어쩔 수가 없었다.
세 동물 중 데리고 가는 방법이 가장 고민된 순서는 원숭이, 새, 뱀 순이었다. 원숭이는 독립적으로 걸을 수 있는 존재에 가는 방향을 알려주면 따라오는데 무리가 없는 동물일 것 같았다. 그러니 손만 잡아주면 같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새는 좀 고민이 되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려줄 방도도 없는 데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동물들을 어찌한단 말인가. 적어도 가는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나와 줄로라도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뱀은... 어떻게든 내 눈에 안 보이게 하는 곳에서 되도록 나에게서 멀리 떼어놓고 데리고 가야 했기에 좀 더 고심했던 것 같다. 버리고 가도 된다면 풀숲에 놓아두고 가고 싶었다.
결론은, 동물 심리 테스트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우리 삶에서 함께 살아갈 대상들로, 원숭이는 '배우자', 새는 '자식', 뱀은 '돈'이다.
마음속에 생각해 보신 것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으셨는지 모르겠다. 심리테스트나 사주팔자라는 것들이 의례히 결과에 내 생각을 끼워 맞추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이 대상들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다시 생각해보면 흥미로웠다.
재미있던 건, 함께 한 일행 넷의 답이 하나같이 달랐다는 거다. 동물이 세 가지이니 그중 한 가지 정도는 비슷한 답이 나올 법도 하련만, 어쩌면 그렇게 다른 방법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건지. 동물들을 데리고 가는 방법이 그렇게 다양하다는 게 놀라웠다.
어떤 이는 자기는 앞장서고 세 동물을 뒤에서 따라오라고 했다는데, 케이지에 넣지 않고 자신과 뭔가로 연결시키지 않고도 따라올 거라는 자신감과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답이겠다. 원숭이에게 나머지 동물들을 다 들려서 옆에 따라오게 했다는 답도 흥미로웠다. 난 왜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까? 재미로 보는 테스트라지만, 대상들에 대한 평소의 내 생각을 대입하니 딱히 결과를 부정하기 어렵다.
함께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아예 성립할 수 없는 질문이었을 테다. 나와 별개의 동물들이니 다 두고 홀로 가면 되었으니까. 고민이 되었던 건 내가 가는 방향으로 '함께 데리고'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 홀로 갈 수 있다면, 좀 더 적게 고민하고 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분명한 건, 함께 데리고 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속성에 대해 보다 고민했고 상대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좀 더 확실해졌다는 거다. 배우자는 나란히 함께 갈 사람이고 자식은 언제든 붙들고 있던 끈을 놓아주어 훨훨 날아가게 할 대상들이다. 돈은... 아쉽지만 있으면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는 것. 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재물복이 없는 비운의(?) 팔자를 탓하기보다는 돈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그러했음을 받아들일 일이다.
살다 보면 원숭이, 새, 뱀 중 어떤 동물은 데려가기에 더 까다로워지는 시기가 있다. 어떻게 해도 데리고 갈 수 있는 방도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생길지 모른다. 다 버리고 혼자 간다면 좀 더 쉽지 않을까 싶을 때, 이 동물들도 나와 계속 함께 갈지, 말지 고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함께' 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가는 것이니까.